햇살이 꽤 따가운 유월 초순이었다. 인섭의 뒤를 따라간 곳은 청계천 둑에서 멀지 않은 허름한 대폿집이었다. 교복을 입은 채 술집으로 들어가는 게 마음에 걸려 주저하자 인섭이 씩 웃으며 돌아보았다. “걱정 말고 들어오소. 누가 잡아갈 집 아니니까.” 선택은 누가 보는 듯해서 뒤를 돌아보며 인섭을 따라 들어갔다. 토요일이어서 아직 한낮이었다. 술집은 드럼통을 엎어놓은 탁자 세 개가 전부인 옹색한 곳이었다. “할머니, 술청 비워놓고 어디 가셨수?” 인섭이 안쪽으로 난 문을 향해 큰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말투로 보아 자주 오는 집인 모양이었다.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안쪽에서 문이 열리자 환한 빛이 들어왔다. 문 안쪽에 작은 마당과 우물이 보였다. 어느 가정집 귀퉁이에 가건물을 지어 술
농촌진흥청이 전주혁신도시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의 이전과 관련해 일부농민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농촌진흥청이 정조대왕의 근대적 농업구상의 발원지인 수원에 터를 잡고 농업근대화의 기수로 50년 넘게 한국농업을 상징하고, 앞으로도 한국농업의 힘과 위상을 만들어 가야한다는 뜻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농촌진흥청의 이전이 근대화의 청산이라는 상징적이고도 실질적인 변화라면 이전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농촌진흥청의 이전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방균형발전이라는 틀에서 진행되었다. 아쉽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하나 놓친게 있다. 그것은 농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농촌진흥청 이전의 당위성으로 확보하지 못한 점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
매실을 딴다. 작은 것을 한 알씩 따자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럴 만도 하다. 한 시간을 따도 20kg 한 상자 채우기가 어렵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땀을 흘리다 보면 어느새 상자들이 채워져 간다. 저것이 몸에 좋다니 사람들이 불티나게 가져갈 것이고 그로인해 농사지은 맛이 나는 게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매실이 넘쳐난단다. 해마다 그나마 몇 줌씩 팔아주던 소비자 쪽에서 가져 오지 말라고 한다. 가격이 너무 싸서 시장에서 샀노라 한다. 검색을 해보니 말도 안되는 가격에 경매되고 있다. “매실 10kg짜리 5상자 경매가격이 만원! 농가수취가격 300원!” 에라 이럴바엔 인심이나 쓰자. 여기저기 나눠 주고도 100kg이 넘게 남는다. 그냥 다 효소 담그기로 한다. 효소 만들어 놓으면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 키울 때 자주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때마다 친정어머니가 만들어 두신 매실고를 먹였었다. 그래서 요즘도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매실고나 매실청을 만들어 기숙사 생활하는 딸아이에게 한 병씩 보낸다. 곧 여름철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습도와 기온이 높아 식재료나 음식들이 쉽게 상하고 눈으로 확인되지 않아 잘못 먹은 음식으로 인해 배탈이 나서 복통이나 설사에 시달리게 된다. 장마가 끝나면 대기의 온도는 더욱 올라가고 몸의 내부에서는 열이 발생하면서 찬 음료나 빙과류를 찾게 되어 장마철과는 또 다른 배탈에 시달리게 된다. 매실은 장마철이든 불볕더위든 여름에 꽤나 유용한 과실이다. 매화나무 열매인 매실을 한방에서는 매자(梅子)라 하는데 보통은 덜 익은 청색의 열매(靑梅
그래도 고등학교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학생들은 자동적으로 학도호국단에 편성되었는데, 첫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멀지 않은 무렵에 학도호국단의 이름으로 공고문이 하나 붙었다. 우연히 보게 된 공고문이 선택의 인생을 바꾸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공고문의 내용은 방학을 맞이하여 학도호국단에서 농촌계몽대를 조직하여 향토 계몽운동에 나서는데, 거기에 함께 할 학생들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계몽 활동의 내용은 국문강습단을 조직하여 문맹퇴치운동을 하며, 국내외의 정세를 파악하여 교육열을 고취시키고, 민주주의 좌담회를 통해 정신계몽운동을 한다는 것 등이었다. 한참을 공고문을 읽고 있던 선택은 가슴이 뛰노는 것을 느꼈다. 학도호국단에서 제식훈련을 하거나 목총을 들고 총검술 따위만 배우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의 이가 잘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식습관과 함께 당분이 많고 접착성이 강한 사탕, 쵸콜릿, 비스켓, 청량음료 등과 같은 음식을 많이 섭취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오늘은 칫솔질을 잘해도 충치에 취약한 부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하루에 3번, 식후 3분 이내에, 칫솔질은 3분동안’ 이라는 ‘3·3·3법’이라든지, ‘칫솔질은 위아래로 구석구석’이라든지 하는 말들은 모두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그러나 위의 문구들을 생각하며 아무리 정성들여 이를 닦아도 충치를 일으키는 치면세균막(프라그)을 제거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치아와 치아의 사잇면과 어금니 씹는 면의 좁고 깊게 패인 곳 등은 아무리 칫솔질을 열심히 해도 잘 닦을
이월 말에 선택은 서울로 올라와 한규 방에 보따리를 풀었다. 옷 몇 가지와 책이 전부인 단출한 살림이었다. 본격적인 서울 생활을 맞이한 첫날 밤, 한규는 무엇이 좋은지 자꾸 히죽거리며 웃었다. “나도 말이야, 축구 선수가 되는 건데 잘못 생각했어. 내가 다닌 중학교에 축구부가 있었는데 진즉에 거길 들어가서 공을 찼어야 됐어.”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해서 선택은 멀뚱하게 한규를 바라보았다. “소식 못 들었어? 내일 우리나라 축구 대표단이 일본으로 가잖아. 이번에 아주 일본 놈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말걸. 이승만 대통령도 그랬대. 일본 놈들한테 지면 아주 현해탄에 빠져죽을 각오를 하라고 말이야. 이번에 이기면 그 뭐냐, 월드컵이라는 델 나간다고 하더만.” 선택으로서는 일본으로 축
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의 몇 안 되는 장수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18년의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낸 선생이 장수를 하게 된 비결을 꼽는다면 그건 단연 직접 농사를 짓고 자신의 채마밭에서 수확한 제철채소를 밥상에 올린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선생이 문집에 남긴 기록을 보면 여름채소 중 아름답다고 표현한 오이를 비롯해 수십 가지의 텃밭채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선생에 힘입어 둘째 아들이 농가월령가를 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농가월령가 오월령에는 ‘오월 오일 단옷날 물색(物色)이 생신(生新)하다. 오이밭에 첫물 따니 이슬에 젖었으며 앵두 익어 붉은 빛이 아침볕에 눈부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집에서 직접 오이를 키워보면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게 단오를 전후로 첫물 오이를 따
시인이며 영화감독인 유하의 첫 시집 제목이 ‘바람이 불면 압구정으로 간다’였다. 물론 상전벽해로 변해버린 자본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속내를 고발하는 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인터뷰에서 짐짓 “압구정에는 배밭이 많았고 바람이 불면 배가 떨어지니 배를 주우러 가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던 것으로 기억 한다. 그랬다, 압구정에는 배밭이 많았다. 강남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배밭이 압구정동에는 꽉 들어차 배꽃이 만발했다. 압구정의 배밭이 기록에 남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어릴 때 들은 기억으로는 일본인들이 재배했던 것을 해방 후 지역 농민들이 이어서 가꾸고 확대 한 것으로 안다. 가을이 되면 배를 따느라고 당시에도 일손구하기가 만만치 않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대부분 가을에 소비를 하고 묵이배
교정치료와 관련해서 환자와 보호자가 가장 궁금해 하시는 것이 비용과 치료기간입니다. 비용은 치료방법과 장치의 종류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어서, 오늘은 교정치료 기간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일반적으로 교정치료의 기간은 환자의 나이와 성별, 부정교합의 유형, 그리고 교정의사가 사용하는 치료의 방법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성장기에 골격적 원인이 동반된 주걱턱이나 상악전돌증 등을 동반한 아동의 교정치료는 본격적인 치열교정에 앞서 성장조절 치료를 하게 됩니다. 주걱턱인 경우 아래턱을 후방으로, 위턱을 전방으로 견인하는 치료를 합니다. 상악전돌증인 경우는 반대로 위턱의 성장을 억제하고 아래턱의 성장을 유도하는 치료를 하게 됩니다. 대개 1년 내외의 적극적인 치료를 하게 되며, 부정교합의 난이도에 따라 기간이
임플란트 시술에서 난이도가 높은 영역은 심으려고 하는 부분의 뼈가 현저히 양이 적은 경우다. 이때 할 수 있는 것이 뼈의 양을 늘리는 것이다.상악(윗턱)의 경우 치아뿌리 바로 윗부분에 상악동이라고 하는 빈 공간이 있다. 이는 눈(眼) 아래, 코 옆, 구강 윗부분에 위치하는 공기가 들어있고 점막으로 덮여있는 피라미드형 부비강(副鼻腔)의 하나이다. 소리를 공명하고 온도습도조절기능을 하고 코를 통해 이물질을 배출하고 중요기관이다. 여기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 축농증(상악동염)이다. 흔히들 콧속 즉, 비강에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바로 이 공동에 생기는 것이다. 이 상악동은 사람에 따라서 크기가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크기가 크거나 작은 사람이 특별히 좋거나 나쁜 것은 없다. 하지만 치아가 상실되
하지만 캄캄한 밤에 은은하게 켜진 십자가의 불빛은 커다란 유혹이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밤늦도록 찬송을 부르고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떡과 과자를 나누어 주곤 했다. 과자는 모두 영어가 쓰여 있는 미국 과자였고 매끄러운 종이에 싸인 캐러멜이나 통조림이라고 부르는 깡통은 거의 숭배의 대상이었다. 모두 바다 건너 미국에서 보내온 것이라고 했다. 미국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제일로 친다고도 했다. 크리스마스라는 말도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마치 어느 별나라의 명절인 것만 같았다. 선택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꼭 한 번 성탄절에 교회를 찾았다가 통조림 깡통을 하나 받았다. 할아버지가 무서워 집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친구와 둘이 깡통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희한하게도 작은 오징어가 네 마리 들어 있
어릴 때를 기억하자면 집집마다 누에를 키우는 방이 따로 하나씩은 있었다. 파리똥만한 누에의 알이 놓여있는 종이를 면에 가서 받아다 누에를 키우는 방에 놓아두면 거기서 애벌레가 나온다. 그 애벌레를 우리는 누에라고 불렀고 뽕잎을 따다가 누에가 누워있는 곳에 얹어주면 되었는데 4번 잠을 자고 일어난 누에들이 주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뽕잎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에를 키우는 방에서는 소나기 오는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그 소리는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는 소리였다. 그때는 집집마다 뽕잎을 따오는 것이 큰일이었는지라 어린 나도 이모들을 따라서 뽕밭엘 가곤 했었다. 특히 이맘때는 검게 익은 오디가 흔하여 그걸 따먹는 재미로 더욱 열심히 따라다녔다. 손과 입이 새까맣게 물들었지만 간식거리 하나 제대로 없던 시
1904년 대한제국은 농사의 개량과 상공발전에 관한 회칙을 발표하고 서울에 농상공학교를 세운다. 그리고 그 실습농장(권업모범장)을 뚝섬에 두었다. 그러나 1906년 일본은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식량보급기지로 활용한다는 계획아래 수원역에서 둔전지에 이르는 넓은 터에 권업모범장을 설치한다. 이후 일본은 대한제국의 뚝섬 권업모범장을 수원으로 일원화할 것을 종용하고 뚝섬 권업모범장은 원예모범장으로 축소한다. 뚝섬 원예모범장은 이후 조선의 각종 과일류, 과채류, 채소류들을 신품종으로 대체하고 보급에 열을 올렸다. 뚝섬주변은 보급종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그 바람에 우리나라의 토종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뚝섬은 퇴적토의 비옥한 땅으로 채소농사가 아주 잘 됐는데 그중 상추가 유명했다. 서울 사람이면 누구나
교실마다 이승만의 사진이 걸려있고 대통령의 생일날에는 모든 집에서 태극기를 게양해야 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풍금에 맞추어 ‘고마우신 이 대통령 우리 대통령/우리는 길이길이 빛내오리다’ 하는 대통령 찬가를 불렀다. 사실 집에서도 할아버지는 늘 ‘이 박사가 인물은 인물이야’ 하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세상 물정을 알 리 없는 선택은 그저 정말로 훌륭한 사람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선생은 거침없이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었다. “선택이 너도 서울에서 지내게 되면 알게 되겠지만 지금 나라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다. 전쟁으로 수백만이 죽어나갔고 백성들 사는 형편이 기아선상인데 지도자라는 자들은 여전히 권력놀음에 빠져있으니, 믿을 데라곤 자네들과 같은 청년들뿐이야. 정신 차려서 이 나라를 제대로
상추는 생육기간이 짧고 추위에 강해 농가마다 재배하고 더러는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서도 키워먹는 국화과 채소다. 며칠 전 운봉에서 딸기농사를 하고 있는 지인의 하우스에 잼을 만들 끝물딸기를 얻으러 갔다가 상추도 한 아름 얻어왔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어머니랑 둘이 뽀글이된장 한 뚝배기 지져놓고 앉아 찬밥 한 사발로 입이 찢어져라 상추쌈을 먹었다. 어린 시절 자주 가던 외가에선 상추가 나올 무렵이면 쑥갓도 나오고 실파도 텃밭에 있었다. 그래서 상추쌈 먹을라치면 쑥갓도 뜯고 실파도 한 움큼 뽑아 다듬어 씻는다. 그러는 사이 작은 뚝배기에 막장도 보글보글 지진다. 상추 두어 장에 쑥갓과 실파를 얹고 찬 보리밥을 한 술 올린 다음 지져놓은 막장을 간으로 얹어 싸서는 입에 밀어 넣는다. 양 볼이
기차길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잔다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칙칙폭폭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잔다기차길옆 옥수수밭 옥수수는 잘도큰다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칙칙폭폭기차소리 요란해도 옥수수는 잘도 큰다 어린 날 누구나 한번쯤 불렀을 윤석중 요 윤극영 곡 기차길옆이라는 동요다. 필자는 이 노래를 좋아해 옥수수를 해마다 심으며 흥얼거려 보기도 한다. 옥수수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좋아하니 적잖이 심어 나눠먹기도 하는데 요즘 같은 세태에 GMO가 포함되지 않은 옥수수를 먹는다는 것은 기적에 다름 아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우리나라에 수입된 식용 GMO 옥수수는 총 305만2,000톤이다. 연도별로는 2008년 763만톤(식용 71만톤), 2009년 628만톤(
정확하게는 뼈가 없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경우에 임플란트가 어려울 수 있다. 이것은 거창한 의학적인 사실이 아니라 일상에서 접하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에 속한다. 임플란트는 뼈 속에 자연치아처럼 들어가는 것이다. 얇은 합판에 못을 박으면 그 재질이 단단해도 고정이 되기 어려운 이치와 같이 어느 정도의 두께는 못의 고정에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치아는 없고, 임플란트를 하고 싶어도 뼈가 없다면 낭패다.잇몸뼈도 30대 이후 서서히 줄어 두개골의 발생 성장은 평균 약 16세에 완성된다. 잇몸뼈(치조골) 성장이 완료되면 임플란트도 가능하다. 물론 어린 나이에 임플란트가 필요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사고나 선천성기형 등 원인으로 필요한 경우가 있다.성장이 완료된 뼈는 30대중반까지 성숙된 상태로 최대부피를 유
홍동엘 갔었다. 내가 좋아하는 홍동엘 갔었다. 농촌에서 살아보려는 젊은이들이 모인 농장이 있어서 그곳에 갔었다. 이십 대의 젊은 친구들이 된장을 담아보고 싶다고 하여 재능기부 강의를 한 번 다녀왔었고 그리고 그 장을 가르기 위해 그 농장에 두 번째 방문을 했었다. 두 번에 걸쳐 만난 그 친구들은 그곳에 한시적인 정착을 한 친구도 있었고, 도시에서 식생활교육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열심히 공부하는 요리사도 있었고, 아주 다양한 더 많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은 농촌에서 혹은 도시의 텃밭에서 아니면 자신이 일하고 있는 건물의 옥상에서 손바닥 크기의 농사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키워낸 채소와 아는 농부들이 농사지은 야채들로
집으로 돌아와 인사를 하고 난 선택은 파김치처럼 지쳐 있었다. 앞섶에 묻은 피를 보고 놀란 어른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할아버지는 긴 장죽으로 괜히 놋재떨이만 땅땅 두들기었다. “시험 치른 것은 어떠했는고?” “그냥저냥 본 거는 같은 디유, 서울애덜 실력이 어떤지 모르니께 장담은 못하겠어유.” 서울에서 묵은 한규네 집 사정에 대해 물어보던 삼촌의 얼굴빛도 어두워졌다. “그리 녹록지 않은 살림이겄구나. 우리가 늬 하숙비를 대줄 헹편두 아니구, 철철이 쌀 가마니래두 보내줘야 할 건데.” “그 사람이 마음 쓰는 게 보통 사람하구넌 다른 거 같더라. 헹편 닿는대루 할 도리를 허자.” 그 정도의 대화를 나누고 쓰러졌다가 깬 것은 다음 날 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