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23회

  • 입력 2014.06.22 20:09
  • 수정 2014.06.22 20:10
  • 기자명 소설가 최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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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고등학교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학생들은 자동적으로 학도호국단에 편성되었는데, 첫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멀지 않은 무렵에 학도호국단의 이름으로 공고문이 하나 붙었다. 우연히 보게 된 공고문이 선택의 인생을 바꾸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공고문의 내용은 방학을 맞이하여 학도호국단에서 농촌계몽대를 조직하여 향토 계몽운동에 나서는데, 거기에 함께 할 학생들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계몽 활동의 내용은 국문강습단을 조직하여 문맹퇴치운동을 하며, 국내외의 정세를 파악하여 교육열을 고취시키고, 민주주의 좌담회를 통해 정신계몽운동을 한다는 것 등이었다. 한참을 공고문을 읽고 있던 선택은 가슴이 뛰노는 것을 느꼈다. 학도호국단에서 제식훈련을 하거나 목총을 들고 총검술 따위만 배우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훌륭한 일도 하는구나 싶었다.

“정형, 정형도 지원할 거요? 나도 가보려 하는데.”

누군가 가볍게 등을 쳤다. 같은 반의 신인섭이었다. 그는 선택보다도 더 늦게 학교에 들어와 반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축이었다. 스무 살에다 이미 결혼을 앞둔 처자가 있다고도 했다. 한 살이 적은 선택에게 그는 꼭 정형이라고 부르며 말을 놓지 않았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공부도 열성이었고 운동 시간이면 꼭 역기를 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몸이 다부지고 서울 출신인데도 어딘지 농촌에서 사는 사람가 났다.

“아, 신형. 지금 막 읽고 있는 중이오. 근데 지원하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거요?”

선택이 물었다.

“웬만하면 다 되는 것 같습디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거니까 많을수록 좋지 않겠소.”

“그럼 어디로 가게 되는 거요?”
 

“전국 각지로 다 가지 않겠소? 고등학생뿐만 아니고 대학교 학도호국단과 연합해서 간다고 하니까 그 수가 엄청날 거요. 그나저나 정형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지 않았소? 멀리 갈 것 없이 방학에 고향에 내려가서 하면 될 텐데.”

인섭이 빙그레 웃었다. 고깝게 듣자면 집에서 농사를 짓는 판에 무슨 별달리 향토 활동을 하려냐는 비아냥거림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그가 자신에게 늘 호의를 가지고 대한다는 것을 알기에 선택도 마주 미소를 지었다.

“글쎄, 그렇기도 하지만 고향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 같소. 내가 아는 것도 없고. 신형이야말로 서울내긴 줄 아는데 농촌에도 그리 관심이 있었소?”

선택의 말에 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농촌만큼 중요한 데가 있소? 여기도 써 있지만 문맹을 퇴치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면 우리 같은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지. 정형은 잘 알 거 아니오?”

선택은 서울에 사는 학생 중에도 농촌에 관심이 많은 이들을 심심찮게 만났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농민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끝나고 술 한 잔 할라우?”

뜻밖이었다. 신인섭이 스무 살이라고 해도 고등학생 신분인데 스스럼없이 술을 마시자고 하다니, 그리고 선택 자신이 아직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물론 고향에서 막걸리 한두 잔을 마신 적은 있지만 진짜 술이라고 할만 한 것은 아니었다.

“뭐, 정형이나 나나 술 한 잔 할 나이는 되지 않았수? 그 동안 별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고 해서 내가 언젠가 정형하고 한 번 자리를 만들 생각이었소.”

어쩐지 거절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주머니에 고린 동전 한 푼 없는 게 마음에 꺼려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선택이 주저하는 눈치를 보이자 인섭이 선택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비싼 삐루는 아니고 카바이트 막걸리로 내가 한 잔 사겠소. 정형이 서울로 유학 온 걸 축하하는 턱으로 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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