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공정’은 시진핑 중국 주석이 2003년 저장성 당서기 때 추진한 농촌진흥 프로젝트다. 정확한 명칭은 천촌시범만촌정치공정(千村示範萬村整治工程). 이 프로젝트의 초기 명칭은 ‘천촌시범, 만촌정치’로 불렸는데 이를 해석하면 ‘천 개의 마을을 시범촌으로 만들고, 만 개의 마을을 정비한다’는 의미이다. 즉 핵심 거점의 시범촌을 만들고 이를 주변으로 확산시켜 종국에는 전면적인 농촌 발전을 이룩하자는 프로젝트다.시진핑이 당서기를 역임했던 당시 절강성은 개혁개방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시작된 연해안 지역이었기 때문에 내륙 지역보다는 잘 살았지
팬데믹 이후 중국에 대한 보도가 부정적인 뉴스 일변도였던 영국 BBC는 작년에 이례적으로 흥겨운 축구 소식을 전했다. 중국에서도 빈한한 산간오지로 알려진 구이저우성의 롱장현에서 벌어지는 춘차오(村超,마을 슈퍼리그)를 특집으로 삼은 것이다.2023년부터 현내 8개 마을의 ‘조기축구회’ 대항전으로 출발한 이 대회가 지역민들의 참여열에 힘입어 중국 전역에 큰 화제가 됐고, 제3회를 맞은 올해에는 116개 마을 팀이 참가하고 있다.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부상은 황소 한 마리다. 매 경기마다 수만명이 경기장을 찾으면서 대회는 먹거리와 문화행사
중국에서 도시를 뜻하는 한자는 성(城)이다. 그래서 도시를 보통 성시(城市)라고 쓴다. 반면 농촌을 뜻하는 한자는 향(鄕)이다. 그래서 농촌을 보통 향촌(鄕村)이라고 쓴다. 따라서 도시와 농촌을 줄여서는 성향(城鄕)이라고 쓴다.마오쩌둥은 신중국 성립 후 거대한 중국을 통제하는 방법의 하나로 도시와 농촌을 이원화했다. 이를 도농이원화(城鄕二元化)라 부른다. 도시와 농촌을 분리해 각기 다른 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이는 마오쩌둥이 모델로 삼았던 구소련의 스탈린식 사회통치 방식을 따른 것이다. 그는 신중국 성립 후 산업을 일으킬 자본, 즉
은 20년 넘게 중국에서 진행돼온 사회운동인 신향촌건설운동 진영의 브레인 중 한 명이며 인민대학교 농업 및 농촌발전대학 소속 저우리 교수의 최신 저작이다. 이 제목은 상하이교통대학의 경제학자 루밍 교수가 2016년에 출간한 저작 과 대구를 이룬다. 후자는 상하이·베이징·선전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거대도시, 그리고 경제가 나날이 발전하는 동남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국가를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책이다.지금까지 이러한 발전주의 논리에 대응하며 정반대 편에 서 있던 것
지난달 직장 동료들과 백두산에 다녀왔다. 개인적으로는 29년 만의 백두산 등정이었다. 29년 만에 찾은 백두산은 많이 변해 있었다. 전에는 장백폭포를 지나 올라가면 천지에 닿았고 그곳에서 천지 물에 손도 씻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길이 폐쇄되고 서파와 북파라는 두 등정 코스가 개발돼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틀에 거쳐 서파·북파 코스를 모두 올랐는데 다행히 두 번 다 날씨가 좋아 천지를 볼 수 있었다. 백두산 등정 첫날이 공교롭게 6월 15일이어서 더 뜻깊었다. 나는 천지를 바라보며 내란청산과 민주주의 회복을 기치로 출발한 새 정부
“20만위안(한화 4000만원 상당)도 넘게 썼어요!” 노동절 연휴 고향에 돌아갔다 온 마을 친구 아리는 아들 약혼식을 무사히 마쳤다며 한숨을 쉰다. 내역은 이렇다. 신랑 가족이 신부 가족에게 주는 현금 신부대 12만위안, 결혼식에서 신부가 치장할 금붙이 5만위안, 연회비용과 다른 지역에서 온 신부 측 손님들에게 나눠준 여비 등이다. 결혼식 비용은 그보다는 적게 들지만, 아들에게 이미 사준 28만위안짜리 자동차, 그리고 도시의 신혼집 선지급금 일부 등을 모두 고려하니 100만위안은 족히 들 것 같다.부유하지 않은 내륙지역 후난성 농
우리에게는 낯선 인물이지만 중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철학자이자 교육자이며 사회운동가인 량수밍(梁漱溟)이다. 가이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중국의 마지막 유학자’로 명명한 그는 1893년 베이징의 한 인텔리 집안에서 태어나 동서양의 사상을 섭렵하는 등 탁월한 학문적 성과를 보여 베이징대학 인도철학과 교수로 특별 초빙된 인물이다.량수밍이 베이징대학에 교수로 있을 때 이 학교 도서관에는 마오쩌둥이 근무하고 있었다. 마오쩌둥은 후난 고등사범학교의 스승이자 장인인 양창지가 베이징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베이징대학에서
상하이 근교의 농촌에서 지내던 10여년 전 내가 살던 중국 농가의 단거리 운송수단은 전동삼륜차, 장거리 운송수단은 ‘빵차’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승합차였다. 누가 봐도 로고가 일본의 미쓰비시 ‘싼링(三菱)’을 베낀 ‘우링(五菱)’ 브랜드의 낡은 차량들이 농촌과 도시 사이를 바삐 오갔다. 화물과 많은 사람들을 나를 만큼 튼튼하고 가격도 저렴한 ‘인민의 차’였기 때문이다.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이 된 것은 2024년이지만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 된 것은 한참 전인 2009년이다. 지금은 모두가 중국 전기차에 두려
지난달 23일, 중국공산당과 국무원이 올해의 을 발표했다. 문건은 중국공산당과 중국 정부가 그해 가장 우선해 추진해야 할 과제를 말하는데, 올해도 이 문건의 핵심주제는 3농(농업, 농촌, 농민)이었다.문건에서 3농 문제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였다. 당시 중국의 최대 현안은 극단적 사회주의 체제인 ‘단위’와 ‘인민공사’의 해체문제였다. ‘단위’는 도시지역에서의 사회주의 운영체제였고 ‘인민공사’는 농촌지역에서의 사회주의 운영체제였으나 이러한 체제는 극단적, 폐쇄적, 비효율적 형태로 발전
세계를 놀라게 한 중국산 AI ‘딥시크’ 개발의 주역인 청년 CEO 량원펑과 핵심개발자 뤄푸리는 각기 광둥성과 쓰촨성의 농촌지역 소도시 출신이다. 1995년생 뤄푸리의 아버지는 전기기술자, 어머니는 교사이다. 뤄푸리가 컴퓨터공학을 전공한다고 하니 부모들이 말렸다고 한다. “졸업하고 컴퓨터 수리하려고?”라며.중국농촌에는 오래전 ‘맨발의 교사’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가난했던 시절 제대로 된 교사 양성 교육을 받지 못했던 마을 청년들이 교사로 재직한 것을 일컫는다. 중국 정부는 1980~1990년대를 거치며 대중교육을 강화해서 문맹을 퇴
중국인민대학 문학부 교수이자 작가인 량훙은 나름 성공한 지식인 축에 속한다. 그녀는 중국의 곡창지대라고 할 수 있는 허난성의 시골 마을에서 어렵게 자라 그곳에서 대학을 나와 베이징사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후 중국의 명문대학인 중국인민대학의 교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의 일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일에 치여 사는 삶, 무언가 쫓기는 듯한 불안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항상 이런 삶은 진짜가 아니며, 인간의 본질적인 의미를 구현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는 목소리
생산성은 한 국가의 경제 또는 산업의 성장 정도나 기술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다. 목적에 따라 각 투입요소별로 측정되는 단일요소생산성 또는 모든 투입요소를 결합한 포괄적 의미의 총요소생산성 지표를 활용한다. 일찍이 경제학자 하야미(Hayami)와 루탄(Ruttan)은 단일요소생산성인 토지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의 상호관계를 통해 한 국가의 농업성장경로를 유럽형, 아시아형, 신대륙형으로 구분했다. 이는 농업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인 토지와 노동의 부존 조건에 기초한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아시아형 농업의 요소 부
노동자, 농민, 소상공인, 소시민 등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보호, 상호부조, 복리증진을 위해 조직된 단체가 ‘협동조합’이다. 유럽에서 시작된 협동조합(운동)을 영어로는 ‘cooperative(코퍼러티브)’라 쓰는데 일본에서 이를 협동조합으로 번역하면서 우리도 그렇게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대 협동조합운동이 서구와 일본으로부터 들어와 독립·자립 운동으로 확대되기도 했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힘을 잃었다.해방 후 협동조합은 마을마다 협동조합이 만들어져 확산됐지만 역시 박정희정권이 들어서면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표방하는 중국의 기본 경제 제도는 공유제다. 중국 특유의 농촌집체경제는 농촌지역의 공유제 경제를 대표한다. 농촌집체경제는 농촌 지역에서 토지 등 주요 재산을 농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집체(집단)소유제에 기초해 해당 농촌집체에 소속된 개별 농민들이 자신에게 할당된 재산의 지분 몫에 대해서 사용권(경영권)을 행사하는 경제 형태를 의미한다. 가장 중요한 재산인 토지의 소유 및 사용 제도 측면에서 보면, 농민들이 집단적으로 소유하는 토지를 개별 농가에 도급해주고, 농가들이 자신의 책임 하에 사용(경영)하도록 하는
2023년 말 기준 중국의 인구는 14억967만명이다. 중국도 인구 감소가 시작돼 2022년 14억1260만명을 정점으로 2년째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세계 1위 인구대국의 명성도 옛말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에는 인구가 많다. 그렇다면 중국 농민 인구는 얼마나 될까?2023년 말 중국의 농민 인구는 1억6882만명이다. 중국 통계에는 농민 인구가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그래서 전체 취업인구 중 1차 산업 종사인구를 농민 인구로 간주한다. 중국 통계상 1차 산업 인구는 농림축산어업 종사인구를 말하기 때문에 이들 인구를 농민
아시아형 농업이 유럽형이나 미국, 캐나다 등의 신대륙형 농업과 구별되는 특징은 인구 대비 경지면적이 적은 요소부존 조건으로 인해 토지·노동 비율이 낮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일반적으로 분산된 농지에서 소규모로 농업을 경영하는 영세소농 농업경영구조가 형성됐다. 그리고 이러한 토대에서 농업의 성장과 발전은 토지·노동 조건을 확대하는 경로를 추종했고 농지이용 상의 규모화, 더 나아가 영농규모화가 중요한 아젠다가 됐다.중국 농업은 전 세계 경지의 약 7%로 전 세계 인구의 약 20%를 부양하는 내공을 선보이고 있지만,
중국에는 용두기업이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용의 머리가 되는 기업이다. 이 기업은 특정한 기업을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라 농업산업화를 선도하는 기업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영어로는 ‘리딩 엔터프라이즈’로 번역된다.용두기업의 출현은 1990년대부터이지만 본격적인 출현은 2000년대 이후부터다. 2001년 중국은 WTO 가입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당시와 같은 소농 구조 하에서는 농업경쟁력을 갖출 수 없기 때문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국가 주도의 일방적인 농업 규모화와 산업화를 추진할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그랬다가는 농촌
중국에서는 매년 상급 조직이 하부에 첫 번째로 하달하는 문서를 1호 문건이라고 칭한다. 일반적으로 당해연도의 업무 추진 방향과 과제 또는 주요 현안 관련 조치 사항이 담긴다. 중앙 1호 문건은 말 그대로 중앙이 하달하는 첫 번째 문서다. 여기서 중앙은 실질적인 최고 권력기관인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를 의미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의 정치체제는 공산당조직과 국가조직이 중첩되고 당조직이 국가조직을 영도하는 구조로, 공산당 지도부가 곧 국가 지도부다. 다시 말해 당이 곧 국가인 당 국가체제다. 이런 까닭에 중앙 1호 문건은 중국을 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지역사회 지원농업’ 혹은 ‘공동체 지원농업’으로 불리는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CSA)’를 중국에서는 ‘사회생태농업’으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불린 것은 아니다. 2010년경 CSA가 중국에 처음 소개될 때는 중국에서도 ‘공동체 지지농업’ 또는 ‘공동체 호조(互助) 농업’ 등으로 불렀다. 이후 중국에서 CSA 운동이 활발해지고 CSA 운동의 목적과 본질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면서 ‘사회’와 ‘생태’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CSA를 ‘사회생태농업’으로 명명하게 됐다.
‘곡물 95% 이상, 식용 곡물 100%’. 중국의 식량안보 관련 자급률 가이드라인이다. 첫 출발은 ‘식량 95% 이상, 곡물 100%’였다. 그러나 식량 생산량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가공용 및 사료용 곡물과 대두의 수요 증가로 수입이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 2010년대 초반 결국 목표치를 하향 조정했다. 현재 이 가이드라인은 지켜지고 있고 이를 사수하기 위한 조치들도 제법 촘촘하다. 급기야 지난해 12월에는 시행 중인 식량안보 정책을 법제화한 「식량안보보장법」도 제정했다. 올해부터는 중장기 수급 전망에 기초해 5000만톤의 식량을 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