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국은] 량수밍과 김용옥

  • 입력 2025.05.18 18:00
  • 수정 2025.05.18 18:36
  • 기자명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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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우리에게는 낯선 인물이지만 중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철학자이자 교육자이며 사회운동가인 량수밍(梁漱溟)이다. 가이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중국의 마지막 유학자’로 명명한 그는 1893년 베이징의 한 인텔리 집안에서 태어나 동서양의 사상을 섭렵하는 등 탁월한 학문적 성과를 보여 베이징대학 인도철학과 교수로 특별 초빙된 인물이다.

량수밍이 베이징대학에 교수로 있을 때 이 학교 도서관에는 마오쩌둥이 근무하고 있었다. 마오쩌둥은 후난 고등사범학교의 스승이자 장인인 양창지가 베이징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베이징대학에서 일하게 됐다. 그래서 둘은 학교에서 만나게 됐고 동갑이어서 더욱 막역한 사이가 됐다.

량수밍과 마오쩌둥은 학교에서 만나면 나라 걱정을 하는 얘기를 많이 나눴다. 봉건국가였던 청나라는 무너졌지만 온전한 나라는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화민국이라는 임시체제의 국가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한 국가로서의 체계는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했다. 가뜩이나 서구 열강과 일제의 침략으로 중국은 누란지계의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둘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둘 사이의 사상적 괴리는 컸다. 마르크시스트였던 마오쩌둥은 중국사회의 핵심문제가 계급 불평등에 있음을 간파하고 무엇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도시와 농촌으로 내려가 계급혁명을 주도했다.

반면 유학자인 량수밍은 중국사회의 문제는 문화 인식의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중국 전통 향신 문화의 틀 안에서 교육과 실천이 중요하다고 봤다. 특히, 량수밍은 거대한 중국 사회를 개조시키기 위해서는 중국의 대다수를 차지하면서도 문화적 수준이 낮은 농촌의 개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판단해 베이징대학 교수직을 던지고 향촌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처음에 허난성의 한 농촌 마을에 가서 향촌건설운동을 하다가 여의치 않자 다시 산둥성 저우핑현으로 가서 향촌건설연구원을 설립하고 그곳에서 농민교육과 협동조합운동을 적극 전개했다. 이 시기에 그는 <향촌건설이론> 등을 집필해 향촌건설운동을 실천하는 데 이론적·실천적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많은 농민과 더불어 생산·판매·신용 협동조합을 설립해 농촌 개조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이 격화되면서 그의 향촌건설운동은 중단되고 말았다.

1949년 10월, 마오쩌둥은 농민혁명을 기반으로 신중국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단시일 내에 영국과 미국 경제를 따라잡고 사회주의 혁명을 조기에 완성하기 위해 급진적 합작사운동, 무모한 대약진운동을 펼쳐 수천만 명의 인민을 희생시켰다. 이 과정에서 량수밍은 마오쩌둥을 찾아가 그가 펼치고 있는 급진정책은 농민들을 다시 희생시키는 잘못된 정책임을 비판하고 그의 노선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마오쩌둥은 절대 권력자였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마오쩌둥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었지만, 량수밍은 친구 이전에 한 명의 학자로서 마오쩌둥의 오류를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그로 인해 고초도 많이 겪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신중국 성립 이전에는 마오쩌둥의 계급혁명이 중국 현실에 맞는 개조 방식이었을지는 몰라도 신중국 성립 이후에는 량수밍의 향촌건설운동 방식이 더 현실에 필요했다. 다행히 량수밍의 향촌건설운동은 1990년대부터 부활해 현재 중국 3농 정책의 핵심이 됐다.

지난 20대 대선 전 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은 우리나라의 3대 핵심과제로 남북통일, 경제민주화, 풍요로운 농촌을 상정하고 이후 ‘농산어촌 개벽대행진’에 참여하는 등 농촌살리기에 앞장섰고 현재도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권력자의 부정의에는 거침없는 비판을 가하면서도 인류 생존과 문화 회복, 이를 위한 농어촌 회생에 진심인 철학자 김용옥 선생의 모습을 보면 량수밍의 현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농촌에 관심을 가지며 ‘풍요로운 농촌’이 시대적 과제라 주창하는 위대한 철학자의 뜻이 이번 21대 대선에서 투영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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