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이효영, 정수근 어르신 댁이 시끌벅적 분주하다. 오늘은 삼대가 모여서 김장하는 날. 둘째 딸이 공수해 주는 젓갈만 빼면 모두 손수 농사지은 것들이라며 부부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빨갛게 버무린 양념을 배춧잎에 싸서 입 안에 넣으니 맛이 그만이다.겨울 문턱으로 들어서는 11월 즈음이면 충북 괴산의 농가들은 겨울 채비로 마을 전체가 분주하다. 특히 절임 배추는 농가에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하는 특화상품이다. 그러니 배추를 심고 수확하는 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절이고 포장하고 판매하는 일까지 마쳐야 한 해 농사가 끝이 난다
서울 중심에서 불과 50km 정도 떨어진 강화도는 섬이면서도 논밭의 면적이 넓은 곳이어서 그 어느 지역보다 물산이 풍부하다. 강화도만의 특징이 도드라지는 순무나 인삼, 사자발쑥 등이 흔할 뿐 아니라, 한강 하류와 바다가 이곳에서 만나기에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특별한 ‘웅어’의 시간이 일주일 정도 있기도 하다. 남서해안에서 양식한 것을 가져다 갯벌에 풀어서 두 달 이상 키워 파는 ‘갯벌장어’가 있는가 하면 자연산 망둥어도 있다. 강화산 젓새우는 아주 유명해 김장철이 가까워지면 새우젓을 사러 다니는 인파의 수가 장난이 아
1987년 민주화 이후에 처음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은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13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당시에는 지역구 224석, 전국구 75석, 합계 299석을 선출했다. 선거 결과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정당이 125석을 얻는데 그친 것이다. 평화민주당이 70석, 통일민주당이 59석,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35석, 한겨레민주당이 1석, 무소속이 9석을 얻었다.이런 정당별 의석수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비수도권 의석수가 수도권 의석수보다 훨씬 많았다.축소된 비수도권 의석 비율1
충북 괴산에 살면서 오랜 시간이 쌓여있는 소박한 문화재들을 생각보다 많이, 자주 만나게 된다. 뜬금없는 곳에 천연덕스럽게 서 있는 석상들이 그렇고, 높은 산 위에 오도카니 서 있는 정자들이 그렇고, 오래된 건축물들 또한 그렇다. 안타까운 것은 길가의 석상이나 산 위의 정자 같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들은 잘 관리되지 않아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새똥에 나무가 썩고 안쓰러운 모습을 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오래된 사적 가옥들도 마찬가지다.괴산에는 세 곳의 향교와 한 곳의 사마소가 있는데, 이곳은 형편이 좀 다르다. 조선 시대 전국에
‘정이품송’의 이야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충청북도 보은군을 돌아다니다 보면 결초보은이라는 이름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시장도 예외는 아니라 오일장도 결초보은시장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선다. 역사공부를 열심히 하던 시절과 달리 대학에서까지 사학과가 사라지는 게 지금 현실이니, 실리를 따지자면 대추 산지임을 알려야 하는데도 그렇다.코로나19로 몸살을 앓던 시기, 두해의 봄부터 여름을 거치는 기간 보은군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식생활교육을 할 강사를 양성하는 위탁교육을 했었다. 오후에 시작하는 교육을 위해 오전에는 장에 들러 실습할 재료들
농촌지역 행사장에 가면, 자신의 치적을 늘어놓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 지방의원들을 보게 된다. 무슨 사업을 했고, 중앙정부나 도청에서 예산을 얼마 따 왔고, 자기 지역구에 얼마의 예산을 가져왔고 등등….그러나 그렇게 치적을 많이 쌓았는데, ‘왜 지역의 인구는 줄어들고 빈집은 늘어나고 있으며, 의료·교육·교통 등 생활 기반은 위축되고, 젊은 사람들은 지역을 떠날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천편일률적인 축제나 일회성 행사에 쓰는 예산은 늘어나는데, 농촌지역의 병원·약국은 문을 닫고 있고, 면 소재지 학교마저 폐교 위기를 맞고
충북 괴산군 청천면 깊고 깊은 시골 마을에 작고 작은 상점 하나가 있다. 아니, 사실은 상점이라 보이지는 않고 예쁘게 가꾼 정원과 함께 ‘맑은결공방’, ‘맑은결상점’이라는 목간판이 보일 뿐이다. 궁금증이 일어난다. 어디에 상점이 있다는 거지? 금세 호기심이 일어 마당 안으로 들어선다. 호호호 웃으며 주인이 반겨준다. 마당에서 금방 뜯어 내린 박하차를 손님에게 건넨다. 조심스러운 마음은 가시고 편안해질 즈음 드디어 작은 공간을 발견한다. 여섯 평 남짓, 말 그대로 상점인 듯 상점 아닌 듯한 모습을 한 호기심 천국이 펼쳐져 있다. 어느
내가 제주를 다녀오는 길은 멀고 험하다. 광주로 나가 비행기를 탄 뒤 자동차를 빌려 타는 보편적인 방법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가지 않는다. 3시간을 운전해서 가야 하는 완도항을 통해 배에 자동차를 실어서 가는 어려운 방법을 택해 간다. 지인들을 만나면 건네고 싶은 것들도 챙기고, 가서 읽을 책, 갈아입을 옷 등을 내 차에 잔뜩 실어 가고 싶어서다. 돌아올 때는 제주만의 특별한 식재료들을 사서 챙겨오는 재미가 참 좋고, 내 차라서 운전하고 다니기도 편하다.그렇게 제주엘 가면 누구나 가보는 동문시장이나 제주민속오일장 말고, 현지인들이
작년 12월 3일 이전의 대한민국과 그 이후의 대한민국은 다르다. 내란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란을 계기로 ‘극우’가 그 실체를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내란을 옹호하고, 친위쿠데타를 시도한 내란수괴를 비호하며, 부정선거론을 믿는 세력이 그 실체를 드러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뿌리에서부터 흔들렸다. 그리고 지금 상황을 보면 아직도 내란은 완전히 종결된 것이 아니다.극우가 장악한 제1야당여전히 윤석열을 비호하는 세력들이 정치권 안팎에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 윤석열을 비
충북 괴산에서 밤새 비가 쏟아지고 난 아침에는 수옥폭포로 가야 하는 이유가 세 가지 있다. 많은 비로 불어난 폭포수가 장관을 이루며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폭포에서 떨어져 계곡으로 흘러가며 공기까지 가득 채운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물기를 머금어 채도가 높아진 초록은 이곳을 비현실의 공간으로 착각하게 만든다.그렇다고 내 최종 목적지가 수옥폭포는 아니다. 수옥폭포를 바라보며 옆으로 난 나무 계단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면서 오른다. 그리고 이내 사방에 초록 병풍을 두른 저수지와 맞닥트린다. 때마침 깊고 고요한 물
장에 일찍 도착한 날은 일행들과 만나기 전 우선 한 바퀴 돌아본다. 그러다 먼저 연락을 하거나 혹은 연락을 받고 장소를 정해 서로 만난다. 홍성장에서도 혼자 먼저 대충 한 바퀴를 돌기로 하고 막 몇 걸음 옮기는데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복숭아를 들고 나온 상인이 인삼 파는 상인에게 칼과 복숭아를 건네는 장면을 본 것이다. 복숭아 주인이 한 마디 던진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일단 먹고 시작하자구!”암, 그래야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지. 일행을 만나면 우선 먹고 시작하자고 해야지. 그런 저런 생각을 하는 참에 막 도착한
이재명정부는 ‘5극 3특’을 통해 수도권 일극 집중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5극’이란 수도권 일극에 대비되는 말이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충청권, 대구-경북권, 부산-울산-경남권, 광주-전남권을 ‘또 하나의 극’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그리고 ‘3특’은 5극에 포함되지 않는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강원, 전북, 제주를 특별자치도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그러나 ‘5극 3특’ 자체는 새롭지도 않고, 타당성과 현실성도 떨어진다. 그리고 핵심적인 논점을 피해 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제대로 된 토론이 필요하다.‘5극 3특?’
비 한 방울 없이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 지가 며칠째다. 더위에 잠을 설치다 일어나 들판으로 나갔다. 새벽 다섯 시, 여전히 바람 한 점이 없다. 요즘같이 더운 날은 해 뜨기 전부터 들판에서 일이 시작되는데, 오늘 아침은 콩밭에 허수아비가 제일 먼저 아침 작업을 개시했다. 드넓은 초록 들판, 옥수수는 한껏 키를 올리고, 가을에 수확할 콩밭도 한창 초록이다. 논의 모들은 초록으로 물결을 이루고, 논둑과 밭둑의 느티나무와 함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하지만 아름답기만 한 새벽 들판은 사실 ‘100m 미인’이다. 멀
오일장을 다니면서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다양하다. 집에서 너무 먼 곳이라 새벽부터 수선을 떨며 갔는데 장이 너무 작아 한 바퀴 도는데 30분도 안 걸려 뭘 써야 할지 여간 실망스럽지 않은 곳들이 있었다. 반면 집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려갔는데 그 장이 너무 마음에 들어 시간이 날 때마다 가보는 장도 있다. 이번에 다녀온 장은 결코 작지 않고, 30도를 넘기는 무더위 속에서도 사람들이 제법 북적거리고 있었지만 다른 오일장들과 다른 뭔가를 찾기는 쉽지 않은 곳이었다. 모든 오일장이 크기를 제외하면 대동소이한 곳이라 그 안에서 뭔가 다른
이재명정부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인사가 논란이다. 송미령 장관을 유임시키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철회돼야 한다. 다른 장관 인사를 백번 잘해도, 이번 송미령 장관 유임 결정 하나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인사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송미령 장관 유임이 부적절한 이유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당장 내란 연루 문제가 있다. 작년 12월 3일 내란 당시의 상황만 따지자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보다 김문수 전 노동부 장관이 연관성이 덜하다. 송미령 장관은 비상계엄 전에 개최된 국무회의에 참석했고, 김문수 전 장관은
충북 괴산의 관광명소인 문광저수지 둑길을 걷다 보면 너른 들판에 그려진 아름다운 논그림을 볼 수 있다. 해마다 다른 주제를 가진 도안으로 모내기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기다란 빨대를 논바닥에 꽂아서 라인 작업을 하고 거기에 색을 맞춰 모를 심은 다음 다시 빨대를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2008년에 처음 시작한 유색벼 논그림은 17년째 이어오고 있는데, 2023년부터는 괴산 4H 청년들이 이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아침부터 뜨거운 해가 내리쬐는 논바닥에 20여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모두 종이 한 장씩을 들고 도
전남 나주의 영산포오일장은 영산포풍물시장을 중심으로 열린다. 오일장 입구에 작은 안내판이 하나 있는데 영산포가 어떤 곳이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게 해준다. 안내판을 그대로 옮겨 구구한 설명을 대신해본다.“영산포는 천혜의 뱃길이자 수송로였던 영산강을 끼고 있으며 호남선이 1914년 개통되면서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1920년 8월 영산동에서 장이 열리기 시작하여 전남 서남부 8개군의 도매시장 역할을 하였고 특히 우시장은 하루에 200~300마리의 소가 거래될 정도로 번성하여 한때는 제주도 말까지 거래될 정도였다. 2003년 5월 지
6.3 대통령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은 지난해 12월 3일 일어난 내란을 종식시킨다는 의미가 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누적된 한국 사회의 문제를 개혁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한다. 그래서 내란 이후 광범위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서 결성한 연대체의 명칭에도 ‘사회대개혁’이 들어가 있었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으로 이어진 문제의식의 핵심에는 단지 내란종식 만이 아니라 ‘사회대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2016~2018년에서 경험 얻어야그러나 윤석열 탄핵과 조기
충북 괴산에는 토종작물을 채종하고 경작하는 농장인 우리씨앗농장이 있다.우리씨앗농장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농장에 한 번이라도 다녀간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느티나무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름드리 나무그늘 아래서는 농장을 찾아오는 사람들과의 다양한 만남이 이어지고 오순도순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또 아이들도 어른들도 나무에 매단 그네를 타면서 초록 잎새 사이로 피어난 하늘을 올려다보는 즐거움을 잊지 못한다.올해로 느티나무가 환갑을 맞았다. 농장 안팎 사람들에게 느티나무가 얼마나 귀한지 그냥 넘어가기가
화천오일장은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오일장 중의 하나다. 지리산에서는 이미 끝난 봄나물들을 더 연장해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즉 화천은 나처럼 남쪽에 사는 사람들에겐 짧아서 아쉬운 봄을 길게 늘려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을 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며 찾는 지리산을 두고라도 일부러 길을 나설만한 곳이다. 화천으로 가는 여행길은 현란한 공연장의 중심에서 정신없이 즐기는 예술과도 같은 느낌으로, 녹색의 산과 계곡들이 가는 내내 환성을 지르게 한다.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즈음해서 화천엘 간다면 산나물축제를 하고 있는 농장 ‘산방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