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다니면서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다양하다. 집에서 너무 먼 곳이라 새벽부터 수선을 떨며 갔는데 장이 너무 작아 한 바퀴 도는데 30분도 안 걸려 뭘 써야 할지 여간 실망스럽지 않은 곳들이 있었다. 반면 집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려갔는데 그 장이 너무 마음에 들어 시간이 날 때마다 가보는 장도 있다. 이번에 다녀온 장은 결코 작지 않고, 30도를 넘기는 무더위 속에서도 사람들이 제법 북적거리고 있었지만 다른 오일장들과 다른 뭔가를 찾기는 쉽지 않은 곳이었다. 모든 오일장이 크기를 제외하면 대동소이한 곳이라 그 안에서 뭔가 다른 재미를 찾는 일이 꽤 어렵지만, 그래도 직접 현장에 가서 보면 늘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좀 힘들었다.
하필 이 더위에 90이 넘은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차 안에 있을 때와 달리 아침부터 푹푹 찌는 더위라 마침 문을 연 카페에 어머니를 두고 일행들과 오일장을 돌았다. 손수건이 젖을 만큼 땀을 흘리며 두 시간 가까이 시장을 돌아보았다. 물산이 풍부한 곳이라더니 군 지역치고는 장이 정말 컸다.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실 어머니 걱정이 되었지만 일을 되게 하려니 이곳저곳 꼼꼼히 돌아본다.
내륙이지만 바다가 가까운 탓인지 7월의 화순장은 해산물이 신선했다. 채소전이나 과일전에 비해 매대의 수나 그 양도 제법 많았다. 여름에 주로 먹는 병어가 바구니마다 담겨 있었고 칠게와 농게, 참소라, 고동들이 있었다. 오전 11시경 이미 물건이 동이 나 정리를 하는 생선전도 있었다. 뭘 팔고 있었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말을 붙이기가 쉽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젓갈을 담그면 좋을 크기의 조기들도 박스로 있어 탐이 났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고 또 지나쳤다. 손바닥 만한 오징어들이 4마리나 5마리 만원에 팔린다. 금값이던 오징어가 요즘 많이 출몰했다더니 놀랄만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7월의 장엔 감자와, 마늘, 양파, 오이, 호박, 가지들이 풍성하다. 마늘과 감자와 양파는 아예 따로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판다. 마늘은 잘 여물고 잘 말랐는지, 크기는 큰지 어떤지, 몇 쪽인지, 쪽이 큰지 아닌지, 그렇게 골라 사면 상인들은 작두로 줄기를 자르고 통마늘만 봉지에 담아준다. 나는 줄기째 걸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까서 먹는다. 김장을 기점으로 모두 까서 쓰고 남은 것은 냉장고에 저장해두고 쓴다.
양파는 낱개로 팔기도 하지만 망에 50개나 100개씩 자루에 담아 쌓아놓고 판다. 그야말로 산더미다. 많은 양을 사두면 싹이 나고 썩어 마지막에는 꼭 버리게 되니 나는 늘 작은 자루로 사놓고 쓴다. 단단하고 맛있기로는 밭 양파지만, 요즘 대부분은 벼와 이모작을 하는 양파들이라 오래 저장해두고 먹기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해주는 영업장이 아니라면 조금씩 사서 먹는 것이 좋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의 농산물 저장 기술이 정말 좋다. 마늘, 양파, 감자 등을 1년 내내 잘 저장해두고서 소비자들이 싱싱한 것을 구입할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그러니까 한꺼번에 많이 사지 말고 조금씩만 사두고 먹어도 된다.
양파, 마늘, 감자처럼 대량으로 나온 채소들 말고 소소하게 가져와 놓고 파시는 어르신들 앞에 오래 머문다. 화순에 사시는 분들은 어떻게 조리해 드시는지 궁금하니 여쭙기도 하고 싸가지고 오신 점심을 얻어먹기도 한다. 날이 더우니 대부분은 콩국수 같은 메뉴를 시키는 분위기다. 밍밍하니 이야깃거리가 없는 듯해도 사고 싶은 것은 많다. 자루 한 가득 들고 나오신 호박잎을 계속 다듬어 놓고 파시는 분, 고구마줄기를 까면서 파시는 분, 부추를 다듬는 분, 삶아온 머윗대의 껍질을 까시는 분…. 쉬지 못하고 있는 손들이 파는 모든 것들을 다 사오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가 어렵다.
여름의 색은 아름답다. 그래서 살만한 것 같다. 노랑 참외, 초록의 옥수수와 풋고추, 붉은색의 토마토와 자두, 검은 가지들이 한데 어우러져 내는 색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하다. 얼갈이배추와 열무를 좀 사가야 하는데, 돌아오는 주말에 있을 수업에서 익은 김치를 내고 싶은데, 어머니와 여행을 좀 더 하고 싶어서 참는다.
화순오일장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베트남에서 이주해온 새댁이었다. 양배추농사를 한다고 했다. 양배추 팔러 나오는 길에 오이도 조금 들고 나왔다고도 했다. 오이는 꼬부라지고, 꼭지 쪽은 가늘고, 끝쪽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양배추는 두고 오이만 한 무더기를 샀고 장을 떠나 어머니와 여기저기 다니면서 간식으로 먹었다. 덥지만 화순오일장의 오이 덕에 더위쯤 이겨내고 귀가할 수 있었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