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이효영, 정수근 어르신 댁이 시끌벅적 분주하다. 오늘은 삼대가 모여서 김장하는 날. 둘째 딸이 공수해 주는 젓갈만 빼면 모두 손수 농사지은 것들이라며 부부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빨갛게 버무린 양념을 배춧잎에 싸서 입 안에 넣으니 맛이 그만이다.겨울 문턱으로 들어서는 11월 즈음이면 충북 괴산의 농가들은 겨울 채비로 마을 전체가 분주하다. 특히 절임 배추는 농가에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하는 특화상품이다. 그러니 배추를 심고 수확하는 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절이고 포장하고 판매하는 일까지 마쳐야 한 해 농사가 끝이 난다
충북 괴산에 살면서 오랜 시간이 쌓여있는 소박한 문화재들을 생각보다 많이, 자주 만나게 된다. 뜬금없는 곳에 천연덕스럽게 서 있는 석상들이 그렇고, 높은 산 위에 오도카니 서 있는 정자들이 그렇고, 오래된 건축물들 또한 그렇다. 안타까운 것은 길가의 석상이나 산 위의 정자 같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들은 잘 관리되지 않아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새똥에 나무가 썩고 안쓰러운 모습을 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오래된 사적 가옥들도 마찬가지다.괴산에는 세 곳의 향교와 한 곳의 사마소가 있는데, 이곳은 형편이 좀 다르다. 조선 시대 전국에
충북 괴산군 청천면 깊고 깊은 시골 마을에 작고 작은 상점 하나가 있다. 아니, 사실은 상점이라 보이지는 않고 예쁘게 가꾼 정원과 함께 ‘맑은결공방’, ‘맑은결상점’이라는 목간판이 보일 뿐이다. 궁금증이 일어난다. 어디에 상점이 있다는 거지? 금세 호기심이 일어 마당 안으로 들어선다. 호호호 웃으며 주인이 반겨준다. 마당에서 금방 뜯어 내린 박하차를 손님에게 건넨다. 조심스러운 마음은 가시고 편안해질 즈음 드디어 작은 공간을 발견한다. 여섯 평 남짓, 말 그대로 상점인 듯 상점 아닌 듯한 모습을 한 호기심 천국이 펼쳐져 있다. 어느
충북 괴산에서 밤새 비가 쏟아지고 난 아침에는 수옥폭포로 가야 하는 이유가 세 가지 있다. 많은 비로 불어난 폭포수가 장관을 이루며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폭포에서 떨어져 계곡으로 흘러가며 공기까지 가득 채운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물기를 머금어 채도가 높아진 초록은 이곳을 비현실의 공간으로 착각하게 만든다.그렇다고 내 최종 목적지가 수옥폭포는 아니다. 수옥폭포를 바라보며 옆으로 난 나무 계단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면서 오른다. 그리고 이내 사방에 초록 병풍을 두른 저수지와 맞닥트린다. 때마침 깊고 고요한 물
비 한 방울 없이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 지가 며칠째다. 더위에 잠을 설치다 일어나 들판으로 나갔다. 새벽 다섯 시, 여전히 바람 한 점이 없다. 요즘같이 더운 날은 해 뜨기 전부터 들판에서 일이 시작되는데, 오늘 아침은 콩밭에 허수아비가 제일 먼저 아침 작업을 개시했다. 드넓은 초록 들판, 옥수수는 한껏 키를 올리고, 가을에 수확할 콩밭도 한창 초록이다. 논의 모들은 초록으로 물결을 이루고, 논둑과 밭둑의 느티나무와 함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하지만 아름답기만 한 새벽 들판은 사실 ‘100m 미인’이다. 멀
충북 괴산의 관광명소인 문광저수지 둑길을 걷다 보면 너른 들판에 그려진 아름다운 논그림을 볼 수 있다. 해마다 다른 주제를 가진 도안으로 모내기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기다란 빨대를 논바닥에 꽂아서 라인 작업을 하고 거기에 색을 맞춰 모를 심은 다음 다시 빨대를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2008년에 처음 시작한 유색벼 논그림은 17년째 이어오고 있는데, 2023년부터는 괴산 4H 청년들이 이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아침부터 뜨거운 해가 내리쬐는 논바닥에 20여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모두 종이 한 장씩을 들고 도
충북 괴산에는 토종작물을 채종하고 경작하는 농장인 우리씨앗농장이 있다.우리씨앗농장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농장에 한 번이라도 다녀간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느티나무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름드리 나무그늘 아래서는 농장을 찾아오는 사람들과의 다양한 만남이 이어지고 오순도순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또 아이들도 어른들도 나무에 매단 그네를 타면서 초록 잎새 사이로 피어난 하늘을 올려다보는 즐거움을 잊지 못한다.올해로 느티나무가 환갑을 맞았다. 농장 안팎 사람들에게 느티나무가 얼마나 귀한지 그냥 넘어가기가
요즘 시간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시도 때도 없이 회오리바람이 불고 태풍이 강타하고 천지사방에서 사람도 자연도 우리에게 타격을 가한다. 그렇게 봄이 오는 걸 알지 못할 정도로 어지러웠지만 장날 풍경을 만나보니 그래도 봄이 와 있었다.충북 괴산 산막이시장에서는 3일과 8일에 오일장이 열린다. 큰 길을 사이에 두고 읍내로 16길과 15길로 이어지는 제법 큰 장이다. 아마도 괴산에서 이만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 드물 것이다. 인구가 3만6000여명밖에 안 되는 괴산에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같은 게 없다. 그러니 필요한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