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파는 곳은 오가는 이의 발걸음 잡아끌어 문전성시를 이룬다. 꽃 한 송이를 건네는 주인장의 손길에는 봄 기운까지 흠뻑 담겨 받는 사람의 마음에도 꽃을 피운다. “꽃을 드립니다!” 예쁜 꽃 한 송이를 장바구니에 담지 않을 재간이 없다.
모판 앞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상추며 고추모종 같은 게 아니다. 시골 텃밭에는 그보다 더 다양한 작물들이 자란다.
입맛을 돋구는 봄 채소들은 어르신들 장바구니에 일번으로 채워진다. 하도 비싸서 들었다 놓았다 하던 채소들도 이제 좀 살 만한 가격이 되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왔을 할머니 채소장수는 시끄럽게 오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도 까무룩 졸음이 쏟아지고, 크게 판을 벌린 노점들 사이에 손바닥 만한 자리를 구해 앉은 할머니는 새까맣게 흙때가 낀 손톱을 보여주며 직접 캔 냉이, 달래, 돌나물을 팔고 있었다. “할머니, 돌아나오면서 사러 올게요.” “다시 온다는 사람 아무 소용 없어.” 냉이 한 바구니를 보여 주며 친절히 말하던 할머니가 눈을 돌리며 하는 한 마디에 등이 따가운 채 장터 골목을 지나왔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왔을 할머니 채소장수는 시끄럽게 오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도 까무룩 졸음이 쏟아지고, 크게 판을 벌린 노점들 사이에 손바닥 만한 자리를 구해 앉은 할머니는 새까맣게 흙때가 낀 손톱을 보여주며 직접 캔 냉이, 달래, 돌나물을 팔고 있었다.
요즘 시간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시도 때도 없이 회오리바람이 불고 태풍이 강타하고 천지사방에서 사람도 자연도 우리에게 타격을 가한다. 그렇게 봄이 오는 걸 알지 못할 정도로 어지러웠지만 장날 풍경을 만나보니 그래도 봄이 와 있었다.
충북 괴산 산막이시장에서는 3일과 8일에 오일장이 열린다. 큰 길을 사이에 두고 읍내로 16길과 15길로 이어지는 제법 큰 장이다. 아마도 괴산에서 이만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 드물 것이다. 인구가 3만6000여명밖에 안 되는 괴산에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같은 게 없다. 그러니 필요한 것들을 구하려면 여기 오일장만한 곳이 없다. 그래서 괴산 오일장에는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사람들의 필요가 만들어내는 시장 풍경은 그러니 계절마다 다른 모습이다. 봄이면 각종 채소와 꽃 모종이 시장 전체를 알록달록 환하게 물들이고 여름이면 무더위에 여기저기 모기향불 냄새가 진동하기도 한다. 가을이면 장 담고 김장할 준비를 해야 하니 온갖 김장 채소전과 옹기전이 널찍이 자리를 잡고, 꽃이 귀한 겨울에는 화려한 색깔의 조화 시전이 등장하기도 한다.
괴산에 내려와서 산 지 6년 쯤 되고 나니 필요한 게 있으면 오일장에 나가봐야지 하면서 나도 오일장을 세고 있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시골 오일장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없는 건 없고 필요한 건 다 있다.
카메라를 메고 다니다 보면 시골 오일장은 변한 게 없으면서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시절이 달라지니 파는 물건도 조금씩 달라진다. 카세트테이프 대신 USB가, 사과와 배 대신 열대과일이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사람들도 조금씩 달라진다. 찍을 게 뭐가 있냐며 궁금해하던 어르신들 대신 손사래를 치면서 찍지 말라고 역정을 내는 상인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어떤 상인 한 분 말이 오일장에 나오는 상인 중에는 형편이 기울어서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고, 그러니 주변 지인들이 모르길 바라는 사람들도 더러 있어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슬쩍 이야기해 줬다.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고, 어쩔 수 없이 양손 가득 장을 보았다. 모종도 몇 개 사고, 비싸서 안 사 먹던 오이며 파프리카도 몇 개 샀다. 무거워서 낑낑대면서도 그렇게 마음이 좋을 수가 없다. 요즘 아무리 물가가 많이 올랐어도, 그래도 지갑 부담이 훨씬 적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시골 오일장에 봄이 왔으니, 이제 온 들판과 숲에도 봄이 내려앉을 것이다.
일옷 매장에도 온갖 꽃이 한창이다. 뭐니뭐니해도 밭에 나갈 때는 꽃무늬 일옷이 제격이다. 요즘도 여전히 만원 짜리 한 장이면 위아래 일옷 한 벌을 장만할 수 있으니 그렇게 마음이 푸근해질 수가 없었다.
들판에 나갈 채비를 하는 데 빼 놓을 수 없는 게 장화다. 요즘은 색도 디자인도 다양해져서 봄들판하고 아주 잘 어울리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시장구경 절반은 먹는 거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오일장에서 사람들이 줄을 제일 길게 서 있는 곳은 십중팔구 바로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파는 곳이다.
만물상도 오일장에서 빠지지 않는다. 겨울이 지나면서 집이며 하우스며 손봐야 할 곳들이 쌓였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더니 자세히 보니 우리 집에서도 꼭 필요한 물건들이고, 전부 하나씩은 갖고 있다. 뭐든지 엔간하면 직접 고쳐가며 달래가며 살아야 하는 게 시골집이다.
큰길을 건너 15길 쪽 장으로 들어오면 16길보다 제법 한산하다. 먹거리들이 16길 쪽에 모여 있어서 더 북적이는 것도 있고, 15길 쪽은 철물점이나 잡화점, 옷가게 같은 생필품 가게가 더 많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온 길에 마음속에 적어뒀던 물건 몇 개를 찾아보았다. 철물점에서 그동안 벼르던 나비 너트 두 개와 플라스틱 키를 샀다.돌아 나오는 길에 보니,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가운데 유독 지팡이를 짚은 채 빈손이거나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든 노인이 많았다. 주변 상인들 이야기로는 버스 시간 맞춰 장날마다 나오는 어르신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하루 종일 홀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이 많으니 사람 구경할 수 있는 왁자한 장터는 더없이 좋은 놀이터겠다 싶었다.
이영규 괴산 목도사진관 대표
오랫동안 출판일을 하면서 사진 작업을 하다, 지금은 충북 괴산군 불정면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오랜 문화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다. 괴산의 청년농부들을 만나면서 <청년농부>라는 첫 책을 냈고,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을 돌아보면서 사람과 풍경을 함께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