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의 영산포오일장은 영산포풍물시장을 중심으로 열린다. 오일장 입구에 작은 안내판이 하나 있는데 영산포가 어떤 곳이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게 해준다. 안내판을 그대로 옮겨 구구한 설명을 대신해본다.
“영산포는 천혜의 뱃길이자 수송로였던 영산강을 끼고 있으며 호남선이 1914년 개통되면서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1920년 8월 영산동에서 장이 열리기 시작하여 전남 서남부 8개군의 도매시장 역할을 하였고 특히 우시장은 하루에 200~300마리의 소가 거래될 정도로 번성하여 한때는 제주도 말까지 거래될 정도였다. 2003년 5월 지금 자리에 풍물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단장해 다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로 넘쳐나던 생기와 더불어 왁자지껄하던 소리들이 사라지고 없다. 호객, 흥정의 소리와 함께 살아 움직이던 그 영산포오일장이 아니다. 장터 초입에서 과일을 파는 상인의 이야기로는, 오가는 사람이 너무 없어 장터에 오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나마 동남아 지역에서 온 노동자들이 며칠간 먹을 식재료들을 한꺼번에 사느라 찾으니 다행이라는 말도 하셨다. 아직은 오일장이 대형마트 등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해산물이나 농산물을 살 수 있기 때문이겠다.
6월의 오일장은 최북단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식재료들이 있다. 오이지용 오이를 1접(100개)이나 반접씩 포장해 팔고 있다. 괜찮은 오이를 만나면 무조건 한 자루 사서 들고 온다. 오이지는 아무리 넉넉해도 여름을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남은 오이지로 장아찌를 담그면 참 좋은데.
오이뿐이겠는가. 감자도 산더미처럼 여기저기서 보인다. 이때 사서 삶아 먹으면 껍질이 얇고, 분도 많이 나서 먹는 재미와 맛이 최고다. 오이소박이 담가 익었을 때 같이 놓고 먹으면 여름 간식으로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싶다. 마늘은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작두를 앞에 놓고 줄기를 잘라 담아주면서 판다.
동행했던 사진작가는 어머니 심부름이라며 2접을 구입했다. 마늘에 질세라 양파도 산더미로 쌓여 있다. 이맘때 양파는 덜 맵고, 달아서 생으로 먹기에도 꽤 괜찮다. 된장 한 숟가락 종지에 떠 놓고 찍어 먹으면 찬물에 만 밥 한 그릇 후딱 해치울 맛이다.
이때 사서 쟁여놓고 싶은 완두콩도 여기저기 흔하다. 밥에 놓아먹으면 달달하니 반찬이 없어도 밥이 술술 넘어가게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완두콩 음식으로 완두콩죽을 빼놓을 수 없다. 쑤어 놓고 스스로 감탄하는데, 완두콩죽을 끓여주면 다들 너무 좋아라 하니 넉넉히 사야 한다. 그래야 한다.
홍어를 포함해 흑산도의 생선 실은 배가 들어오던 곳이 영산포다. 영산강과 바다가 만나는 포구다 보니 이곳 오일장에는 전체 규모 대비 해산물이 많은 편이다. 해산물을 파는 매대마다 아예 수도가 연결되어 있고, 깨끗하고 편하게 작업해 팔 수 있게 해놓았다. 6월은 황석어와 조기와 밴댕이가 제철이다. 이 세 생선 모두 소금에 버무렸다 김치를 담거나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황석어젓갈은 김치를 담가 먹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밴댕이젓갈은 양념해 밥상에 올린다. 조기젓갈도 살을 발라 무쳐 먹거나 잘 달여서 김치를 담그면 감칠맛이 아주 좋다. 사고 싶게 만든다. 흔하지 않은 맛살도 나와 있다. 이때가 병어 제철이라 좌판 가득 병어만 놓고 파는 상인도 있다. 몇 마리 사다가 감자 깔고 지져먹고 싶다.
과거 흑산도에서 출발해 영산포로 들어오던 홍어는 다른 생선들과는 달리 상하지 않고 삭아 있어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제는 과학이 발달해 싱싱한 홍어를 육지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물론 포획한 그 자리에서 먹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아무튼 홍어를 많이 만날 수 있으려나 싶었지만 생물 홍어를 파는 어물전은 딱 한 곳뿐이었다.
마침 허리가 꼬부라진 한 노파가 홍어 흥정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 흥미로웠다. 반 마리로 잘라 파는 것도 신기했다. 홍어의 애는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있어 안 가져가신 분의 것도 같이 담아주신다. 꼬리는 하나고 가운데 뼈도 하나인데 반 마리 가격에 가운데 뼈와 꼬리를 담아주시고 애도 하나 더 넣어주신다. 크림처럼 입에서 녹을 애의 맛이 그려진다.
홍어 팔고 사는 모습을 보다가 돌아오는 길에 옛 포구 근처에 있는 홍어거리로 갔다. 삭힘의 단계별 맛체험도 하고, 입에서 녹는 홍어애도 먹고, 홍어애탕도 먹었다. 버리는 것 하나 없이 한 마리의 홍어가 내는 다양한 맛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버릴 것 없는 사람이 맞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