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용두기업이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용의 머리가 되는 기업이다. 이 기업은 특정한 기업을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라 농업산업화를 선도하는 기업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영어로는 ‘리딩 엔터프라이즈’로 번역된다.
용두기업의 출현은 1990년대부터이지만 본격적인 출현은 2000년대 이후부터다. 2001년 중국은 WTO 가입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당시와 같은 소농 구조 하에서는 농업경쟁력을 갖출 수 없기 때문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국가 주도의 일방적인 농업 규모화와 산업화를 추진할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그랬다가는 농촌에서 밀려난 농민들이 큰 문제였다. 더욱이 정부는 농촌에 투자할 자본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기업의 농업투자였다.
농업산업화는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생산, 가공, 유통(판매)이 그것이다. 농업산업화를 위해서는 안정된 생산 기반을 갖춰야 하고, 이를 부가가치화 할 수 있는 농산품 가공이 뒷받침돼야 하며, 이렇게 생산된 농산품은 안정적으로 판매돼야 한다. 우리나라보다 더 영세한 중국 농가는 이러한 농업산업화를 추진할 기반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중국은 생산(머리), 가공(몸통), 유통(꼬리)을 하나의 산업체인(용)으로 묶어 비상하는 기업, 즉 용두기업을 적극 육성했다. 용을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의 특유한 비유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기업의 농업투자를 적극 유도했고 정부 차원에서 국가급, 성급, 시급, 현급 용두기업을 선정해 관리 및 육성했다. 중국 농촌에 가면 커다란 농업 관련 공장시설들이 많은 것도 이러한 정부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짧은 시간에 중국이 농업산업화를 이룩한 것도 이들 용두기업의 역할에서 비롯됐다. 중국은 용두기업을 통해 시장개방화 시대에 중국 농업경쟁력을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업이 농촌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토지와 인력이 필요하다. 특히, 농촌에 생산, 가공, 유통 시설 등을 짓기 위해서는 대단위의 토지 확보가 우선시 된다. 그런데 사회주의 중국 농촌에서 토지는 국가, 정확히 말하면 집체(마을) 소유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이후 집체 소유의 토지를 각 농가에 장기임대 형식으로 분배했다. 즉 소유권은 마을이 가지고 사용권만 농가에 분배한 것이다. 하지만 농가가 농사를 지속하는 한 농지는 반영구적으로 농가에 귀속되기 때문에 농가의 입장에서 토지는 자신의 소유재산이나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 농민에게나 마찬가지이지만 토지는 농민의 생명이다. 그런데 농업산업화를 위해서 기업은 농민의 토지가 필요하다.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토지를 쉽게 기업에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지방정부, 마을위원회 등이 중재해서 기업과 농가 간의 협력체계를 만든다. 기업은 농가의 토지 사용권을 장기간 임대를 하는 대신 농가에 대한 일자리와 소득을 보장해주고, 농가는 자신의 농지를 기업에 지분참여 형식으로 넘기고 여러 보상체계를 받는다. 농가가 자신의 토지를 기업에 넘기고 그 기업에 고용돼 계속 농사지을 경우 토지사용권 이양에 대한 보상금, 농업노동력 제공에 따른 월급(기본급), 농사 결과에 따른 성과급 등을 받는다. 이러한 체계는 기업과 농가 간 계약에 의해 이뤄진다. 농민이 ‘농업노동자’로 전환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마을위원회 혹은 지방정부에서 농민들과 협의 없이 농지를 기업에 넘겨 농민들의 반발을 사는 사례가 많다. 심한 경우, 농민들과 지방정부 간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2016년 중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우칸촌 사태’는 촌서기가 지방정부 간부와 짜고 촌민의 토지를 기업에 넘기다 발생한 사건이다. 또 많은 용두기업이 농민과의 계약을 저버리고 도피하거나 파산하기도 한다.
이처럼 용두기업의 성장에는 명암이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정부의 향촌진흥 정책과 맞물려 더욱 비상하는 느낌이다. 중국의 유수 온라인플랫폼 기업 등도 농업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과 여건이 다르지만 용두기업은 분명 우리나라 농업산업화에도 깊은 고민을 안겨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