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국은] 백두산과 유수아동

  • 입력 2025.07.13 18:00
  • 수정 2025.07.13 20:04
  • 기자명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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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지난달 직장 동료들과 백두산에 다녀왔다. 개인적으로는 29년 만의 백두산 등정이었다. 29년 만에 찾은 백두산은 많이 변해 있었다. 전에는 장백폭포를 지나 올라가면 천지에 닿았고 그곳에서 천지 물에 손도 씻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길이 폐쇄되고 서파와 북파라는 두 등정 코스가 개발돼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틀에 거쳐 서파·북파 코스를 모두 올랐는데 다행히 두 번 다 날씨가 좋아 천지를 볼 수 있었다. 백두산 등정 첫날이 공교롭게 6월 15일이어서 더 뜻깊었다. 나는 천지를 바라보며 내란청산과 민주주의 회복을 기치로 출발한 새 정부의 성공과 남북 관계 및 한중 관계 회복을 기원했다.

여행은 어디에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같이 가느냐도 중요하다. 또 중요한 게 여행 가이드다. 우리 일행의 가이드는 전씨 성의 40대 남자 중국 동포(조선족)였다. 그는 여행 내내 백두산의 자연환경, 연변의 역사, 중국의 관광지, 가족사 등에 관해 얘기해 줬다. 그중 흥미로웠던 것은 그의 가족사였다.

전씨의 고향은 연길이고 그의 아버지는 국영기업 간부였다. 한중 수교 이후 한국 진출 붐이 일자 그의 아버지는 한국을 가기 위해 준비하다 비자 사기를 당해 쫄딱 망했다고 했다. 그 후 재기해 양친은 한국으로 일하러 떠났고 그는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고 했다. 부모님이 한국에서 보내준 돈이 있어 용돈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어린 시기, 부모님 없는 그의 상실감은 컸다. 고등학교 때는 편찮아진 할머니를 돌봐야 해서 공부에 소홀했지만 다행히 나중에 정신 차려 공부에 매진했고, 북경의 대학을 졸업 후 북경 등지에서 일하다 현재 고향 연길에 와서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대학을 다니고, 또 번듯하게 결혼해 아이까지 낳아 키울 수 있었던 건 부모님 덕분이며, 부모님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한 한국에 감사했다. 그의 말엔 진실함이 배어 있었다.

전씨처럼 부모가 돈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나면서 홀로 농촌에 남겨진 아이들을 중국에서는 ‘유수아동’이라고 부른다. 중국 농촌에는 대략 4200만명의 유수아동이 있다. 그들은 보통 조부모와 함께 살며 1년에 한두 번 부모를 만나기도 하지만 심하면 몇 년에 한 번 만나기도 한다. 조부모와 함께 살기 때문에 그들의 교육·영양·인성·사회성 등은 매우 불리한 처지에 놓인다. 조부모가 그들을 엄하게 통제하지 못해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 한국에도 보도됐듯 유수아동 세 명이 다른 유수아동을 괴롭히다 살해해 암매장한 사례가 있고, 올해 초 필자가 번역·출간한 책 <량좡 마을 속의 중국>에선 유수아동들이 물에 빠져 죽은 일이 다반사이며 고립돼 살던 고등학생이 음란비디오에 중독돼 마을 할머니를 성폭행하고 살해하는 충격적인 내용도 나온다.

유수아동 관련 사건사고가 빈번해지면서 중국 정부가 대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듯하다. 현재 유수아동의 약 30%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빠른 산업화 그늘에서 신음하는 사람은 농촌에 남겨진 아이들, 노인들이다. 전씨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절친의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백두산을 품은 듯한 그의 마음이 고마웠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잘 성장한 그가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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