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민대학 문학부 교수이자 작가인 량훙은 나름 성공한 지식인 축에 속한다. 그녀는 중국의 곡창지대라고 할 수 있는 허난성의 시골 마을에서 어렵게 자라 그곳에서 대학을 나와 베이징사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후 중국의 명문대학인 중국인민대학의 교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의 일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일에 치여 사는 삶, 무언가 쫓기는 듯한 불안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항상 이런 삶은 진짜가 아니며, 인간의 본질적인 의미를 구현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 삶은 내 마음과 고향, 이 땅, 그리고 가장 넓은 현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허난성의 량좡 마을을 찾았다. 그녀가 대학을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나기 전 20년간 살았던 마을이다. 그녀는 늘 고향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고향은 나에게 가장 깊고 고통스러운 감정이었고 수백만의 중국 농촌 마을이 질병과 슬픔의 중심지로 여겨질수록 나는 량좡 마을을 비롯한 중국의 농촌 마을을 외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량좡 마을을 찾아가 고향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마을 사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며 반골 기질 때문에 마을 간부들과 끊임없는 불화와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서로를 의지하고 위하며 살아온 여섯 남매(1남 5녀)의 생존기와 가족애를 잔잔히 풀어나갔다.
그녀는 가족 얘기를 시작으로 마을 얘기, 지역 얘기로 범위를 넓혔다. 마을 사람들의 표정 하나, 눈짓 하나, 말투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녀는 대약진운동이 초래한 대기근의 참사, 문화대혁명 시기 이념투쟁의 비극, 개혁개방 시기 토지개혁의 혼란, 그리고 후진타오 시기 추진한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의 모순 등을 통해 중국 현대사를 살아온 마을 사람들의 고통과 좌절, 그러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러한 내용을 담아 2010년 <량좡 마을 속의 중국>이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논픽션 작품으로 출간된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중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동안 중국 농촌문제를 다룬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이 작품만큼 고통스러우면서도 울림을 주는 작품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신중국 성립 이전 중국 농촌의 현실을 학술적으로 가장 잘 분석한 작품이 페이샤오퉁 선생의 <향토중국>이라고 한다면 량훙 작가의 <량좡 마을 속의 중국>은 문학적으로 오늘날 중국 농촌 현실을 가장 잘 다룬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량훙 작가는 <량좡 마을 속의 중국> 출간 이후 2012년에는 고향을 떠난 량좡 사람들의 이야기인 <출량좡기>를 출간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고향을 떠나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시안 등 대도시로 가서 하급 노동자, 즉 농민공으로 살아가는 고향 청년들의 힘겨운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세세하게 기록해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그 후 그녀는 다시 고향 마을로 돌아가 지난 10년 동안 고향 마을의 변화를 기록해 <량좡 마을 10년>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작가 자신의 고향을 다룬 이 세 권의 책을 중국에서는 ‘량좡 3부작’이라고 부른다. 이 책의 출간으로 중국에서는 ‘중국 농촌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가?’, ‘중국 농촌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등 많은 논쟁이 벌어졌고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23년 말 한 출판사로부터 량훙 작가의 ‘량좡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인 <량좡 마을 속의 중국>에 대한 번역 의뢰를 받고 작년 초부터 번역을 시작해 ‘산고’ 끝에 이번 달 말에 출간될 예정이다. 번역은 쉽지 않았지만 이 책의 가치를 알기에 보람이 더 컸다. 량훙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량좡 마을에 관해 20년이고 30년이고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쓰겠다고 말했다. 삶과 문명의 뿌리인 고향과 농촌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과 지식인으로서의 굳은 책무 의식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작가의 그러한 마음이 우리 사회에도 전달되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