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안에서 터지는 초록의 향연, 홍동 완두콩

  • 입력 2014.05.25 14:31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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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엘 갔었다. 내가 좋아하는 홍동엘 갔었다. 농촌에서 살아보려는 젊은이들이 모인 농장이 있어서 그곳에 갔었다. 이십 대의 젊은 친구들이 된장을 담아보고 싶다고 하여 재능기부 강의를 한 번 다녀왔었고 그리고 그 장을 가르기 위해 그 농장에 두 번째 방문을 했었다.

두 번에 걸쳐 만난 그 친구들은 그곳에 한시적인 정착을 한 친구도 있었고, 도시에서 식생활교육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열심히 공부하는 요리사도 있었고, 아주 다양한 더 많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은 농촌에서 혹은 도시의 텃밭에서 아니면 자신이 일하고 있는 건물의 옥상에서 손바닥 크기의 농사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키워낸 채소와 아는 농부들이 농사지은 야채들로 한 달에 한 번씩 홍동에 모여 음식을 해서 나눠먹으며 지낸다.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살아낼 세상을 같이 가보는 것이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 거기 모여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그들의 삶은 다져지고 있고 그래서 나는 그곳 홍동이 더 좋아졌다.

홍동에는 전국의 귀농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 풀무학교가 있고 풀무학교가 이끌어낸 수많은 현장들이 있고 그 결과 만들어진 로컬푸드 매장도 있고 무엇보다 그 모두가 버무려진 홍동만의 문화가 있다. 아마도 그런 까닭에 도시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곳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틈이 날 때마다 가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고.

교육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같이 갔던 동료강사와 함께 로컬푸드 매장에 들러 이 계절에 나온 농산물 구경을 하고 반갑고 고마운 마음으로 장도 보았다. 이 계절을 대표하는 마늘쫑 한 줌, 아직 덜 굵어진 대파 한 단, 그리고 완두콩 한 망을 사고 홍성한우도 한 칼 사가지고 돌아왔다.

집으로 도착해서는 제일 먼저 완두콩을 쪘다. 아주 살짝 쪄야 그 아름다운 초록빛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 선명해진다. 손으로 만지기도 힘들 만큼 뜨거운 콩깍지를 열고 깍지 안의 콩알들을 꺼내 입에 넣으면 그 알들이 톡톡 터지면서 단물이 쏘옥 목을 타고 넘어간다. 이렇게 쪄서 먹는 완두콩은 덜 익은 깍지들이 더 대우를 받는다. 아직 덜 여문 콩들은 콩 안의 탄수화물이 단당류에서 다당류로 가는 중이어서 완숙 완두콩보다 단맛이 더 많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바구니를 다 먹고도 좀 서운하게 맛나다.

완두콩 나올 때면 꼭 한 번은 먹고 지나가야 하는 음식 아닌 음식이 바로 이 완두콩찜이라면 수확이 끝날 때까지 몇 번을 해먹어도 좋은 것은 바로 완두콩밥이다. 평소엔 현미니 잡곡이니 하여 여러 가지 곡식을 이용해 밥을 하지만 완두콩밥을 할 땐 백미만으로 밥을 하는 것이 완두콩에 대한 예의다. 그래야 완두콩이 가지는 찬란한 초록의 봄빛을 온전히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산의 나무들이 연둣빛을 버리고 짙은 초록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나는 아직 봄을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아 몸살을 한다. 그 마음을 아는지 아카시아 흰 꽃이 피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여름으로 가던 초록들이 걸음을 잠시 멈추면 완두콩이 등장하여 나의 이별에 위로의 메시지를 던진다. 완두콩은 아쉽기만 한 봄과의 이별을 의연하게 잘 하라고 신이 나에게 준 선물 같은 것이라 감사하다. 눈으로만 즐기던 초록이 아니라 입으로도 즐길 수 있는 축제 같은 것이라 더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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