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역설

  • 입력 2014.06.22 21:08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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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을 딴다. 작은 것을 한 알씩 따자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럴 만도 하다. 한 시간을 따도 20kg 한 상자 채우기가 어렵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땀을 흘리다 보면 어느새 상자들이 채워져 간다. 저것이 몸에 좋다니 사람들이 불티나게 가져갈 것이고 그로인해 농사지은 맛이 나는 게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매실이 넘쳐난단다. 해마다 그나마 몇 줌씩 팔아주던 소비자 쪽에서 가져 오지 말라고 한다. 가격이 너무 싸서 시장에서 샀노라 한다. 검색을 해보니 말도 안되는 가격에 경매되고 있다. “매실 10kg짜리 5상자 경매가격이 만원! 농가수취가격 300원!” 에라 이럴바엔 인심이나 쓰자. 여기저기 나눠 주고도 100kg이 넘게 남는다. 그냥 다 효소 담그기로 한다. 효소 만들어 놓으면 음식 할 때 쓰고, 청량음료로 마시고, 여기저기 들고 날 때 빈손으로 가지 않아서 좋다.

한 농가의 주작목인 경우에 수확이 많아지면 문제가 생긴다. 들고나는 살림의 비율에 균형이 깨져 쪽박을 차기 십상일 때가 많다. 이른바 풍년 농사에 배곯는다는 말이다. 요즘 양파나 마늘 그리고 각종 채소, 과채류들이 따뜻한 월동으로 풍작을 이뤄 농민들의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풍작은 가격하락이라는 등식이 성립한 것은 꽤나 오래된 일이다. 80년대 개방농정이 시작되면서 이런 현상들이 심해졌다. 예전에는 어떤 작목에 주요 산지가 있었다. 참외는 은천, 포도는 시흥, 복숭아는 소사, 배는 나주, 수박은 고창, 생강은 서산 등으로 주요산지 중심으로 생산과 유통이 이뤄졌다. 그러나 개방이 확대 되면서 단작화가 이뤄졌다. 또 정부가 추진한 규모화 전업화가 단작을 쉽고 빠르게 추진시켰다.

농민들도 살아남기 위해 덤벼들었다. 그러다 보니 주산지 개념이 없다. 전국이 주산지화 됐다. 게다가 좁은 시장에 외국농산물들이 넘쳐나니 공급이 조금만 늘어도 가격은 폭락하고 만다. 그래서 농민들은 심을 만한 작목이라고 하면 우르르 몰려 동반폭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농산물 생산이 늘면 농가 소득이 떨어지고 반대로 생산이 감소하면 소득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이걸 ‘농부의 역설’이라고 한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풍년보다는 흉년이 들길 마음속으로 비는 농부의 마음이 될까. 흉년이 들어야 제대로 대접받는 농산물이 되는 이치 속에서 농민들의 마음도 예전 같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농부의 역설을 두고 6월 15일자 서울경제 사설에서는 농민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 이는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거나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막중한 책임을 간과한 듯해서 씁쓸하다. 언론의 사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앞뒤 잘 가려서 알려야 제대로 된 언론아니겠는가. 농부의 역설도 씁쓸하고 정론직필도 없으니 이래저래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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