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을 하다가 표고버섯을 식재료로 선택을 하고 음식으로 만들어 밥상을 차린다. 소비자협동조합 한살림에서는 표고버섯을 판매하지 않은지 꽤 오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우리나라 사람들도 방사능 오염에 대한 자각으로 방사능 오염 측정기를 들고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절대 안 된다는 사람들도 있고 대사 후 체외로 배출되니 크게 염려할 것 없다는 사람들도 있다. 자연산 표고버섯이 비가림하우스에서 재배하는 표고버섯보다 세슘의 흡수 속도와 양이 스펀지처럼 빠르고 많다고 하며 비가림하우스 재배 표고버섯은 안전하다고 한다. 성장기 어린이나 임산부는 좀 더 조심해야 하지만 일반인들은 괜찮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저런 설왕설래 속에 나는 세계 10대 항암식품으로 알려진 표고버섯의 효능과 인체의 자생력 등을 믿고
구전동요에 두꺼비 노래가 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주께 새집 다오” 필자가 어렸을 때 모래사장에서 주먹을 쥐고 그 위에 모래를 얹고 다지면서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왜 두꺼비에게 새집을 달라고 했을까? 두꺼비는 의뭉하지만 영특하다고 한다. 장마철에 두꺼비가 벌통 앞에 느긋하게 앉아있다가 어느새 벌 한 마리가 입속으로 들어가는걸 보면 놀라울 뿐이다. ‘두텁이 파리채듯한다’는 말이 그래서 있는 것이다. 우스개소리도 있다. 여우, 너구리, 두꺼비가 떡내기를 한다. 이긴 놈이 떡 한 시루를 다 먹기로 한다. 너구리가 폴짝 튀며 내 머리가 하늘에 닿았다고 했다. 여우가 내 머리는 하늘을 뚫었다고 했다. 두꺼비가 느릿하게 말했다. “여우야 머리에 몰캉한 것이 닿는 느낌이 있었지?” 여우가 그렇다고
치아질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잇몸질환과 충치의 원인이 되는 치태(플라그)는 다행히 집에서 매일의 칫솔질을 통해 제거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의 관리만으로도 대부분의 치과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니, 가장 아프지도 않고 경제적이며 효과적인 이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흔히 칫솔질에 대해 ‘3-3-3 법칙’이 잘 알려져 있는데, 사실 여기에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져있습니다. 먼저 식후 3분 이내는 맞는 말입니다. 5분이 지나면 이후로는 입안이 점점 충치에 취약한 상태로 변하게 되므로 식후 칫솔질은 빠를수록 좋고, 특히 잠자기 전에는 칫솔질 후로는 물 이외의 음식 섭취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루 세 번 양치질은 매우 이상적이지만, 단지 횟수를 따진다면 하루 2번으로도 충분합니다. 오히려 횟수보다는 한
선택은 다음 날부터 마을의 집안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보다도 몇 살이 위인 큰집 할아버지는 총기가 흐려져 선택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그럼 우리 애들하고 몇 촌간이냐?”참봉댁 할아버지가 촌수를 물은 것도 정신이 온전치 않아서였다. 족보며 항렬을 꿰고 있던 예전 같으면 금세 몇 촌 지간임을 알았을 것이었다. 정작 촌수가 어찌되는지 헷갈린 것은 선택이었다. 아마 십육 촌쯤이나 될 듯했지만 자신이 없었다.“다 대내간입지요. 칠대 조에서 갈라져 나간 게 선택 아재네니까요.”선택이 우물거리는 사이에 곁에 있던 큰집 장손이 거들었다. 항렬로 따지면 한 대 아래여서 아재라고 칭하긴 하지만 선택보다 서너 살이나 나이가 든 이였다. 게다가 일찍 서울로 가서 학교를 다닌 터라 선택과
나는 완도에서도 배를 타고 한참을 더 들어가는 작은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 너무 배가 고파서 학교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동무들이랑 바닷가에서 성게를 잡고 미역을 따서 성게알로 미역쌈을 먹으며 배를 불렸다고 했다. 요즘도 가끔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장난삼아 놀리면서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 말라고 한다. 성게알 미역쌈은 고가의 일식을 먹을 수 있는 곳에나 가야 구경이 가능한 음식인데 그걸로 배를 불렸다는 이야기는 특히나 젊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이라고.그런 남편과 만나 살면서 나는 매일 매일의 밥상에 언제나 빼지 않고 생선 등 해산물을 올렸다. 그때는 지금처럼 대형마트가 있던 시절은 아니어서 동네마다 있는 시장의 생선가게를 하루가 멀다
일말의 희망이 물거품이 됐다. 그나마 부빌 언덕은 헌재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예상밖에 8대1로 통합진보당 해산은 결정났다. 아울러 국회의원직도 박탈했다. 당원 10만이 종북주도세력에게 휘둘렸다고도 하고 북의 주장과 비슷하다고 추정하기도 했다.헌법재판소는 1987년 민주항쟁의 결과물로 세워졌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로서 역할을 하라고 다짐을 둔 터였다. 그래서 다른 데는 다 몰라도 헌재만큼은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헌재는 소설을 써서 세계만방에 고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른 생각을 말할 자유, 비판할 자유가 핵심으로, 그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독재국가라 할 수 있다. 정당을 선택하는 것은 국민이고 정당의 존폐 또한 국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서 결정하도록 하는 게 헌
마을은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그 사이에 삼촌은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태어난 지 채 열흘이 되지 않은 핏덩이가 낯설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끌리는 게 있었다. 어머니와 삼촌 내외에게 큰 절을 하고 마주 앉자 어머니의 눈시울이 젖어왔다.“삼년 동안 면회 한 번 못 가고, 얼굴이 말이 아니구나. 몸보신이라도 해야 할 건데 집안 꼴이 이러니.”“우선 닭이라도 한 마리 잡아야쥬. 우리 집안 대주가 제대를 했는데 무어가 아깝것시유?”삼촌은 정말 금세 닭을 잡아와 마당에서 목을 비틀었다.“에고, 힘들게 몸 푼 사람한테도 그저 맨 미역국을 끓여주었는데, 느이 작은 아부지가 늬 생각은 참으로 끔찍하게 헌다.”가슴 한 편이 뭉클했다. 예나 지금이나 삼촌은 묵묵히 일만 하면서 두 조카를 위해 산 사람이었다.
내가 지리산으로 내려온 후 얼마 되지 않아 지리산엔 큰 변화가 생겼다. 지리산생명연대의 부설기관으로 (사)숲길이 만들어지고 지리산을 넓게 에둘러 걸을 수 있는 길을 복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리산 둘레를 잇는 길에서 만나는 자연과 마을,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다시 찾아내 잇고 보듬는 길을 찾아내는 길고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2008년 4월엔 지금은 3코스로 알려진 구간 중의 일부를 걸어서 창원마을의 당산나무 아래에 모여 발대식을 가졌었다. 그곳으로 걸어 오르는 길에서 만난 산채나 야생화, 오래된 나무의 새순들이 이른 봄의 햇살과 만들어낸 풍경을 모두 잊지 않고 있다. 당산나무의 잎들이 바람과 만나 내는 소리와 허리 굽은 할머니가 두 손을 모으고 드리는 기원의 소리가 만들어내던 노래는 지금도 내 귀
1680년 5월 20일, 서대문 밖 여염집에서 곤장을 맞은 독 때문에 신음하고 있던 윤휴에게 사약이 내려졌다. 그는 금부도사에게 필묵을 요청했다. 금부도사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유언마저 거부당하자 그는 소주를 달라고 요청했다. 사약의 효과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그는 소주를 마시고 사약을 들이켰다. 그가 죽은 후 조선은 침묵의 제국이 되었다. 불편한 진실을 말하지 못하도록 구조화 됐다.윤휴는 송시열 최대의 맞수였다. 명분만을 숭상하는 주자학을 비판하고 정권유지방편이 돼 버린 북벌을 비판했다. 특히 신분제의 혁신을 주장한 것이 명을 재촉하는 화근이 되었다. 호포법, 호패법 등을 주장했다. 호패법은 형식의 문제지만 민본사상을 담고 있어 양반들의 반발을 불렀다. 호포법은 실제 경제권의 평등문제였다. 그간 양
흔히 치아 교정치료는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 젊은 사람들이 받는 치료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간혹 돌출된 입이나 삐뚤빼뚤한 치열을 가지고 있어도 교정치료를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치과에 오기도 전에 포기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바른 치열과 아름다운 미소를 만들기 위한 교정치료에서 너무 늦은 시기라는 것은 없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건강과 심미적인 것에 관심이 높아진 시대에서는 중·장년층의 교정환자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다음은 교정치료에 관심이 있는 중·장년층 환자분들이 자주 물어보시는 내용입니다.내 나이가 50인데 교정치료가 가능할까요?교정치료에 있어서 나이보다는 치아나 잇몸의 건강상태가 더
구강안면의 골격과 형태 및 치열은 주변 근육 및 연조직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게 됩니다. 정상적인 입술활동이나 저작과 같은 정상 기능은 악골과 치열의 성장을 정상적으로 자극하지만 다음과 같은 비정상 습관은 안면과 치열의 정상 성장을 방해하여 얼굴을 나빠지게 하거나 부정교합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손가락 빨기대부분 손가락 빨기 습관은 출생 직후 시작되며, 3~4세 이후에 사라집니다. 정상적인 연령을 지나 지속되는 손가락 빨기 습관은 배고픔, 빨기 본능 불만족, 불안 또는 주의를 끌려는 욕구 등과 관련될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인 면도 검토되어야 합니다. 손가락 빨기 습관에 의한 힘과 작용방식은 다양하며, 경우에 따라 치아를 전위시키거나 성장하는 골을 변형시킬 수 있으므로 개선을 필요로 합니다. 대표적인 부
군대 생활 막바지에 선택은 졸병일 때 미처 몰랐던 여러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일반 사병들이야 본래 억지로 삼년을 때워야 하는 군대지만 장교들은 달랐다. 그들은 가정을 이루며 사는 직업 군인인데도 월급이 형편없었다. 그야말로 쥐꼬리라는 말이 어울릴 지경이었다. 어느 날 소대장의 호출을 받고 갔다가 선택은 황당한 부탁을 받았다. 장병들에게 나갈 주식과 부식, 각종 보급품이 들어온 날이었다. 그는 선택에게 쌀과 밀가루, 비누, 치약 따위를 따로따로 포장하게 했다. 한 소대가 한 달은 버틸 만 한 양이어서 부피가 엄청났다.“이따 수송트럭 들어오면 이걸 싣고 현리까지 다녀온다. 거기서 다른 차에 실어주고 오면 끝이다.”간단한 명령이었고 선택은 그게 무슨 뜻인지 곧바로 알아들었다. 사병들 사이에 은밀하게 소문으
봄이 되면 끓는 물에 슬쩍 데쳐서 고추장에 무친 고들빼기나물이 꼭 몇 번은 밥상에 올라왔었다. 그때마다 젓가락질을 해보았지만 늘 돌아오는 느낌은 맛있다가 아니고 너무 써서 먹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외가 근처에서 살다가 그곳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했어도 해마다 봄날의 어느 하루 밥상 풍경은 항상 비슷한 연출이 되었다. 할머니가 보내오시는 고들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할머니의 말씀은 한결같이 우리 가족의 건강을 배려한 것이었다.“봄에는 이렇게 고들빼기처럼 쓴 나물을 먹어줘야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고 잔병치레를 하지 않는 거다. 그러니 써도 꼭 먹어라.”돌아가실 때까지 한글을 모르셨던 할머니, 숫자도 모르셔서 버스번호를 그림으로 외웠다가 타시던 할머니시라 어릴 땐 할
목욕을 하지 않아 때가 많이 껴서 때놈이라고 하는지, 뭣이든 떼를 지어 하니 떼놈이라 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중국인들을 얕잡아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표준어가 있다. 되놈이다. 되는 뒤이고 뒤는 북쪽이다. 그렇다면 옳거니! 북쪽 놈이란 말이구만. 압록강 두만강 이북에 사는 사람, 그러니까 여진족이나 흉노족을 일컬음이다. 중국이 우리를 동이(東夷)라하고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고 하는데 바로 북적에 해당하는 오랑캐다. 그러다가 여진족이 천하를 통일하고 중원을 차지해 청(靑)을 세운 다음 중국인이면 모두 되놈이 된 것이다.그런데 우리는 왜 아직까지 뙤놈이라며 중국인들을 얕잡아 보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두 가지 사건이 겹쳐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삼전도의 치욕이다. 인조가 청태종 누루하치
교정치료의 목적은 저작기능과 함께 심미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불어 치아를 고르게 배열함으로써 위생적 관리조건을 만들어 치아와 치주조직의 장기적인 예후를 개선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기능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 반드시 제 시기에 교정치료를 해야 합니다.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교합이 붕괴되거나 부적절한 치열관계로 인해 성장기 비대칭과 같은 골격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시기적으로 급하지는 않기 때문에 시기를 유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기능적인 문제가 없더라도 아름다운 미소를 갖기 위해 환자의 주관에 따라 선택적으로 교정치료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교정치료를 문의하기 위해 찾아오는 환자들의 목적은 다양하지만 가장 흔한 요구사항은 “이가 비뚤비뚤해요”와 “
이승만이 물러난 후 군대 내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제대를 앞두었던 군인들의 전역이 미루어지기도 했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전방부대 일원에는 비상경계령이 내려졌고 일체의 외출이 금지되었다. 데모가 격화될 때마다 북한의 침략 운운하던 연대장의 훈시도 뜸해지고 무언가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으나 말단 병사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고참 동기들끼리 앞으로의 정국을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으로 전망하는 속삭임이 오가는 정도였다.“이박사가 물러나면 대통령은 누가 하는 것이여? 참말로 천지가 개벽을 했나보네.”“시방 고것이 문제여? 즌쟁이 난다고들 안혀?”사회에 대한 상식이라고는 거의 없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군대로 끌려온 이들이 대다수였다. 선택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을 가진
무밭에 첫서리가 내리면 무는 더 이상 밭에 있으면 안 된다. 농부는 무를 뽑아 땅을 파고 묻어두고 무청은 잘라 엮어 그늘에 걸어둔다. 무밭에 첫서리가 내리는 날 배추도 첫서리를 맞는다. 첫서리에 배추의 푸른 잎이 얼어 마음이 조급해지지만 배추가 아무리 불쌍해 보여도 이때 쫓기면서 서둘러 수확하면 안 된다는 것을 농부는 알고 있다. 서리를 서너 번쯤 맞고 배추 스스로 자신의 몸에서 수분을 빼고 체중을 조절한 후에라야 농부는 배추를 수확하고 김장준비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배추에 너무 많은 수분이 김장을 한 후 물러지게 할 것이므로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겨울은 춥다. 계절이 담긴 음식으로만 밥상을 차린다면 더 이상 푸른 채소가 있을 수 없는 때이다. 그래서 이 시기를 대비해 담그는 김장에 모든
지금 우리가 쓰는 연호는 서력기원이라고 하는 서기(西紀)다. 해방 후 단군기원을 쓰기도 했지만 양력을 쓰는 상황에서 서기연호는 필연이지 싶다. 우리가 독자적 연호를 쓴 것은 대한제국의 광무(光武)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전까지는 숭정(崇禎)이라는 연호를 썼는데 이는 명나라 마지막 임금 숭정제(崇禎帝)의 연호다. 중국에 청이 들어섰는데도 청의 연호를 따르지 않고 망해 없어진 명의 마지막 연호인 숭정기원이나 숭정후(崇禎後)를 고집한 것은 여러 연유가 있다.우리나라를 소중화(小中和)라고 하며 성리학이 아니면 말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조선 건국이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할 때는 민본(民本)이라고 하는 사상적 줄기가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명은 조선을 살린 나라로 추앙돼 지금으로
교정치료는 다른 치과치료에 비해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일반적으로 입안에 고정식 장치를 부착하기 때문에 교정치료를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구강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교정 치료 중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교정치료를 시행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환자나 보호자가 담당의사의 지시에 잘 따르고 협조한다면 큰 부작용 없이 교정치료를 마무리 할 수 있습니다.치아 표면의 탈회와 충치 탈회란 치아표면이 하얀색으로 부식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교정치료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발생할 수 있지만, 보통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고정식 장치(브라켓)를 부착하고 있는 교정환자에게 발생 가능성이 높습니다. 음식물이 잘 끼고 칫솔질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탈회는 심하게 진행되면 충치
농민운동에 뜻을 두면서 집안 문제로 갈등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이 집안을 지켜야 할 존재라는 것을 부정한 적은 없었다. 평생을 과부나 다름없이 살아온 어머니나 정씨 문중에서 아무 때나 데려다 부려도 좋은 사람처럼 여기는 삼촌,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간 아우 경택을 생각하면 언제나 애잔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래도 문중의 어른 대접을 받던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신 마당에 그들은 더욱 끈 떨어진 박 신세가 될 것이었다. 마을이나 문중에서 무시 못 할 사람은 선택밖에 없었다. 어쨌든 집안에서 제일 공부를 잘 해서 서울로 유학까지 간 선택이 언젠가 크게 될 거라는 말이 여전히 떠돌고 있었다. 선택은 곰곰 자신의 앞날에 대해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다시 재열들과 만나 농민운동을 한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