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24회

  • 입력 2014.06.29 01:14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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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꽤 따가운 유월 초순이었다. 인섭의 뒤를 따라간 곳은 청계천 둑에서 멀지 않은 허름한 대폿집이었다. 교복을 입은 채 술집으로 들어가는 게 마음에 걸려 주저하자 인섭이 씩 웃으며 돌아보았다.

“걱정 말고 들어오소. 누가 잡아갈 집 아니니까.”

선택은 누가 보는 듯해서 뒤를 돌아보며 인섭을 따라 들어갔다. 토요일이어서 아직 한낮이었다. 술집은 드럼통을 엎어놓은 탁자 세 개가 전부인 옹색한 곳이었다.

“할머니, 술청 비워놓고 어디 가셨수?”

인섭이 안쪽으로 난 문을 향해 큰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말투로 보아 자주 오는 집인 모양이었다.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안쪽에서 문이 열리자 환한 빛이 들어왔다. 문 안쪽에 작은 마당과 우물이 보였다. 어느 가정집 귀퉁이에 가건물을 지어 술집으로 꾸민 게 틀림없었다.

“누구? 아, 천안집 둘째구먼. 학교는 잘 댕기구?”

허리가 굽은 노파 하나가 행주에 손을 닦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탁배기 한 잔 할랴는데, 안주 해 놓은 거 뭐 있수?”


인섭은 숫제 반말 비스름하게 노파를 대했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선택에게 의자를 권하며 인섭은 가방을 뒤적이더니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정형은 담배 안 하시지? 나두 즐기지는 않는데, 귀한 게 한 갑 생겨서 말이야.”

인섭이 답배갑을 들어 보이며 연기를 훅 내뿜었다. 낙타 그림이 그려진 양담배 카멜이었다. 학생이 담배를, 그것도 양담배를 피우다니 실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선택은 괜히 그를 따라 나섰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호의를 품고 대하는 그를 뿌리칠 만큼 냉정하지 못했다.

“신형은 집이 부잔가 보오. 귀한 양담배를 다 태우고.”

겨우 그렇게 대꾸하자 인섭이 껄껄 웃었다.

“부자가 이런 막걸리 집에나 오겠소? 뭐, 동네에서 밥술이나 뜬다고는 하지만 구멍가게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소?”

“집에서 무슨 상업을 하시는 모양이오.”

“장사꾼 집안이지요. 고무신도 팔고 비누도 팔고, 말하자면 잡화점을 한다오. 아버지가 하던 걸 형님이 들어서서 규모를 좀 키워놓았지요. 정형네는 농사를 짓는다고 했지요?”

고무신이나 비누 등속을 파는 잡화점이라면 선택이 아는 집이 하나 있었다. 고향 큰댁의 둘째, 그러니까 선택에게 육촌이 되는 이가 읍내에서 그런 상점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장사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큰댁 할아버지가 상것들이 하는 짓을 한다고 반대했지만 읍내 돈을 다 쓸어 담는다고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되자 이제는 은근히 자랑을 한다고 했다. 선택도 두어 번 그 상점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손님들이 북적이고 대여섯이나 되는 점원들이 종종걸음을 쳤다. 주인은 뒤쪽 책상에 앉아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는데, 함께 간 할아버지에게만 인사를 할뿐, 일가붙이인 선택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돈독이 바짝 올랐구나. 허긴 서 푼을 남기려고 십 리를 가는 게 장사꾼이니, 장사꾼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니라.”

선택의 고무신을 사서 나오며 일가 간에 한 푼 에누리가 없다고 혀를 차며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인섭의 집 역시 그런 잡화점을 한다니, 부자인 것만은 틀림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즉 두부 장사도 안 오고 마땅히 안줏거리가 없는데. 갓 나온 오이가 있어서 좀 들여놨는데 그거나 좀 줄까?”

노파가 막걸리 주전자와 양은 대접 두 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벌써 오이가 나오나? 것도 좋지요.”

인섭이 주전자를 들어 대접에 막걸리를 따랐다. 걸쭉하고 누르스름한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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