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이전에 관한 소고

  • 입력 2014.06.29 01:11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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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이 전주혁신도시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의 이전과 관련해 일부농민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농촌진흥청이 정조대왕의 근대적 농업구상의 발원지인 수원에 터를 잡고 농업근대화의 기수로 50년 넘게 한국농업을 상징하고, 앞으로도 한국농업의 힘과 위상을 만들어 가야한다는 뜻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농촌진흥청의 이전이 근대화의 청산이라는 상징적이고도 실질적인 변화라면 이전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농촌진흥청의 이전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방균형발전이라는 틀에서 진행되었다. 아쉽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하나 놓친게 있다. 그것은 농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농촌진흥청 이전의 당위성으로 확보하지 못한 점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1799년 정조대왕은 수원성을 쌓고 그 안에 행궁을 두었다. 여기에 서유구라는 농업학자를 책임자로 하여 각종 수리시설과 농법, 종자 등을 개발 보급하는 기지로 삼았다. 그 후 1904년 대한제국의 농상공학교의 실습장이 뚝섬에 세워졌고 1906년 일본에 의해 수원 권업모범장이 정조대왕의 흔적 위에 세워졌다. 또한 대한제국의 뚝섬모범장이 수원으로 합병되었다. 이의 관리는 형식적으로 대한제국이었다. 1910년 병탄이 되자 총독부 관할이 되었다. 해방이 되고 1963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농촌진흥청으로 개청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는 정조대왕 이래 근대로의 이행이었다. 정조대왕의 근대로의 이행은 성격을 달리하지만 식민지시대나 이후 조국근대화의 기수 시절 근대화로의 이행은 수탈의 심화과정이며 산업화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산업화는 자본축적이며 이는 기업의 이윤에만 눈독을 들이는 반생명의 심화였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다. 우리농업은 지금도 근대화가 진행중이며 농촌진흥청은 그 중심에 있는 것이다. GAP농산물의 확산은 무엇을 말하는가. GMO에 대한 연구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이 반생명적 행위이며 자본의 이윤에 부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한 어리석음에 기인한다.

이제는 식량주권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더 나가 생명이 순환하는 구조로 농업을 이해하고 재편제해야 한다. 그것이 농촌진흥청의 이전에 부합하는 시대적 과제이다. 농촌진흥청의 전주 이전은 탈근대이며 탈산업화, 탈신자유주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본권력은 식량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한 국가의 주체적 먹거리확보는 자본의 이윤과 무관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 농촌진흥청 이전의 당위이며 시대의 요구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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