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장수 아저씨의 변명

  • 입력 2014.06.15 18:51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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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며 영화감독인 유하의 첫 시집 제목이 ‘바람이 불면 압구정으로 간다’였다. 물론 상전벽해로 변해버린 자본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속내를 고발하는 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인터뷰에서 짐짓 “압구정에는 배밭이 많았고 바람이 불면 배가 떨어지니 배를 주우러 가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던 것으로 기억 한다.

그랬다, 압구정에는 배밭이 많았다. 강남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배밭이 압구정동에는 꽉 들어차 배꽃이 만발했다. 압구정의 배밭이 기록에 남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어릴 때 들은 기억으로는 일본인들이 재배했던 것을 해방 후 지역 농민들이 이어서 가꾸고 확대 한 것으로 안다. 가을이 되면 배를 따느라고 당시에도 일손구하기가 만만치 않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대부분 가을에 소비를 하고 묵이배는 따로 땅속에 갈무리 하여 다음해 봄에 팔기도 했다.

압구정의 배는 달고 시원했다. 이렇게 달고 시원한 맛이야 구릉에 발달한 황토 때문일 테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거름으로 쓰는 인분이다. 60년대 서울은 대부분 재래식 화장실이었고 청소차를 불러 인분을 퍼냈다. 청소차, 그러니까 똥차는 똥장수 아저씨의 부름으로 한강 바지선을 타고 압구정으로 건너온다. 똥을 주문한 배밭엔 귀퉁이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놓고 여기에 똥물을 받는다. 이 구덩이는 대단히 커서 2천리터 탱크로 10대 가량까지 들어가는게 보통이었다.

똥물은 보통 장마가 지나면 받아둔다. 가득 받아두면 햇빛에 소독도 되고 발효도 일어난다. 수분이 증발하고 양이 줄면 거기에 또 똥물을 받아둔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 해동이 되면 그때 배나무 네귀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똥물을 붓고 흙으로 덮으면 제대로 된 거름을 준 것이다.

똥물을 머금은 배맛은 달았다. 아삭한 식감과 시원한 맛을 지금 배맛과 비교할 일이 아니다. 서울에 분뇨처리장이 없던 시절 요긴한 비료였던 인분은 지금 한강으로 버려지는 오물에 불과하게 되었다.

대량생산은 값싼 생산비로 자본에게 이윤을 보장한다. 그러나 거기엔 화학적 비료의 사용이 필수이며 맹독성농약 또한 환경생태를 파괴한다. GMO도 그런 값싼 생산요소다. 그것들이 인체에 미치는 치명적인 것들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한다.

그것의 논리들은 다국적 농산업복합체들이 관피아, 학피아, 언피아를 통해 부단히 주입시켜진다.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몇 가지 현상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흔적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것을 볼 수 있다.

GAP인증 농산물이 더 좋다고 홍보하는 것이나 유기가공식품동등성인증 문제가 단지 농산물의 좋고 나쁨을 가르는 문제가 아니라 집요한 다국적 농산복합기업의 이윤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다. 선거철 불거진 서울시 농약급식문제나, 지난 4월 농약은 “과학이다”로 요약되는 친환경급식문제 제기 그리고 앞으로 방영할 계획인 KBS 친환경인증 기획취재 문제들이 자본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느낌은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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