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섬갈비

  • 입력 2014.06.06 11:46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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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대한제국은 농사의 개량과 상공발전에 관한 회칙을 발표하고 서울에 농상공학교를 세운다. 그리고 그 실습농장(권업모범장)을 뚝섬에 두었다. 그러나 1906년 일본은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식량보급기지로 활용한다는 계획아래 수원역에서 둔전지에 이르는 넓은 터에 권업모범장을 설치한다.

이후 일본은 대한제국의 뚝섬 권업모범장을 수원으로 일원화할 것을 종용하고 뚝섬 권업모범장은 원예모범장으로 축소한다. 뚝섬 원예모범장은 이후 조선의 각종 과일류, 과채류, 채소류들을 신품종으로 대체하고 보급에 열을 올렸다. 뚝섬주변은 보급종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그 바람에 우리나라의 토종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뚝섬은 퇴적토의 비옥한 땅으로 채소농사가 아주 잘 됐는데 그중 상추가 유명했다. 서울 사람이면 누구나 왕십리 미나리꽝의 미나리를 먹었듯이 상추는 뚝섬에서 난 것이 대부분이었다. 상추는 특히 모래밭에서 잘되었는데 퇴적토의 충분한 양분은 밭에 인분을 주지 않아도 되기에 쌈으로 먹는 상추를 기르기에는 최적이었다.

상추쌈은 상추를 한손에 받쳐들고 다른 손으로 보리밥을 떠놓고 고추장을 듬뿍 발라서 입을 크게 벌리고 우적거리며 씹어 먹어야 한다. 그 모습이 마치 갈비를 뜯는 모습과 흡사하여, 상추를 일러 뚝섬갈비라고 하는 것이다.

상추가 우리나라에 길러지기 시작한 것은 꽤나 오래 전 일이라고 한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은근초’라고 하여 남자의 부실을 채워주는 것으로 알려졌고 대부분 약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상추가 가지고 있는 마취성 수면효과들이 그렇게 작용한 것이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민중들에게 널리 퍼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산선생의 배고픔을 이기는 방법에 상추가 등장한다. 상추쌈을 많이 먹으면 허기를 면할 수 있다든가, 상추쌈이 심리적 포만감을 주어 밥을 적게 먹어도 된다든가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어쨌든 뚝섬갈비인 상추는 가정의 텃밭이면 어디나 자라난다. 그것도 토종이거나 토종에 가까운 종자들로 보전되어지는 유일한 채소류라 여겨진다. 그 이유는 상추의 소비와 깊은 관계가 있다. 초여름 텃밭에 뿌려놓은 씨앗이 별다른 손질 없이도 잘도 자라준다. 상추, 쑥갓, 아욱이 텃밭의 주인공들이다. 그들을 늘 먹어야 하는데 텃밭이 보관시설이다. 먹을 만큼만 뜯어 먹으면 된다. 남는 것은 다시 종자로 될 것이 분명하다.

모든 종자가 자본의 이윤보다는 사람들의 생명에 기여하도록 하는 방법이 텃밭 가꾸기다. 농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텃밭가꾸기를 권해본다. 텃밭가꾸기는 자본의 이윤에 저항하는 자연스런 운동이기도 하다.

오늘 점심도 뚝섬갈비다. 함지박에 가득 담긴 상추에 된장을 바르고 밥을 얹는다. 매콤한 풋고추를 얹으면 금상첨화다. 게다가 밥 먹고 나면 슬슬 졸음이 오니 쫓을 필요도 없다. 모정에서 길게 누워 한줌 낮잠으로 봄날의 피곤을 날릴일이다. 남은 일이야 해거름에 해도 늦지 않을 터, 그래야 사람 사는 맛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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