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칫밥 먹는 중에도 상추쌈은 먹는다

  • 입력 2014.06.01 19:55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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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는 생육기간이 짧고 추위에 강해 농가마다 재배하고 더러는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서도 키워먹는 국화과 채소다. 며칠 전 운봉에서 딸기농사를 하고 있는 지인의 하우스에 잼을 만들 끝물딸기를 얻으러 갔다가 상추도 한 아름 얻어왔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어머니랑 둘이 뽀글이된장 한 뚝배기 지져놓고 앉아 찬밥 한 사발로 입이 찢어져라 상추쌈을 먹었다.

어린 시절 자주 가던 외가에선 상추가 나올 무렵이면 쑥갓도 나오고 실파도 텃밭에 있었다. 그래서 상추쌈 먹을라치면 쑥갓도 뜯고 실파도 한 움큼 뽑아 다듬어 씻는다. 그러는 사이 작은 뚝배기에 막장도 보글보글 지진다. 상추 두어 장에 쑥갓과 실파를 얹고 찬 보리밥을 한 술 올린 다음 지져놓은 막장을 간으로 얹어 싸서는 입에 밀어 넣는다.

양 볼이 볼록하니 차마 서로 눈뜨고 봐주기 어렵기에 어려운 사이의 남녀가 같이 앉아 먹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음식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려운 시어머니와 마주앉아 상추쌈 한 번 같이 먹고 나면 서로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면서 웃다가 친해질 수도 있겠다. 허물없이 지내고 싶은 이가 있다면 불러다 상추쌈 넉넉한 밥상을 앞에 놓고 먹어도 좋겠다.

쌈은 서민들의 밥상에서는 물론 임금님 수라상에까지 빈부귀천의 구분 없이 누구나 즐겼던 대표적인 음식이었던 것 같다. 조선조 숙종 때의 실학자 이익은 자신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조선 사람들은 큰 잎사귀만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쌈으로 싸먹는다고 하였고 숙종 3년 4월 26일의 <승정원일기>에는 장렬왕후의 수라상에 상추가 올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익의 지적처럼 큰 잎사귀만 있으면 다 쌈을 싸먹었기에 그랬는지 그날은 담당자가 담뱃잎을 같이 넣었다가 처벌받을 위기에서 숙종의 용서를 받았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재미있는 기록은 또 있는데 영조 때의 학자 이덕무의 <사소절>에 있는 양반들의 쌈 싸먹는 법이다. “상추, 김 따위로 쌈을 쌀 적에는 손바닥에 직접 놓고 싸지 마라. 점잖지 못한 행동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쌈을 싸는 순서는 먼저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그릇 위에 가로놓고 젓가락으로 쌈 두세 닢을 집어다가 떠놓은 밥 위에 반듯이 덮은 다음 숟가락을 들어 입에 넣고 곧 장을 찍어 먹는다. 그리고 입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싸서 볼이 불거져 보기 싫게 하지 말라.”

상추를 고문헌에서는 와거채, 천금채 등으로 불렀고 몸의 열을 내려주며 수분대사를 원활하게 하여 소변을 잘 보게 해주고 수종, 부종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칼슘과 카로틴, 비타민C의 함량이 높고 미량원소와 섬유질성분이 많아 골격이나 모발, 피부 등의 발육 등 성장발육에 도움이 많이 된다. 특히 상추를 자르면 나오는 흰 즙에 쓴맛을 내는 락투신의 성분이 최면작용과 통증을 진정시키는 마취작용이 있어 신경안정이나 불면증에 큰 효과가 있다.

사찰에서는 작은 먹을거리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다 챙겨 먹는다. 그래서 상추가 들어갈 무렵엔 마지막으로 상추대궁으로 전을 부쳐 먹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상추대궁전을 먹을 때가 아니다. 어린 상추로 해먹는 겉절이가 맛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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