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에서 온 오이로 소박이를 담근다

  • 입력 2014.06.15 18:52
  • 수정 2014.06.15 18:53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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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의 몇 안 되는 장수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18년의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낸 선생이 장수를 하게 된 비결을 꼽는다면 그건 단연 직접 농사를 짓고 자신의 채마밭에서 수확한 제철채소를 밥상에 올린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선생이 문집에 남긴 기록을 보면 여름채소 중 아름답다고 표현한 오이를 비롯해 수십 가지의 텃밭채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선생에 힘입어 둘째 아들이 농가월령가를 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농가월령가 오월령에는 ‘오월 오일 단옷날 물색(物色)이 생신(生新)하다. 오이밭에 첫물 따니 이슬에 젖었으며 앵두 익어 붉은 빛이 아침볕에 눈부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집에서 직접 오이를 키워보면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게 단오를 전후로 첫물 오이를 따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따기 시작하던 오이는 점점 많아지고 나중에는 매일 따는 오이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이 열려 여름이 풍성해진다.

95% 이상의 수분을 가지고 있는 오이는 채소 중 수박을 제외하면 가장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 더운 여름을 잘 이기게 해주는 제대로 된 여름채소이다. 열독을 풀어주는 오이는 물 이외의 다른 영양소는 별로 없지만 칼륨이 많이 들어있어 몸 안에 있는 나트륨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작용을 하여 체내의 노폐물을 제거해 주는 역할도 한다. 열독을 풀어주므로 화상에도 치료 작용이 있으며 일사병이나 숙취해독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오줌소태 등의 비뇨기과 질병에도 개선의 효과가 있다. 특히 오이 꼭지의 쓴맛을 가진 쿠쿠르비타신이라는 성분은 암세포를 억제하거나 간염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오이를 굵은 소금으로 쓱쓱 문질러 닦아 4등분 하여 소금에 절였다가 부추소를 넣고 담는 여름김치 소박이는 별다른 양념 없이 담가도 오이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단맛이 익으면서 더욱 두드러져 아주 맛나다. 감자를 삶아서 같이 먹어도 좋고 보리 찬밥을 물에 말아 다른 반찬 없이 먹어도 밥이 절로 목으로 넘어간다.

또한 잘 씻은 오이를 물기 없이 닦아 항아리에 담고 끓는 소금물을 부어 두었다가 채소가 부족한 장마철 입맛이 없을 때 먹는 오이지도 별미다. 이 오이지가 가을까지도 남아있다면 햇빛에 널어 물기를 조금 말려 막장에 한 달쯤 넣어두었다가 꺼내 양념을 해서 먹으면 게장보다 더한 밥도둑임을 알게 될 것이다.

가끔은 오이껍질을 벗기고 음식을 하게 되는 날이 있는데 그때는 그 껍질을 버리지 말고 말려 차로 만들어 마시면 좋다. 물론 제대로 된 오이차는 오이를 반으로 쪼개어 그늘에서 말려 끓여 마시는 것이다. 호과차로도 불리는 오이차를 꾸준히 마시면 부종을 내리고 숙취나 술독을 푸는데 으뜸이며 특별히 갱년기 여성들의 부종에도 아주 효과가 좋다.

며칠 전 다산 선생이 귀양을 살았던 강진의 아랫녘 장흥에 귀농해 사는 젊은 부부에게서 오이 한 상자가 왔다. 팔지 못하고 남은 농산물을 몇 번 처리해준 고마움을 잊지 않고 첫 생산한 오이를 보내온 것이다. 이웃하고 나누어도 남으니 두고두고 맛있게 먹는 것은 소박이를 담그는 일이라 담아두었더니 마침 잘 익어 오늘 아침 밥상에서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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