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사무장으로 마을살림을 해온 지 어느새 3년이다. 마을에 청년이 귀한지라 귀농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장님이 같이 일 좀 해야겠다 하셨다. 마을 통장과 영수증만 잘 관리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막상 해보니 신경 써서 챙길 일들이 꽤 되었다. 새해가 되면 윷놀이도 한판 벌이고, 삼복더위에는 온 마을 식구들이 함께 더위를 이겨내도록 닭도 한 마리씩 잡숴야 하고, 봄·가을로 있는 마을 청소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총회 등 굵직굵직한 행사만도 만만치 않았다. 코로나로 오프라인 행사들은 취소되었지만 마을회관 관리비나 부역 준비 같은 마을
몇 주 전 어느 날 새벽에 마을이장님께서 마을방송을 통해 농업경영체 등록을 언제까지 하라고 안내를 하셨습니다. 기한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남편이 마음먹은 모날 아침에, 농업경영체 공동경영주로 등록하러 갈 참이라고 도장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하나뿐인 도장이 내 손에 없었습니다. 올해부터 협동조합 이사로 등재되어서, 사무실을 이전하려니 도장이 필요하다고 서울 사무실로 올려보냈기 때문입니다. 도장이 없다는 말에, 남편이 대뜸 어떻게 도장이 하나뿐일 수 있냐고, 매우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는 듯 놀라 했습니다. 아니 약간 짜증을 내는
버스 정류장에서도, 밭에서도 모이는 곳마다 작물 이야기가 한창이다. 무엇을 심었는지, 어떻게 자라는지, 날씨가 어떤지 농번기에는 촌에 오로지 식물 이야기로 꽉 찬다.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라는 듯 자신감을 심어주는 새싹은 본격적인 농사의 서막을 알린다.관리기나 괭이로 밭을 갈고 두둑을 짓는 여성농민이 오롯이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농지는 1,000여평 정도 될까. 물론 사람 손이나 트랙터의 힘을 빌린다면 말이 달라지니 여성 농민의 가계 규모가 천차만별 다양하겠지만, 당최 농사만 지어 여유롭게 먹고 사는 그녀들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반갑지 않은 비가 또 왔다. 비가 온다고 하면 갑자기 해야 할 일들이 나를 향해 뛰어오는 것 같다. 비 맞으면 안 되는 기계들도 안으로 들여놔야겠고 하다못해 도랑의 물 흐름을 방해할 만한 뾰족한 돌 하나에까지 신경이 쓰인다.온다는 비에 쫓겨서 허둥대다가 정작 비가 오면 느긋해지는 것이 아니라 미뤄뒀던 또 다른 일감과 몸살기가 마중 온다. 차분하게 늦잠을 자면서 좀 쉬어야겠다 싶다가도 마냥 누워 있을 수가 없다. 냉장고 청소도 해야겠고 밑반찬도 미리 만들어놔야 들일하다 집에 들어와서 밥상 차리는 일이 수월하다. 게다가 머리 염색할 때
날이 풀리면서 농사를 계획한다. 땅을 갈고 씨앗을 챙기는 때가 다가오면 한 해 농사 시작할 생각에 설레면서 한편으로는 심란해진다. 농기계 작업이 필요한 때가 되기 때문이다. 넓지 않은 경작지라 해도 땅을 갈고 고랑을 만들 때는 기계가 꼭 필요하다.농기계임대센터에 전화를 걸어 임대를 문의하니, 담당자가 자꾸 불안해하며 직접 운전할 것인지를 되묻는다. 나는 중장비 운전 자격증도 있고 교육도 꾸준히 받았다고 하는데도 끝내 마뜩잖아한다. 순간, 욱하는 감정이 들지만 이내 참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직원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많고 많은 반장이 있습니다. 생애 최초로 만나는 학급 반장에서부터 방송반, 군대의 내무반장, 일터의 작업반장은 물론이고 농사작목반도 반장이 있습니다. OO반으로 나누는 모든 단위의 책임자는 반장이라고 하니까요. 대관절 반장의 지위와 역할은 무엇이던가요? 아마도 각 단위에서 설정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그 반을 대표해서 거의 모든 것을 감당하는 직위일 수도 있고, 그저 한갓진 감투에 불과한 자리인 경우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책임만큼 수고롭고 영예로운 자리가 될 것입니다. 마을에도 반장이 있다는 것 아시지요? 법정리는 물론이고
작년에 셋째를 낳고 나니 확실하게 내 일상은 다른 모든 일에 우선하여 자식농사를 짓게 되었다. 마흔 가까운 나이로 아이를 5년 만에 출산하니 내리사랑이라고 마치 할머니가 손주를 보는 마음이 이럴까 싶게 아이가 마냥 깜찍하다. 내 자궁과 유방이 키워낸 생명들. 둘째와 터울이 져서 그런지 아기가 감은 눈을 뜨고, 엄마~ 소리를 내고,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하다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첫니가 나는 일련의 과정들이 처음인 듯 신비롭다. 아이라는 씨앗을 품어 자립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정성을 보면 어느 엄마들에게도 저 깊숙이 생명을 거두는
트럭을 몰고 밭에 가는 길에 벚꽃 무리가 이른 아침부터 감성을 들쑤신다. 이쁘기도 하네! 라는 감탄사를 저절로 웅얼거리게 된다. 벚나무 아래에서는 샛노란 민들레가 존재감을 작게나마 뚜렷하게 보이고 산에는 산벚꽃이 하얗게 색을 칠한 수채화 풍경이다.라디오를 들으면서 일을 하다보면 ‘벚꽃엔딩’을 하루에도 몇 번을 듣게 된다.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뭍사람들의 꽃 타령으로 4월이 출렁거린다.무슨 경주라도 하는 것처럼 밭들마다 트랙터 소리가 요란하다. 대파 정식을 할 시기라서 퇴비를 뿌리느라 역
불편함의 시작은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본인 소개도 없이 다짜고짜 내가 시작한 농산물 판매장 소유 여부와 몇 가지 호구 조사를 하더니 이웃 마을에 축사를 소유한 마흔 좀 넘은 남성과 만나보라는 것이었다.워낙 사람 만나길 좋아하고, 결혼 생각도 있는 터라 “만나보면 좋죠”라고 대답했다. “힘들지? 외롭지?”라는 물음에 친구들도 있고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씀드렸다. 다시 몇 살이냐는 물음에 답하자 “이미 너무 늦은 나이”라며, “지금이 지나면 이제는 어렵다. 보내줄테니 연락해라”라는 나무람이 돌아왔다. 절대 지금
잦은 비로 논밭일을 쉴 때가 많은 이즈음에 마실갔다 집으로 오니 웬 선물상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마른미역 한 봉지와 쇠고기가 들어있었습니다. 뭘까 생각해보니, 축협에서 남편 생일이라고 기념선물을 보내왔던 것입니다. 우리 지역은 몇 해 전부터 축협조합원 생일에는 쇠고기미역국 선물세트 배송사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겨우내 지겹게 먹던 굴미역국 대신 오랜만에 쇠고기미역국을 끓여 먹으려니 기분이 살짝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그럼 난 뭐야? 나도 가끔 소한테 사료를 주기도 하고, 눈도 맞추고, 부산물 나오면
햇살, 바람 모두가 적당하여 따뜻하고 산뜻하게 스친다. 겨우내 움츠린 신경과 둔해진 몸과 정신에 생기를 불어넣는 딱 그런 봄날이다. 큰 산으로 둘러싼 이곳의 이때쯤은 아직 찬기운이 머물러야 하지만 일찍이 온 듯한 봄날이 당장은 싫지 않다. 자연스럽게 장독대를 살피고 집주변 양지바른 논두렁에도 손길이 닿는다.전날 남편이 쑥 한 소쿠리 뜯어온 것으로 아침에 쑥국을 끓여 먹고 쑥 뜯을 생각으로 양푼이와 칼을 들고 집 밖으로 나선다. 흙놀이할 생각에 장난감을 한가득 안은 4살 막내는 신이 났다. 어느 날인가부터 아이들은 모래밭을 삽과 괭이
엊그저께 내린 비로 들판이 충분하게 적셔지고 남았는데 비가 또 흙을 토닥거리고 있다. 사흘 후에도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다. 봄이 빠른 걸음으로 오고 있는 모양이다. 마당에서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리는 수선화가 꽃잎 펼칠 시기를 가늠하며 꽃대를 당차게 세웠다. 흙속의 부산스런 움직임이 감지된다.서리가 눈처럼 하얗게 내려앉은 날 대파 파종을 했다.파종하는 일감은 과정이 비슷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플라스틱 포트 상자에 상토를 담는다. 상토를 담은 포트 상자를 겹쳐서 위에서 누르면 자연스럽게 씨앗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만들어지는데 구멍
논두렁에 울긋불긋 꽃이 피었습니다. 한 손에 바구니 끼고 나물 캐러 나온 사람들입니다. 멀찌감치 차를 주차해 두고 논두렁 사이사이 쑥이며 쑥부쟁이며 갓 움터 나온 나물을 캐는 사람들입니다. 마을 할머니들의 놀이터가 어느새 차를 타고 원정 나온 도시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어갑니다. 내가 엊그제 봐둔 곳인데 저 사람들이 벌써 다 뜯어가 버렸다며 원촌댁 할머니가 노발대발합니다. 낼 모레 아들 생일날 해마다 빠지지 않고 새 쑥을 뜯어 떡을 해 보냈었는데 하시며 다른 곳을 찾아 나섭니다. 본촌댁 할머니는 영감님이 냉이국을 제일 좋아해서 지난
이 봄, 몇 가구 안 사는 우리 마을에 건설의 소리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집을 수리한다, 터를 새로 다진다 하여 중장비들이 분주합니다. 노랫말처럼 멀리 사람 듣기 좋고 곁의 사람 보기가 좋지요. 마을에 새로이 이사오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것도 한결 젊은 층이 오게 된다는 것은 마을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므로 복된 일입니다. 특히 우리 마을처럼 작고도 오래된 마을은 두말할 것도 없지요. 한동안 나가는 사람은 있어도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는데, 반대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뜨문뜨문 있습니다. 어라 그런데 단독 귀촌? 그렇습니다. 퇴직 후 고
설 전날까지 흡사 전쟁과도 같은 3주간의 행사가 끝났다. 인구 6만 거창지역 로컬푸드 직매장은 4년 전만 해도 농촌에 가면 어디나 있을법한 농특산물 간판을 달고 있었다. 판매장 매출은 하루 5만원, 어느날은 0원. 환경을 보면 이런 결과가 이상할 것도 없었다. 지역 상인들의 시각을 피해 읍 외곽의 오고 갈 일도 없는 곳에 위치하고, 생산자조직이 무엇인지,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역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 떡하니 농산물 유통업이라고 일을 진행하니 되레 광역도시 공판장에서 물품을 가져와 파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명절 2주일 전부터 마트며 시장을 다니면서 사다 나른다. 한꺼번에 시장을 보면 영락없이 잊고 안 사서 두 번 걸음 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사야 할 물목이 많아서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다가 진이 빠지게 된다.명절에 필요한 음식 재료를 사기도 하지만 먼 길 올라가는 친척들 손에 들려서 보낼 것도 종류가 다양하다. 농촌에서는 남아돌지만 도시 살림에서는 다 돈으로 바꿔야 하는 품목이 좀 많은가. 배추, 대파, 시금치, 당근 등등. 미리 챙겨둬야 할 것들이다. 나락타작 끝내자마자 방아를 찧어서 쌀이며 참깨, 검정콩 같은 곡물을 택배로 보
고추모종 하는 일은 다른 모종을 만드는 일보다 일손이 많이 가고 까다롭기까지 하다. 따뜻한 방바닥에 쟁반을 깔고 물에 담가 둔 씨앗을 스타킹에 넣어 납작하게 펴놓고 수건으로 덮고 얇은 옷가지로 덮어둔다. 너무 더워도 안 되고 너무 따뜻해도 안 된다.이틀이나 사흘이 지나면 뾰족히 뿌리부분이 부풀어 오른다. 이때가 되면 뿌리가 더 길어지기 전에 모판이나 구멍 개수가 많은 판에 씨앗을 넣어야 한다. 늦으면 애써 싹 틔운 것이 떨어져 버리기 일쑤다. 이렇게 한 달 이상 전열온상과 부직포를 동원해 최대한 따뜻하게 키워내면 가운데 손가락만큼
올 겨울은 제법 춥습니다. 거의 재난 수준입니다. 남쪽 지역은 어북 따뜻해서 한겨울에도 영하 10도를 밑도는 경우가 흔치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주택설비나 시설들의 배관장치가 영하 5~6도를 견뎌낼 정도로 설치돼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영하 10도를 밑돌게 되니까 축사로 가는 관도 얼고, 지하수를 퍼 올리는 관도 얼고, 상수도도 얼고, 화장실도 얼고, 실내에 있는 세탁기도 얼어서 일상생활이 안 될 지경이었습니다.마을 상수도도 수원지 계곡물이 얼어붙어서 일체 물을 먹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몇 년 전, 인근 지자체의 상수도를
새해가 밝았다. 새해부터 강추위가 기승이다. 주변에 물이 고인 곳마다 꽁꽁 얼어붙었다. 이쯤 되면 우리 집 삼형제는 빙판 위로 달려들 듯도 한데, 추위가 워낙 매서운지 아이들도 집 밖으로 잘 나서지 않는다. 거실 창에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 풍경은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드문드문 보인다. 그마저 없었다면 너무 시려 보일 것만 같은 겨울 농촌마을의 모습이다.예전 시골마을에는 저녁이면 집집마다 피워내는 굴뚝 연기로 저녁때를 알리고, 그 자욱한 불 냄새가 저녁밥상을 기대하게 했다. 정지(경상도 방언으로 부엌을 말함)에는 밥을 짓기 위한
어려서는 꿈을 꾸고 꿈을 일궈가라고 들었다. 학교에 가면 위인전에 나오는 영웅은 아니더라도 다들 한 꿈씩 꾸고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독 책읽기를 좋아하고 혼자 놀기를 좋아해서 누가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첫 번째는 소설가가 되는 거, 두 번째는 가수라고 말했던 것 같다.그러면 아빠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기껏 꾼다는 꿈이 얼마나 허황돼 보이는지 그저 허허 웃고 넘긴 것 같다. 다들 선생님, 판사, 뭐 그런 정도는 돼야 꿈이었는데 앉아서 관찰하고 공상하고 책 읽고 그렇게 혼자 놀았던 그 아이는 이제 50이 넘은 그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