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명절증후군이 뭐래요?

  • 입력 2021.02.07 18:00
  • 기자명 정성숙(전남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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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숙(전남 진도)
정성숙(전남 진도)

명절 2주일 전부터 마트며 시장을 다니면서 사다 나른다. 한꺼번에 시장을 보면 영락없이 잊고 안 사서 두 번 걸음 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사야 할 물목이 많아서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다가 진이 빠지게 된다.

명절에 필요한 음식 재료를 사기도 하지만 먼 길 올라가는 친척들 손에 들려서 보낼 것도 종류가 다양하다. 농촌에서는 남아돌지만 도시 살림에서는 다 돈으로 바꿔야 하는 품목이 좀 많은가. 배추, 대파, 시금치, 당근 등등. 미리 챙겨둬야 할 것들이다. 나락타작 끝내자마자 방아를 찧어서 쌀이며 참깨, 검정콩 같은 곡물을 택배로 보냈지만 택배로 보내기에 어중간한 푸성귀 종류는 명절 지내고 가는 길에 자동차에 실어 보낼 참이다. 기왕 차에 실을 수 있게 김과 김자반도 샀다. 떡국 떡은 미리 해서 냉동실에 넣어뒀다.

명절에 부침개는 기본이다. 식구들 취향을 고려하다보면 서너 가지로 준비해야 한다. 어린 입맛은 꽂이와 고구마전, 어른은 육전과 생선부침이다.

서너 시간을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부침개를 하다가 해가 저물어 끼니 때가 지났다. 전을 지지면서 간을 본다며 집어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지만 서둘러 밥상을 차린다.

저녁을 먹고 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명절 음식을 준비한다. 갈비와 불고기를 재고 양념게장과 북어조림 그리고 나물무침 서너 가지. 국거리는 아직 준비하지 못했는데 밤 12시가 넘어간다.

다음날이 되면 식구들 자체가 일감이다. 식구가 많아지면서 큰 상을 두 개 펼친다. 밥상을 차리지만 차분히 앉아서 밥은 먹지 못하고 몇 번이고 일어나야 한다. 맨 나중에 밥상 앞에 앉아도 가장 먼저 일어나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마치지 못했는데 산소에 가자고 식구들은 재촉한다. 술을 비롯한 간단한 제물을 챙긴다. 세수는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따라 나간다.

산소에 다녀오면 점심이다. 다시 한바탕 난리굿이 펼쳐진다. 밥상 차리느라 다른 식구들이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뒤통수로 보거나 옆구리로 듣는다.

시끌벅적한 한 끼를 마치자마자 손님들이 온다. 설거지를 미처 하지 못해서 여분의 그릇이 없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 몇 개를 대충 씻어서 술상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한다. 그 와중에 전이 떨어졌네 과일을 더 가져와라, 는 등의 주문이 이어진다. 하던 일 중단하고 과일을 깎고 전을 데워서 갖다 준다.

객지에서 내려 온 식구들이 자동차를 타고 집을 떠날 때까지, 농번기에 하는 모내기보다 허둥대고 정신없다.

각자 사는 일에 바쁘다가 오랜만에 만나서 그간의 사정을 공유하며 화합하는 자리는 좋은 기회다. 그 좋은 자리에 앉지는 못하고 멍석만 깔아주고 시중드는 사람은 여성이다. 특히 농촌일수록 그 집중도는 심하다. 가부장적인 체계가 가족공동체의 근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농번기 일감은 나눠지게 되어서 그럭저럭 공평하다. 힘들어도 할 만하다. 여성에게 집중되는 명절의 일감은 공평하지 않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명절의 가족공동체, 공정하지 않은 명절에 어깃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상거래의 불공정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조정을 한다지만 가족 간의 불공정은 누가 조절해야 할까? 가족 간의 불공평은 사회적 문제지만 해결은 개별적인 몫이다. 그러니 코로나 특수(?) 같은 요행이나 기다리게 된다. 효자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끌고 고향에 오지 않을 테니.

나의 편안함은 누군가의 수고 덕분임을 알고 나누는 노력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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