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나물 캐는 남자사람을 찾습니다

  • 입력 2021.03.07 18:00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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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전남 구례)
심문희(전남 구례)

논두렁에 울긋불긋 꽃이 피었습니다. 한 손에 바구니 끼고 나물 캐러 나온 사람들입니다. 멀찌감치 차를 주차해 두고 논두렁 사이사이 쑥이며 쑥부쟁이며 갓 움터 나온 나물을 캐는 사람들입니다. 마을 할머니들의 놀이터가 어느새 차를 타고 원정 나온 도시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어갑니다. 내가 엊그제 봐둔 곳인데 저 사람들이 벌써 다 뜯어가 버렸다며 원촌댁 할머니가 노발대발합니다. 낼 모레 아들 생일날 해마다 빠지지 않고 새 쑥을 뜯어 떡을 해 보냈었는데 하시며 다른 곳을 찾아 나섭니다. 본촌댁 할머니는 영감님이 냉이국을 제일 좋아해서 지난 정월엔 꽁꽁 언 땅을 파서 냉이를 캐기도 했는데 올해는 유난히 꽃이 빨리 피어서 마지막 냉이국이 될 듯하다며 바구니 한가득 냉이를 캐서 집으로 갑니다. 도시에서 원정 나온 저 아주머니들도 무언가 사연 가득 나물과 함께 바구니에 캐 넣고 계시겠지요?

뒷산 지리산 꼭대기는 여전히 흰 눈에 덮여있건만 남도 땅엔 벌써부터 매화며 산수유며 앞다투어 한꺼번에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꽃잔치가 열리니 구경나온 사람들도 꽃송이 수만큼이나 되는 듯합니다. 아직 봄마중할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봄이구나 실감하게 됩니다. 조금 더 자랄 테니 기다려 봐요 했을 나물들이 움으로 캐어지고 있습니다. 도랑 친 김에 가재까지 잡겠다는 맘이겠지요. 꽃구경도 하고 나물까지 뜯는다면 소위 말하는 봄처녀가 된 기분일까요. 봄 재촉하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는 봄이 되었음 합니다. 나물 뜯는 것에서 시작하는 건 어때요?

그런데 봄총각은? 봄 남자사람은 무얼 하고 있을까요? 소 몰고 논 갈기 하고 있었겠지요. 판에 박히고 고정화된 역할이 기억 속에서 소환됩니다. 남성들이 하는 일과 여성들이 하는 일에 대한 성역할 고정관념입니다. 어찌 남자사람이 쪼그려 앉아 호미 들고 일을 하냐며 나무라시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그런 일은 여자나 하는 것이라며….

트랙터가 짧은 시간에 논 갈고 퇴비를 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성들의 일 대부분은 기계화가 되었습니다. 여성들을 위한 기계화는 엉덩이에 끼고 앉는 쪼그리 의자 하나가 혁명적이라 해야 하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마저 남자사람들은 착용하는 걸 꺼려합니다. 민망하기는 매한가지인데 그냥 의자를 끼고서도 쪼그려 앉기는 싫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맘 아닐까요?

내내 장만해 두었던 두엄을 뿌리고 논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봄이 왔건만 여전히 맘은 겨울 한복판에 있어 맘이 이리 삐뚤어지는 것일까? 코로나로 다들 하루 살기도 버거워 눈길을 돌리지 못하는 것일까? 요새 나라님은 그린뉴딜이라는 이름으로 차라리 바람으로, 태양으로 돈을 벌기를 바라고 있는데 손에 흙도 안 묻히고 짓는 농사가 참으로 신통방통하기만 할까? 반타작 되어버린 쌀농사 짓던 농민도, 재해로 물에 온통 잠겨버린 농민도, 수박농사 짓던 농민도, 꽃농사 짓던 농민들도 농사를 포기하지 않는 봄이길 기원해 봅니다. 모든 농민들이 씨앗 뿌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한 해를, 수고한 만큼의 노고가 인정되는 한 해를 기원해 봅니다.

선농제를 올리며 왕이 친히 논을 갈며 농사의 소중함을 알리고 소 한마리 잡아 농민들의 노고를 치하하던 시대는 박물관 속에 놓여있을 전통이 아니었음을, 내일 모래 경칩 지나 햇살 좋은 날 잡아 씨 뿌리는 농민들의 노고를 공감해 주는 이들을 모아 설렁탕 한 그릇 함께 하는 날들이 전국 곳곳에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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