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불편함도 변화도 앎으로부터 시작된다

  • 입력 2021.04.06 09:53
  • 기자명 현윤정(강원 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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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윤정(강원 홍천)
현윤정(강원 홍천)

불편함의 시작은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본인 소개도 없이 다짜고짜 내가 시작한 농산물 판매장 소유 여부와 몇 가지 호구 조사를 하더니 이웃 마을에 축사를 소유한 마흔 좀 넘은 남성과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워낙 사람 만나길 좋아하고, 결혼 생각도 있는 터라 “만나보면 좋죠”라고 대답했다. “힘들지? 외롭지?”라는 물음에 친구들도 있고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씀드렸다. 다시 몇 살이냐는 물음에 답하자 “이미 너무 늦은 나이”라며, “지금이 지나면 이제는 어렵다. 보내줄테니 연락해라”라는 나무람이 돌아왔다. 절대 지금 놓치면 안되는 시기라고 당부하셨다.

상대방 남성은 이미 마흔이 넘었으니 나이는 여성인 나 혼자만 먹은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이미 늦은 나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뭐가 지금이 지나면 어렵다는 걸까?

나는 고향으로 귀농한 지 4년차 되는 여성농민이다. 부모님은 젊은 시절 농촌목회운동을 하시며 농민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직업인지, 땅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삶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알려주셨다. 미혼인 딸이 귀농을 결심했을 때 “꿈을 이루었다”며 “자녀가 농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평생 바랐던 꿈이었다”고 귀농을 축하하고 그 삶을 응원하고 지지한다고 하셨다. 농사는 처음이라 교육도 받고, 지인들에게 조언도 구하며 소규모 임차농으로 농사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지난 3년간 500여평에 강원도 찰옥수수와 배추를 경작하고 올해부턴 1,500여평을 임차했다. 파종부터 재배, 수확 후 판매까지 경험하면서 느리지만 조금씩 농민으로서 몫을 해나가고 있다.

10대엔 운동선수 생활을 했고, 20대에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까지 나는 여성으로서 크게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170cm의 큰 키와 강한 인상 그리고 할 말은 참지 않고 바로 하는 성격 탓에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미혼 여성농민으로 살기 시작한 이후, 내 주변 여성들이 겪는 ‘불편함’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나 역시 조금씩 불편해지는 것이 생기고 있다.

그 시작이 바로 앞서 말한 묻지마 ‘중매’이다. 물론 젊은이가 특히 여성이 적은 농촌에서 살다 보니 여기저기서 소개하겠다는 말을 많이도 들었다. 마을 분들은 부모님이 목회자이다 보니 조심하시는 데다가, 대부분 어릴 적부터 봐오던 아버지 어머니 같은 분들이 건네는 얘기라 나는 감사히 받겠으니 오라며 눙치고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이따금 선을 넘는 얘기들이 불편하다. 남녀 만나는데 여성의 나이만 문제가 되는 것도 그렇고, 마치 나를 해치우지 못한 이월상품(재고품?)처럼 취급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 내 조건과 상대 조건을 비교하며 진열대에 놓여진 물건 마냥 값이 매겨지는 것 같은 것도 싫고, 농촌에서 남편 없이 살면 큰일 날 것처럼 성화인 것도 그렇다.

몇 해 전, 마을 잔치에서 중학교 동창 친구의 아버지께서 “너는 불효하는 거야! 어머니, 아버지 얼마나 속상하시겠어?”라며 자기 딸은 벌써 아들이 둘이고 학교에 입학한다고 하셨다. “아부지, 정희가 지금 제 나이까지 결혼을 안했더라면 이제와 하라면 할 것 같으세요?” 되물으니 “안하겠지”라며 웃으셨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농사꾼 딸을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과 매일 시트콤 같은 일상을 보내며 지지고 볶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한번은 어머니께 시집 안 간 딸이 서운하시냐 물었더니 내가 행복하면 자기도 행복하다신다. 그러니 억지로 필요와 조건에 맞춰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셨다.

가끔 ‘남편’이라는 존재가 있었으면 훨씬 수월했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굳이 그 이유로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다.

농촌에서 살고자 하는 많은 미혼 여성들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맞선 제안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다 우리 잘되라고, 걱정돼서 하시는 말씀이겠으나, 내 연애와 결혼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 성인이다. 게다가 원래 잘 되던 남녀 관계도 주변이 개입하면 깨지기 쉽다.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한창이다. 각자의 생활방식에 적당한 거리두기를 할 때 농촌에서의 관계는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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