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수상한 봄

  • 입력 2021.04.11 18:00
  • 기자명 정성숙(전남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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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숙(전남 진도)
정성숙(전남 진도)

트럭을 몰고 밭에 가는 길에 벚꽃 무리가 이른 아침부터 감성을 들쑤신다. 이쁘기도 하네! 라는 감탄사를 저절로 웅얼거리게 된다. 벚나무 아래에서는 샛노란 민들레가 존재감을 작게나마 뚜렷하게 보이고 산에는 산벚꽃이 하얗게 색을 칠한 수채화 풍경이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일을 하다보면 ‘벚꽃엔딩’을 하루에도 몇 번을 듣게 된다.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뭍사람들의 꽃 타령으로 4월이 출렁거린다.

무슨 경주라도 하는 것처럼 밭들마다 트랙터 소리가 요란하다. 대파 정식을 할 시기라서 퇴비를 뿌리느라 역한 냄새가 들판을 휘젓고 날아다닌다. 설익은 사람이 주변 사람 성가시게 하듯 제대로 삭지 않은 퇴비는 코를 틀어막고 싶게 불편하다.

대파를 파종한 지 40여일 후에는 정식을 해야 하는데 잦은 비 소식 때문에 내 머릿속도 트랙터 소리만큼 분주하다. 기상청 10일 동안의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또 들여다보기를 반복한다. 정해 놓은 대파 정식 날짜에 비가 올 확률이 40%라고 나온다. 다음날은 비 올 확률 90%다. 대파 정식 날짜를 앞당겨서 몇 사람이라도 심어보려고 여기저기 알아보지만 사람이 없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들을 하고 대파 심을 사람을 찾느라 우왕좌왕이다. 이틀 정도 앞당겨서 대파를 심어줄 수 있는지 외국인 인력 반장한테 연락을 해 보니 보름치 일정이 짜여 있어서 조정이 어렵단다.

작년 가을에 겨울배추 심을 시기에 비가 자주 와서 격전을 치렀던 악몽이 재현되는 것 같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크고 있는 배추 모종은 이식 시기가 지나자 하루가 다르게 병이 생기면서 정식을 재촉했다. 더군다나 겨울배추는 오전에 심은 것과 오후에 심은 것이 다를 정도로 일조량에 민감하고 정식이 늦어지면 결구가 안 되고 잎만 무성해진다. 땅이 마를 만하면 비가 오고 또 와서 흙이 잘 마르도록 쟁기질을 3차례나 해서 뒤집었다. 그래도 흙은 덜 말랐고 억지로 늦은 밤 2시까지 비닐을 씌웠다. 겨우 비닐 씌우기를 마치자마자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비를 맞으며 갯벌 같은 밭에서 배추를 심느라고 진짜 개고생을 했다. 비용 또한 예년에 비해 훨씬 더 들어야 했다.

그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올 봄의 조짐이 수상하다.

남편의 적극성을 끌어내려고 닦달해 보지만 느긋하다. 흙이 덜 마른 상태에서 로타리를 치면 흙덩이가 생겨서 비닐을 씌우기 어렵단다. 퇴비를 뿌리고 쟁기질을 해 놨기 때문에 4일 동안 날이 좋으면 흙이 충분히 말라서 로타리 치는데 문제가 없다는 내 생각과는 다르다. 게다가 모종까지 늙어가고 있다. 차라리 나이가 덜 찬 어린 모종은 본밭에 들어가서도 활착이 순조롭지만 정식 시기를 넘긴 모종은 본 밭에서 뿌리 내림이 더디다. 나이 많은 사람이 환경이 다른 곳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생육주기가 짧은 겨울배추와는 다르게 대파를 급하게 심을 필요가 없다는 남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가 오기 전에 대파 정식을 마쳐야 다음 일정이 원활하기 때문에 조바심이 난다.

주변의 다른 집들은 남자가 서둘러서 일정을 앞당겨 대파를 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가 트랙터를 운전해서 시작하고 싶어진다. 농사일이란 게 트랙터가 일을 해야 후속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트랙터를 운전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갖게 마련이다. 수시로 생색내는 주도권을 남편이 쥐고 있다.

잦은 비 소식에 쫓기는 내가 남편을 쫓는 형국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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