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저 중장비 면허 있어요”

  • 입력 2021.05.02 18:00
  • 기자명 현윤정(강원 홍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윤정(강원 홍천)
현윤정(강원 홍천)

날이 풀리면서 농사를 계획한다. 땅을 갈고 씨앗을 챙기는 때가 다가오면 한 해 농사 시작할 생각에 설레면서 한편으로는 심란해진다. 농기계 작업이 필요한 때가 되기 때문이다. 넓지 않은 경작지라 해도 땅을 갈고 고랑을 만들 때는 기계가 꼭 필요하다.

농기계임대센터에 전화를 걸어 임대를 문의하니, 담당자가 자꾸 불안해하며 직접 운전할 것인지를 되묻는다. 나는 중장비 운전 자격증도 있고 교육도 꾸준히 받았다고 하는데도 끝내 마뜩잖아한다. 순간, 욱하는 감정이 들지만 이내 참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직원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기 때문이다.

2017년 2월 귀농을 결심하고 농업 전반에 관한 6개월 합숙 교육을 받았다. 이 때 굴삭기·지게차 운전 자격증을 취득하고 관리기·트랙터 운전 및 정비에 관한 기본 교육도 받았다. 그리고 2018년 현장에 진입하면서 기세 좋게 관리기를 구입했다. 내 농장 규모면 관리기로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계산이 있었고, 내 덩치에 내 힘 정도면 이 기계는 굴리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웬걸, 오만한 착각이었다. 기계는 생각보다 힘이 강했고, 조작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내 밭은 교육원 운동장과는 달리 바위같은 돌들이 종종 인사하고, 관리기 바퀴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땅의 높낮이에 따라 중력이 작용했으며 시속 10km로 운전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지 않았다. 분명 기계 홍보 동영상에서는 내 반쪽쯤 되어 보이는 가벼운 차림의 젊은 여성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작동하고 장비를 갈아끼웠는데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무엇보다 이동이 문제였다. 트럭이 없는 나는 매번 다른 분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관리기를 싣고 내리는 과정은 상당히 위험했다. 농기계 사고가 빈번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관리기를 작동하기 위해서 트럭이 있는 어른들게 이동을 부탁드려야 했고, 쟁기에서 로터리로, 휴립휴파기로, 피복기로 갈아끼울 때마다 아저씨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돌부리에 걸리거나 경사로에 구를 때마다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

여성용 농기계는 좀 더 사용이 쉬울까 싶어 물어보니, 힘이 약해 도움이 안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저런 과정을 겪다보니 농기계임대센터에서 여성에게 농기계 빌려주기를 불안해 하는 것도 이해가 가고, 매번 남한테 손 벌리자니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 지인들한테 부탁해야 하는데 그 과정도 결과물에 대해 말하는 것도 머리가 좀 아픈 부분이 있어 선뜻 마음이 나지 않는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나같은 여성들이 좀 더 수월하게 밭을 갈고 한해 농사를 시작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여성들이 농업에 접근할 수 있을텐데….

지금 가장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법은 몇몇 지역에서 운영하는 사람과 기계를 함께 지원받는 방식일 듯하다. 농협이나 관공서에서 농기계와 농기계를 운전하는 인력까지 함께 신청받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적절한 보수가 보장되고, 이용자도 자기 의견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어 부담이 적다는 얘기를 들었다.

1년 농사 중 기계 작업은 많지 않다. 밭을 준비할 때와 정리할 때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싼 기계를 살 수밖에 없는 심정을 절실히 이해하는 요즘이다. 농기계 작업을 전문가가 수행해주는 지원내용 혹은 실질적으로 활용가능한 농기계의 개발 등이 잘 이뤄져서 더 많은 여성들이 농촌으로 들어와 농업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