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우리 농산물 사세요

  • 입력 2021.02.21 18:00
  • 수정 2021.02.26 15:08
  • 기자명 최외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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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외순(경남 거창)
최외순(경남 거창)

설 전날까지 흡사 전쟁과도 같은 3주간의 행사가 끝났다. 인구 6만 거창지역 로컬푸드 직매장은 4년 전만 해도 농촌에 가면 어디나 있을법한 농특산물 간판을 달고 있었다. 판매장 매출은 하루 5만원, 어느날은 0원. 환경을 보면 이런 결과가 이상할 것도 없었다. 지역 상인들의 시각을 피해 읍 외곽의 오고 갈 일도 없는 곳에 위치하고, 생산자조직이 무엇인지,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역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 떡하니 농산물 유통업이라고 일을 진행하니 되레 광역도시 공판장에서 물품을 가져와 파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농민들의 생산물 판로를 해결해 주고자 하는 지자체의 마음만 앞선 나머지 창고에는 마을 순회수집으로 소비예측 없이 매입된 재고들이 가득했다. 그 상황을 해결할 능력도 책임질 사람도 없어 보였던 4년 전, 지뢰를 밟은 듯 아득한 현기증으로 시작한 로컬푸드 운동, 사업. 거창공유농업사회적협동조합에서 또 길이 시작되었다. 전업 여성농민을 하겠다고 나선 지 2년 만에 또 옆으로 샌 것이다.

칙칙한 조명, 매대, 창문에 쓸데없이 붙여진 스티커와 글자들을 모조리 떼는 것을 시작으로 실무진이 그냥 직원이 아닌 농업을 지키고 중소농가를 지원하며, 소비자와 연결시키는 활동가로서의 자세를 가지는 것. 또 조합원들이 협동조합과 로컬푸드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을 인식하고 서로의 뜻을 모아내기까지의 시간들. 마치 황폐해진 사막과 같았던 상황과 환경도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며 물이 흐르듯 어느새 무성해지고 있다. 아직은 다양한 생명이 존재하는 균형 잡히고 안정적인 생태계를 이루어내지는 못했지만 “안되는 것이다”라던 말들이 “그래도 할 수 있다”로 기울어지고 있다.

과제가 산더미처럼 눈앞에 있고, 농민들이 사라져가고 특히 다품목 농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정 소득을 필요로 하는 농가에서는 불안하고 부족한 농가소득을 보완하기 위해 직장과 부업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지속가능한 농업, 농촌을 위한 ‘로컬푸드’라는 희망도 어느새 농협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훅 들어와 확산시키고 있지만, 대부분 지역 농가의 농산물은 수단으로 간판으로서만 자리하고, 농민과 소비자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중소농가의 농산물 소비, 기획생산을 위한 살뜰한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 안에서도 자본의 논리로 중소농가의 생산물은 소외된다.

좋은 정책도 현장에 가면 ‘쇠 귀에 경 읽기’가 되고 ‘벽창호’가 된다. 농민들은 무엇인가 답답함을 느끼지만 이해관계로 굳어진 실행구조 속에서 어떤 요구가 필요하며 무엇이 해결방안인지를 알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굳어지는 동안 하소연과 항의만이 농민의 표현이 되어버렸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 본 적도 없기에 농민은 행정과 농협 관료에 민원인 그 이상도 아닌, 농업과 먹거리정책에서도 주인이 아닌 객이 되어가고 있다.

그 어디쯤, 어떤 존재라도 일하기도 바쁜 고된 농민들의 의견을 묶어주고 같은 시각에서 함께 소리 내게 해야 한다. 농민의 감수성으로, 농민의 절박함으로, 농민의 치열하고 뜨거운 삶에서 그와 같은 모습으로 야물고 단단하게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 지속가능한 사회, 함께 맞이할 미래, ‘먹을거리’·‘농업’이 연결되어 있듯 우리가 무엇을 먹고, 어떤 소비습관을 가져야 하며, 어떤 공통된 사회적 가치를 공유해야 하는지도 중요하고 이를 연결하는 조직과 사람들은 철저하게 이를 위해 복무할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 많이 파는 것이 아닌 무엇을 파는지가 가치판단이 되어야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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