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강추위도 재난

  • 입력 2021.01.24 18: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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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올 겨울은 제법 춥습니다. 거의 재난 수준입니다. 남쪽 지역은 어북 따뜻해서 한겨울에도 영하 10도를 밑도는 경우가 흔치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주택설비나 시설들의 배관장치가 영하 5~6도를 견뎌낼 정도로 설치돼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영하 10도를 밑돌게 되니까 축사로 가는 관도 얼고, 지하수를 퍼 올리는 관도 얼고, 상수도도 얼고, 화장실도 얼고, 실내에 있는 세탁기도 얼어서 일상생활이 안 될 지경이었습니다.

마을 상수도도 수원지 계곡물이 얼어붙어서 일체 물을 먹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몇 년 전, 인근 지자체의 상수도를 끌어다 놓아서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었지만, 하마터면 식수조차 구하기 힘들 뻔했습니다. 너나없이 동파한 시설을 복구하느라 철물점이나 건재상에 가서 설비를 사 와서 교체하거나, 아예 설비 업체를 불러서 얼어서 깨진 수도관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보일러 업체에 온수가 안 나온다고 연락하니, 웬만하면 기다리라며 지금 사고접수가 너무 많이 돼서 기약할 수 없다고, 며칠 기다려 보라는 처방 아닌 처방을 내려줬습니다.

집도 집이었지만 축산 농가에서는 물이 다 얼어서 소들에게 일일이 양동이에 물을 퍼다 주고, 커다란 물탱크를 새로 교체하는 집들도 많았고, 어린 송아지들이 호흡기 장애로 죽어 나가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원예시설 작물들도 바깥쪽에 심어진 것은 동해를 입은 것이 부지기수고, 보온이 안 되는 화원의 화초들이 동해로 고사한 것은 명함도 못 내미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월동배추도 속까지 얼어서 혹시라도 추대가 일찍 올라오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고들 합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는 상황이다 보니 동파사고나 동결로 인한 불편쯤은 이야기꺼리도 못 됐지만, 돌이켜보면 일상이 무너질 만큼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화장실 사용이 어려운 것이 제일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집집마다 수세식으로 화장실 구조를 바꿔놓아서 세상 편하지만, 정작 물이 없으면 되레 엄청난 불편함을 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농촌에서는 웬만하면 실외에 푸세식 화장실 하나쯤은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지요.

물론 개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개인이 해결해야 하지만, 여기저기 안타까운 현실이 넘쳐났습니다. 노인 혼자 사는 집은 물론이고, 간단한 수도관 교체도 쉽지 않은 가구들이 많았습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채로 사나흘을 버틴 집이 많았습니다.

식사는 간편식으로 때울 수 있었지만, 씻는 것이나 화장실 사용 등 기본적인 생리활동이 자유롭지 못했으니 마땅히 재난상황에 다름 아닌 것이지요. 그러니 얼마나 자신의 처지가 속상했을까요? 사람은 원래 불편함은 말하지만 서러움은 잘 말하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상황이 그 정도였으니 망정이지 추위가 며칠 더 갔더라면 여기저기서 못 살겠다 아우성이었을 것입니다.

이럴 때, 공공의 힘이 작동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동파된 집이나 시설을 직접 손보기 어려울 경우, 사회가 나서서 돌볼 수 있는 정도는 돼야 좀 살만한 세상이라 하겠지요? 나라가 명색이 선진국 반열에 올랐건만 재난 상황 앞에서는 후진국에 머물다시피 해서야 되겠습니까. 재난은 사람을 가려서 오지는 않지만, 대책을 수립할 수 있는 조건은 각자 다르므로 두루 살펴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재난은 여성이나 노약자, 어린이들에게 더 크게 와 닿습니다. 게다가 농촌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업체들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어서 세심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웃의 관심도 그러하고, 공권력도 그러해야겠지요. 일상이다시피 한 재난에 어떻게 대응할지 그 매뉴얼을 섬세하게 마련해서 맹추위나 폭염도 저마다의 차이가 덜하게 지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앞으로는 설비나 배관이 영하 10도를 너끈하게 견디는 쪽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것을 이 겨울에 값비싸게 배웠네요. 단, 기후변화가 그 정도일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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