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반장? 반장집?

  • 입력 2021.04.25 18: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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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세상에는 많고 많은 반장이 있습니다. 생애 최초로 만나는 학급 반장에서부터 방송반, 군대의 내무반장, 일터의 작업반장은 물론이고 농사작목반도 반장이 있습니다. OO반으로 나누는 모든 단위의 책임자는 반장이라고 하니까요. 대관절 반장의 지위와 역할은 무엇이던가요? 아마도 각 단위에서 설정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그 반을 대표해서 거의 모든 것을 감당하는 직위일 수도 있고, 그저 한갓진 감투에 불과한 자리인 경우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책임만큼 수고롭고 영예로운 자리가 될 것입니다. 마을에도 반장이 있다는 것 아시지요? 법정리는 물론이고 자연마을이라 하더라도 그 규모가 큰 경우에는 골목이나 실개천, 또는 산줄기를 따라 통상 반으로 나누고 숫자를 붙여서 1반, 2반, 3반 등등으로 나눕니다. 큰 마을에는 7반 8반을 넘어서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마을 반에도 엄연히 반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을 반장의 역할은 무엇이고 누가 맡을까요? 이장의 역할은 누구나 다 압니다. 행정과 마을주민 사이의 연결통로로서, 준공무원이라 할 만큼 행정과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마을주민이 직접 뽑는 직책이기에 마을에서의 권위로 치자면 군대라면 사단장급이요, 학교에서는 교장, 사단법인 대한노인회장만큼이나 위용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아래 단위의 반장은? 이게 약간 모호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장의 실무를 돕기 위한 기술적인 보직인 동시에, 집집이 돌아가며 맡거나 지명 또는 추천으로 뽑다 보니, 힘이 안 실립니다. 마을개발위원회(운영위원회)를 각 반 반장으로 구성하면 또 좀 낫겠지만, 그도 정해진 것이 없이 애매합니다. 선진적인 마을에서는 그리하기도 한다지요? 어쨌건 그 애매함 때문에 반장은 사람이 아니라 가구가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반장이라 하지 않고 반장집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을에서 반장집이 하는 역할 중 가장 주된 일은 이장수당을 걷는 일입니다. 행정과 농협에서 지급하는 이장 직급수당 외에 마을주민들도 이장의 수고로움에 대해 일정 정도의 비용을 걷어 지급합니다. 마을에 정기적인 소득이 있는 경우, 가령 어촌계에서 어장이나 개펄을 빌려주거나, 또는 태양광 발전비용 등등의 소득으로 이장수당을 사용하는 마을도 있지만, 그도 저도 없는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격월 또는 분기별로 비용을 모읍니다. 그것이 이른바 반장집의 일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장수당은 반장집에서 누가 걷을까요?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대체로 여성들이 걷는 모양새입니다. 20년도 넘은 누런 공책에 반원들의 납부기록을 수기로 적고 이장에게 도장을 받는데, 집집을 찾아다니는 수고로움을 거의 여성들이 맡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통 크고 호방한(?) 남성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고작 1~2만원을 걷는 일은 권위가 없게 느껴져서일까요? 아니면 귀찮아서일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렇고 그렇게 걷은 수당이 이장직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많은 여성들의 무급노동이 세상을 빛나게 하듯이 말입니다.

지난 10년 동안은 남편이 이장을 하는 통에 우리집은 반장집에서 예외였지만, 올해부터는 그 역할을 해야 하고, 이번 달 말까지 이장수당을 걷어야 합니다. 사실 집집마다 방문해서 마을분들을 만나는 일은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마당 귀퉁이에 자라는 꽃과 나무로 주인장의 성정을 읽어내는 일이며, 오랜만에 부담 없고 계산 없이 마을분들과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만큼 좋은 일이 어딨겠습니까? 하지만, 실무는 여성이, 자리는 남성이 차지하는 세상의 관행이 마을에서 마찬가지로 진행되고 있으니 안타까운 것이지요. 세상의 변화와 상관없이 이런 관행이 농촌 지역의 자리라는 자리마다 비슷한 형태입니다. 마을개발위원회의 성원에는 얼씬도 못 하는 반장 자리가, 이장수당을 걷는 실무역할만 주어지고 있는데, 대관절 반장집의 누가 거룩한 이장수당을 걷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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