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엄마 농민의 행복이 중요한 까닭

  • 입력 2021.04.18 18:00
  • 기자명 박효정(경남 거창)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효정(경남 거창)
박효정(경남 거창)

작년에 셋째를 낳고 나니 확실하게 내 일상은 다른 모든 일에 우선하여 자식농사를 짓게 되었다. 마흔 가까운 나이로 아이를 5년 만에 출산하니 내리사랑이라고 마치 할머니가 손주를 보는 마음이 이럴까 싶게 아이가 마냥 깜찍하다. 내 자궁과 유방이 키워낸 생명들. 둘째와 터울이 져서 그런지 아기가 감은 눈을 뜨고, 엄마~ 소리를 내고,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하다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첫니가 나는 일련의 과정들이 처음인 듯 신비롭다. 아이라는 씨앗을 품어 자립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정성을 보면 어느 엄마들에게도 저 깊숙이 생명을 거두는 농민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 같다.

어릴 적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임신하여 살 곳을 정할 때도 아이가 나고 자랄 환경을 기준으로 삼았다. 집 뒤에 500여년 수령의 나무가 있었고,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산들로 둘러싸인 지금의 마을이라면 아이들을 잘 품어줄 것 같다는 든든함이 있었다. 하지만 농촌에서 엄마가 되고 나니 현실적인 어려움도 생긴다. 임신할 때는 읍에 단 하나 있어 선택의 여지 없는 산부인과의 존재만으로 감사하며, 혹시나 고위험군 임산부가 되어 타 지역의 큰 병원으로 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게 되었고, 출산 후에는 산후조리원이 없는 산후조리를 염려했다. 이제 아이들이 쑥쑥 자라 육아와 교육 환경에 대한 고민도 생기니 여러모로 농사짓는 엄마라서 아이들에게 미안할 일이 없길 바란다.

내가 사는 면 단위 지역은 3,900여 명의 사람이 살고 초․중․고등학교가 있으며, 오일장도 서는 나름 큰 마을인데 작년에 4명의 아이들만이 태어났다고 한다. 나도 그중 한 명을 출산하였다. 마을 어르신들은 아기를 구경하기 힘들다고 하시며, 아이를 얼마나 귀하게 대하시는지 눈빛만으로도 사뭇 느껴진다.

땅 면적 당 사람 수가 줄어들면 지구 공동체는 외려 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이런 출산율의 감소는 ‘젊은이들이 미래 전망을 어떻게 하는지’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기후위기 등으로 생존이 불안한 미래에 희망이 희박하니 책임지지 못할 생명을 낳지 말아야지 하는 결단 같은 것 말이다. 나 역시 미래에 이 아이들이 맞이할 위기를 상상하면 끔찍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길 바라는 마음과 어쩌면 아이 자체가 하나의 작은 희망이지 않나 싶어서 출산과 육아를 감내한다. 셋째를 낳으니 주변에서 ‘애국자네~’라는 말을 듣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무모한 부모의 생각으로 출생한 아이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를 가늠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일말의 죄의식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농부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지 고민하며 산다.

지금 이 아이들은 언제까지 농촌에 남아 있을까? ‘농사 짓고는 먹고 살기 힘들다.’ 수십 년간 농사 지어온 사람들도 하는 말인데, 젊은이들이라고 지속가능한 다른 수가 뾰족하게 있을까. 더구나 여성 농민이 안정적인 농사 소득을 가지고 노후준비를 하며 생활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시골에 아이들은 자리하지 못할 것이고, 학교에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든다면, 학교가 사라질 것이고, 아이가 다닐 곳이 없으니, 아이의 부모는 시골로 더 안 올 것이고, 젊은이들이 없으니 시골에 일할 사람이 줄어들어 그 마을은 먼 훗날 시나브로 사라질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에 아이들의 뿌리가 되는 엄마가 있지 않을까. 그녀들이 농촌에서 목소리를 내고, 행복감을 가져갈 때 마을이 변화하고 살아남는 동력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