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우울하고 슬픈 결론

  • 입력 2021.05.14 13:07
  • 기자명 정성숙(전남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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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숙(전남 진도)
정성숙(전남 진도)

반갑지 않은 비가 또 왔다. 비가 온다고 하면 갑자기 해야 할 일들이 나를 향해 뛰어오는 것 같다. 비 맞으면 안 되는 기계들도 안으로 들여놔야겠고 하다못해 도랑의 물 흐름을 방해할 만한 뾰족한 돌 하나에까지 신경이 쓰인다.

온다는 비에 쫓겨서 허둥대다가 정작 비가 오면 느긋해지는 것이 아니라 미뤄뒀던 또 다른 일감과 몸살기가 마중 온다. 차분하게 늦잠을 자면서 좀 쉬어야겠다 싶다가도 마냥 누워 있을 수가 없다. 냉장고 청소도 해야겠고 밑반찬도 미리 만들어놔야 들일하다 집에 들어와서 밥상 차리는 일이 수월하다. 게다가 머리 염색할 때가 지나서 백발이 되어 있는 머리통을 작업모자로 가리고 지내왔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자르고 염색을 해야 하는 숙제가 채근한다(50~60대 여성 중에 머리염색을 하지 않고 백발이 무성한 채로도 나름 멋스러워 보이는 사람이 부럽다고 내가 그 흉내를 냈다가는 80대 할머니로 보일 터이다).

내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것은 예쁜 모습으로 변신한다기보다는 밀린 일감 처리하는 수준이다.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가야 할 일은 1년에 몇 번에 그치고 눈뜨면 작업 모자를 쓰고 들일을 하기 때문에 지저분하지 않게 정리하는 게 목적이다.

항상 짧은 머리를 하던 미용실 사장의 머리가 어중간하게 길어 있었다. 바빠서 머리 자를 시간이 없었냐고 물으니 머리를 좀 길어야 할 일이 있어서 자르지 않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딸 결혼식에 신부 엄마로서 올림머리를 해야 한다고.

미용실 한 곳을 20년 넘게 이용한 것 같다. 그 기간 동안 파마나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을 드나든 것보다 다른 용무가 더 많았다. 1년 동안 먹을 젓갈을 담으려고 미용실 사장과 같이 바닷가에 가서 까나리나 멸치를 실어오기도 했다. 다 자란 새끼고양이들을 보낼 곳이 마땅치 않은데 미용실 사장이 여기저기 주인을 물색해주고 새끼고양이 분양을 거의 전담해주면서 지금은 분양 예약까지 받아주고 있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세라서 양가 식구들만 모여서 간단하게 치른다 해서 인편으로 축의금을 보내려고 봉투에 내 이름을 썼다. 잠깐! 그이가 내 이름을 알고 있나? 싶었다. 누구 엄마거나 누구 아내로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내 이름 석 자를 굳이 알려줘야 할 일이 없었고 무심코 그렇게 지내왔다. 미용실 주인과의 만남은 대문 밖, 사회적 관계임에도 내 이름 없이 남편의 보조자 인생이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나는 이 지역에서 태어나고 여고까지 졸업을 했다. 그런데도 내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누구 엄마거나 누구 아내로 불렀다. 친구들 모임에서만 내 이름이 살아났다. 육아와 집안일은 내가 전담해 왔고 들일도 남편보다 더 많은 날을 해 왔다. 그야말로 주체적으로 경제활동을 한 것이다.

다른 직업의 여성이 본인의 이름으로 월급을 받는 것과는 다르게 유독 여성농민은 닫힌 구조에서 저렴하게 평가되고 있다. 게다가 농업의 평가절하가 여성농민의 가치까지 한 단계 더 아래로 끌어내린다.

축의금 봉투에 남편 이름을 쓰고 괄호 안에 내 이름을 써야 하나? 남편 이름을 빌려야만 나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인가? 내 현 위치를 새삼 적나라하게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축의금 봉투에 남편 이름을 써서 보내고 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며칠 동안 우울함에 빠져 있다가, 다음 기회에는 정성숙(○○○처)이라고 써야겠다는 차선책을 찾고 나니 우울함이 좀 덜한 것 같았다.

※ 글 제목은 잉에 슈테판의 <남과 여에 관한 우울하고 슬픈 결론>에서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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