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은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맞아 대선후보로 나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 측 농정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학자들을 만나 향후 한국농업에 대한 비전을 들어 보고 있다. 이번에는 이정희 후보 측에 농업정책 자문을 하고 있는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을 만났다. 한도숙= 해방 이후 농업정책은 구조조정이라는 틀로 일관되게 흘러왔다. 시장론자들이 득세하면서 시장개방이 이루어지고, 많은 농민들이 피를 흘렸다. 그간의 농업정책에 대한 평가, 특히 이명박 정부를 중심에 두고 평가를 한다면 점수가 많이 박할 것 같은데. 장경호= 90년대 이후로 정치하는 사람들 모두 농산물 시장개
“언니, 이건 뭐예요?” “응, 상추.” “이건?” “응, 시금치.” 지난 여름내내 한평도 채 될까 싶은 사무실 텃밭에서 자란 채소들이 궁금해 지나갈 때마다 무슨 식물인지 물어보는 후배의 질문이 쏟아진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별로 관심이 없었던 먹거리에 대해, 오고가며 풀 하나라도 뽑기 시작하면서 궁금증이 발동했던 것이다. 부추도 마트에 가서 ‘부추 주세요’ 하면 아주머니가 알아서 챙겨주셨기 때문에 땅에서 올라오는 부추를 보고도 무엇인지 몰라 물어볼 정도로 밭에서 나는 채소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텃밭에 관심많은 친구가 이것저것 토종씨앗을 가져다가 실험(?)용으로 심었는데 그러지 말고 생활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먹을거리를 심어보기로 마음을 모으고 농사(농사라고 하기엔 부끄럽지
함양 상림원에 가면 사랑나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나무가 한 나무처럼 서로 붙어 버린 것을 연리지(連理枝)또는 연리목(連理木)이라한다. 요즘은 아마 사랑나무라고 하는 것 같다. 이런 형태의 나무는 전국 각지에 많이 있다. 예로부터 상서로운 징조로 여겨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왔다. 연리지의 고사는 후한말 대학자 채옹(蔡邕)에서 유래했다. 워낙 효심이 극진해 어머니가 죽고 뜰에 나무가 자랐는데 연리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연리지는 효심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당나라 때 백거이가 쓴 시 장한가에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연리지로 표현 하면서 연리지는 부부간의 사랑, 연인을 상징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두 나무가 결합하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효심일지 사랑일지 가늠하기
한국농정신문은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맞아 대선후보로 나선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 농정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학자들을 만나 향후 한국농업에 대한 비전을 들어 보고 있다. 이번에는 안철수 후보 측에 농업정책 자문을 하고 있는 황수철 농정연구센터소장을 지난 12일 만났다. 한도숙=농사를 계속 지어오면서 느끼는 것은 94년 농업보다 지금 오히려 더 후퇴한 느낌이에요. 물가수준에 비해 농가소득이 형편없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농업정책, 특히 이명박 정권의 농업정책을 평가하신다면. 황수철= 농가소득 악화는 오랜 기간 누적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보입니다. 통계를 살펴보면 96년 이후 농가의 실질소득이 악화되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노무
하루 종일 거름을 냈다. 올해는 포대에 담긴 거름 칠백 포를 샀다. 전에는 주로 축사에서 나온 짐승 똥을 받았다가 발효시켜 썼는데,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봄에 받아놓은 거름에 발효제를 섞어가며 두어 번은 뒤집어주어야 하는데, 몇 해 전부터 힘에 겨워 포기하였다. 포대에 담긴 거름이 조금 더 비싸긴 하지만, 정부 보조금이 절반쯤 되어 큰 부담이 아니게 된 연유도 있다. 운반차에 서른 포대씩 싣고 과수원에 부리고 펴는 작업도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겨우 이십 킬로밖에 안 되는데도 얼마 안 가 팔이 아파왔다. 왼쪽 어깨에 오십견이 와서 시원찮은 탓도 있지만 전보다 힘이 많이 떨어진 게 확실했다. 요즘은 많이 기계로 하지만 여전히 사람 힘이 필요한 게 농사다. 그러고 보니 나뿐 아니라 예전보다 힘을
11월 9일! 수능 때문에 8일날 진행하기로 한 야적투쟁을 9일로 하루 미뤘다. 야적투쟁 중 계획 되어 있던 11시30분 아산시청 앞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오늘의 주인공인 벼를 쌓는데 하루 종일 보냈다. 우리 동네형들 모두 다 같은 심정일거라는 생각에 그저 묵묵히 톤백 줄을 지게차에 메면서 그렇게 벼를 쌓았다. 기자들은 좋은 사진을 만들려고 이리 찍고 저리 찍고 왜 기자회견은 안하냐며 질문도 하고 회장님이 야적 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니 뭐니 하면서 마치 장날처럼 시끌벅적 했다. 지게차의 후진소리에 삐~삐~삣! 소리가 나고, 터진 톤백 자루를 청테이프로 막으면서 쏟아진 벼를 주워 담기도 하면서 야적투쟁을 했다. 어떤 기자가 “총무부장님!” 하고 부르면서 “왜 해마다 같은 일을 되풀이
나는 고발한다. 에밀졸라의 지극한 심정보다 더 붉은 피를 쏟아내는, 목 놓아 울어도, 울다가 피를 토하고 죽을 심정으로 고발한다. 이 나라 이 시대 농민들의 짊어진 천형에 대해, 또한 나는 고발한다. 농식품부 장관의 농민 죽이기 농업말살기도를 고발한다. 그렇게 하찮은 것이었나? 아니면 그렇게 하찮은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입으로는 생명을 말하지만 머리 속에는 반생명의 그 무엇이 지배하는가? 무엇이 그리 만들고 있는가? 시대인가, 사람인가, 자연인가, 섭리인가? 이해가 가지 않는 내가 머저리인가, 바보인가, 덜떨어진 놈인가? 곤두박질치는 삶을 머리카락 같은 한 가닥에 희망을 붙들어 맨 농민들이다. 더 이상 농사 질 수 있을까. 매일매일 곤죽이 되는 삶이다. 농식품부 장관의 중요한 일은 농민들이 안전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은 지역 농민회 중 최고의 활동력과 조직력을 자랑한다. 22년의 연륜이 쌓이는 동안 제주도 농민회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활동을 해왔다. 그리하여 비단 농민운동단체가 아닌, 제주도를 대표하는 민족민주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제주도의 농민운동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다른 지역과 달리 80년대 후반까지 농민운동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제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4.3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빨갱이, 혹은 부역자로 몰려 수만 명이 집단 학살당한 기억은 모든 제주도인들에게 참혹하게 남아있다. 반민족적인 이승만과 단독정부 반대를 외치며 일어났던 항쟁이 집단 학살로 막을 내린 후, 기나긴 세월 동안 제주도는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먹구름에 덮여 있었다. 정부정
‘언니네 텃밭’을 통해 꾸러미를 처음 받던 날, 아이들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꾸러미 상자에서 보물을 꺼내듯 하나 하나 꺼내어 보던 기억이 난다. 쇠똥을 발견한 나는 “아! 쇠똥이라는 나물이 있었지!” 언젠가 고추장에 쇠똥을 한 움큼 넣어 너무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났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트에서 보던 계란과 두부와 반찬, 나물이 상자에서 나오는 것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든 꾸러미 상자 꾸러미로 저녁을 차리고 아이마냥 마냥 신난 나는 “이 두부 진짜 맛있지? 이건 쉽게 먹을 수 없는 두부야. 이건 특별히 우리를 위해 국산 콩으로 농민회 분들이 직접 만들어서 보내주시는 두부야. 진짜 맛있다. 최고야! 너무 맛있다!” 연신 떠들어 대며 먹는 엄마가
11월 11일 농업인의 날이다. 한문을 세로로 쓰면 11이라는 숫자가 흙토(土)자와 닮았기에 그리 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농업인의 날은 엄청난 작위로 지내기 일 수다. 아니 모르고 넘어가는 농민들이 절대다수라 봐도 틀리지 않는다. 농민들이 잘 모르고 별 의미도 두지 않는 농업인의 날은 양념 없이 먹는 도토리묵 맛이다. 이유는 이렇다. 몇몇 농민이 상을 받고 동원된 사람들은 성의 없는 박수를 치고 누구의 치사를 듣고 그리고 끝이다. 부대행사가 있으나 즐겨야 할 농민들은 거의 없고 물건을 팔아보려는 측과 싸게 사보려는 일부 소비자가 있을 뿐이다. 일 년 농사를 마치면 상달(음력10월)에 떡을 치고 돼지를 잡아 하늘에 고사를 지냈다. 천신, 지신과 성주신, 조왕신은 물론 오만 잡귀들에게도 술과 고
딸아이가 수능 시험을 치르는 날, 전날 술을 꽤 마시고 잤는데도 다섯 시 전에 잠이 깨었다. 아직 동이 트려면 한참을 더 있어야 하는데 정신은 말갛게 개어 그저 누워있을 수가 없다. 밖으로 나와 떨면서 담배 한 대를 끄고 아내를 깨웠다. 아내 역시 깊이 잠들지 못했는지 금세 눈을 비비고 일어난다. 밥을 안치고 도시락 쌀 준비를 한다. 그럭저럭 아이가 깨워달라던 여섯 시가 되었다. 방으로 들어가 보니 벌써 일어나 있다. 평소에는 꼭 깨워야 일어나더니 저도 꽤 긴장이 되었나보다. 아침으로 죽을 먹겠다더니 그나마 몇 술 뜨지 않는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짓는 아이의 속내가 보이는 듯하다. 무려 십이 년 동안 학교를 다니며 공부한 게 오늘 하루로 결정되는 말도 안 되는 교육 시스템에 잠시 울화가 치민다. 일곱 시
1년 전, 도시에서 올빼미생활을 하던 내가 이곳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왔을 때에는 한 겨울이었다. 어느덧 봄과 여름을 지나 낙엽이 지는 가을에 서있다. 굳이 정확하게 따지자면 가을과 겨울 사이 길목에 있다. 요즘 낮은 12시간이 안 된다. 해는 아침 6시 30분쯤 일어나고, 게으른 나는 그보다 1시간 후에 일어난다. 어기적어기적 점심 도시락을 챙기고 밖을 나서면 하루가 다르게 입김이 선명해진다. 일터에 거의 다다랐을 때 즈음, 2차선 도로에 콩을 널어놓아 영락없는 1차선이 된 길을 보는데 참 재미있다. 사람만큼이나 자동차가 많은 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감히 도로를 점거할 수 있냐는 말이다. 벼 말린다, 콩 말린다 해서 한 달 가까이 1차선 도로였지만, 어느 누구도 인상
가로에 놓인 가판대 아주머니는 벌써부터 겨울 차림새로 바뀌었다. 사람들도 햇살이 넉넉해지는 점심시간대에 가판대 앞을 어슬렁거린다. 가판대장사가 북적이는걸 보면 장사가 잘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주로 사는 것이 물건이 아니라 복권이다. 로또나 연금복권 스포츠복권 같은 것들이다. 즉석복권이라고 현장에서 긁어서 확인하는 것도 팔고 있다. 로또에 당첨돼 인생대박을 터뜨렸다는 이야기나 그 돈으로 패가망신했다는 이야기들이 인터넷 가십거리로 많이 등장한다. 패가망신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꽤나 많은 금액의 복권을 사고 또 바꾸기도 한다. 복권의 역사는 길기만 하다. 성경에도 복권이 나오고 중국의 만리장성을 축조하기위해 복권을 발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서양에서 최초의 근대식
오래 전 잡지를 뒤적이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칼럼 하나를 발견했다. 1989년 연초에 발간된, 당시에 뜨거웠던 노동문제를 문학적으로 다루는 잡지였다. 새해를 맞아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인사 형식의 글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노동자들은 가혹하게 자본과 구사대에 얻어터지고 있었다. 노대통령의 칼럼 제목은 ‘새해 복 많이 쟁취하십시오’였다. 지금 들으면 좀 우습기도 하고 막 초선의원이 된 국회의원으로서 치기조차 느껴지면서 노동자에 대한 애정과 친밀함이 배어있는 제목이기도 하다. 짧고 당시의 노동문제를 몇 가지 짚고 있었지만 내용이 뛰어난 글은 아니었다. 다만 글의 마지막 문장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다 함께 나아갑시다’ 였다. 새삼 그의 대선구호였던 ‘사람 사는 세상’이 대선에 임박해서 만
한국농정신문은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맞아 대선후보로 나선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 농정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학자들을 만나 향후 한국농업에 대한 비전을 들어보고 있다. 지난 호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에게 농업정책 제안을 한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 원장에 이어 이번호에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에게 지속적으로 농정제안을 하고 있는 성진근 한국농업경영포럼 이사장을 지난 24일 만났다. 〈대담=한도숙 사장, 글=최병근 기자〉 고품질·고부가가치 농산물 생산해 수출 농지제도, ‘농지농용’ 원칙으로 전환 한도숙=한국농업이 양적, 질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1980년대 수립된 개방농정을 지향하면서 농민들이 이농, 탈농을 많이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한중FTA 협상
내가 마지막으로 고기를 먹은 건 1년 전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결혼식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듯이 육식의 증가에 따라 대량 공장식 사육방식, 약물투여 등으로 환경은 오염되어 가고 인간의 체내에는 건강함이 축적되지 않는다. 주변에 채식을 하는 지인의 권유도 있었지만 환경에 대한,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생각에서 일단 고기만 끊었다. 지난 1년 동안 자그마한 변화라면 먹거리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음료수를 살 때도 어떠한 성분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보고 가능하면 합성착향료가 들지 않은 것을 선택하려고 했다(정말 거의 없었다.). 고기를 안먹으니 패스트푸드점은 갈 수가 없었고 바쁜 현대인들이 끼니를 떼우기 위해 허겁지겁 흡입하듯먹는 습관에서 벗어나
청공관에셔죠회기를우리나라동쥬부중성호가해삼위에잇셔영공관호죠를엇어소곰을싣고청국달력으로구월이십삼일에황해도해쥬광석포에도박하야소곰을팔지음포점쥬인박민형이가혐의를먹고포민들을만허더리해염샹을구타하야피상한자 -하략 1904년11월 26일자 대한매일신보에 난 기사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봤다. 내용인즉 황해도 해주 광석포라는 곳에서 청국상인 손연방이 소금을 팔다가 중매점포를 운영하는 박민형과 다투다가 급기야 청국상인과 조선상인의 집단난투극이 벌어져 손연방이 죽었다. 이 문제로 청국공관과 조선의 갈등이 불거졌으며 영국공사가 사건에 끼어들면서 외교문제로 비화했다는 것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많은 나라들과의 무역이 늘어났다. 바야흐로 신문물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즉 화장품, 도자기, 바늘, 성냥, 기름 등
올해 수학능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큰 딸이 수험생이다. 나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이나 공부에 대해 짐짓 모른 체하지만, 아이들이 겪는 비참한 학창시절을 모르지 않는다. 세상과 삶에 대한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눈뜰 시기에 오직 교과서와 문제집, 학원 따위에 매어진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고 3이 제일 상전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날마다 겪은 한 해였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아이는 별 것 아닌 일에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렸다. 어느 대학을 가라거나 공부를 하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건만 아이는 스스로에게 지운 짐에 비틀거리곤 했다. 그럴 때는 공부하지 말고 쉬라는 말도 하지 못한다. 모든 말이 비위를 거스르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가 나고 짜증을
나는 원래 도시여자였다. 외모만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나고 자란 24년 동안 흔한 친척 한 분 시골에 살지 않아 농활 때 외에는 촌에 가본 적도 없는. 그런 내가 해남 6년, 화순 6개월을 거쳐 경북 상주에서 9년째 농촌에서 살고 있다. 물론 해의 움직임에 따라 하루를 열고 닫고 직접 손에 흙 묻혀가며 일하는 순도 100% 농사꾼은 아니지만 편리한 생활문명과 다양한 문화생활을 누리고 사는 도시인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것은 대학 4년 동안 150도쯤 변해버린 내 가치관에 따라 생계유지에도 충실한 직장이면서 모두가 더불어 인간답게 사는 사회에 일조하는 지향을 가진 농민약국에서 활동하게 되어서이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다. 하지만 시골어르신들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약국의 대표지
대통령선거를 앞둔 요즘 영화가에 잘 팔리는 영화가 상영 중이다. 이름하여 ‘광해, 왕이 된 남자’이다. 곧 천만관객이 들것이라 하니 나도 시간을 내어 영화를 보았다. 대통령에 대한 바람을 조선시대 정쟁의 희생물로 사라진 광해군을 내 세워 상상의 나래를 펴 본 것이다. 혹여 감독이 관객들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던진 상태로 영화를 봤으나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진지함과 우수꽝스러운 장면들을 잘 배치하면서 관객들이 극에 몰입하도록 만들고 있다. 근래에 와서 광해군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달리 하는 여러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광해군의 역사적 기록은 패륜아였다. 그래서 그는 인조반정으로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