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엔 꼭 엄마와 김장을

  • 입력 2012.11.26 10:50
  • 기자명 김미영 서울시 구로동 도시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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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건 뭐예요?” “응, 상추.” “이건?” “응, 시금치.” 지난 여름내내 한평도 채 될까 싶은 사무실 텃밭에서 자란 채소들이 궁금해 지나갈 때마다 무슨 식물인지 물어보는 후배의 질문이 쏟아진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별로 관심이 없었던 먹거리에 대해, 오고가며 풀 하나라도 뽑기 시작하면서 궁금증이 발동했던 것이다. 부추도 마트에 가서 ‘부추 주세요’ 하면 아주머니가 알아서 챙겨주셨기 때문에 땅에서 올라오는 부추를 보고도 무엇인지 몰라 물어볼 정도로 밭에서 나는 채소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텃밭에 관심많은 친구가 이것저것 토종씨앗을 가져다가 실험(?)용으로 심었는데 그러지 말고 생활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먹을거리를 심어보기로 마음을 모으고 농사(농사라고 하기엔 부끄럽지만)를 짓기로 하고 씨앗을 사왔다. 처음 사보는 씨앗이라 꽃가게 주인이 주는대로 시금치, 쑥갓, 적상추, 청상추 씨를 받아왔다. 예전에 시골에서 보면 할머니가 농작물의 씨앗을 말려 이듬해에 다시 땅에 뿌리곤 하셨다.

옥수수는 서로 엮어 처마 밑에 걸어 두시고, 상추는 털어서 작은 보자기에 쌓아 벽장에 두시고, 고추씨, 감자, 고구마, 마늘, 벼, 보리 등 많은 농작물의 씨는 이렇게 자급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엄마도 모두 씨를 사다가 농사를 지으신다. 그렇게 어설픈 농부의 일상이 시작됐다. 아침에 출근하면 물을 주고 땅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새싹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조급증까지 발동시키며 일주일은 족히 지낸 것 같다.

드디어 씨앗 주머니를 머리에 쓰고 새싹이 올라오던 날, 사무실은 난리가 났다. 처음 보는 양 신기해하기도 하고 우리 텃밭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기도 하다면서 수다를 떨며 사진을 찍고 SNS에 올려 지인들에게 자랑도 하면서 생전 처음 씨앗을 사다가 물을 주어가며 풀도 뽑아주고 어서 나오기를 기다린 시간에 대한 보상을 즐겼다.

그렇게 자란 채소들은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식사 시간은 자연스레 토종씨앗에 대한 이야기, 농민들의 수고로움과 힘듬, FTA 등 상추와 쑥갓, 고추들을 먹으면서 토론장이 만들어지곤 했다. 휴가 때 시골에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뙤악볕에 참깨를 베어 묶어서 나르고, 베어진 참깨대를 뽑고 그 자리에 김장용 무, 배추씨를 심기 위해 고랑을 만들고 난 다음날 땀을 갑자기 많이 흘려서인지 아침에 일어나는데 어지럽고 온 몸이 쑤셔댔다. 사무실 텃밭에서 먹거리를 기르며 얻었던 신기함이나 즐거움은 없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생계가 힘든 엄마의 현실만이 보였다.

며칠 전 엄마는 김장을 하시기전 니가 심어놓은 무랑 배추를 속아서 김치를 담았다며 들기름이랑 텃밭에서 자란 냉이를 캐어 택배를 보내 오셨다. 보내주신 김치를 놓고 두 딸과 함께 둘러앉아 상을 차릴 것도 없이, 김치 대가리 뚝~ 잘라 접시에 담고 밥도 큰 그릇에 퍼서 셋이 다투듯 개걸스럽게(?)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 졌다. 잠깐의 노동으로 힘들어했던 지난 여름이 생각났고, 항상 편하게 받아만 먹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엄마 김치를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이것을 우리에게 보내주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매년 김장때도 바쁘다고 한 번도 가지 못했는데 이렇게 앉아서 받아만 먹네….’ 그래서 난 오늘도 엄마의 힘겨운 노동으로 내 아이들까지 공짜로 행복을 얻은 것 같아 죄스러워졌다. 올해엔 꼭 김장을 하러 가야겠다. 그리고 내년에 또 텃밭 농사를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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