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패러다임 지고 지속가능 체제 뜬다”

<20> 황수철 농정연구센터소장

  • 입력 2012.11.19 10:27
  • 기자명 어청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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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농정신문은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맞아 대선후보로 나선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 농정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학자들을 만나 향후 한국농업에 대한 비전을 들어 보고 있다. 이번에는 안철수 후보 측에 농업정책 자문을 하고 있는 황수철 농정연구센터소장을 지난 12일 만났다. <대담=한도숙, 정리=어청식>

한도숙=농사를 계속 지어오면서 느끼는 것은 94년 농업보다 지금 오히려 더 후퇴한 느낌이에요. 물가수준에 비해 농가소득이 형편없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농업정책, 특히 이명박 정권의 농업정책을 평가하신다면.

황수철= 농가소득 악화는 오랜 기간 누적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보입니다. 통계를 살펴보면 96년 이후 농가의 실질소득이 악화되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인 2007년과 2008년엔 눈에 띄게 뚜렷해졌죠. 이와 같은 결과를 만든 농정의 근간은 김영삼 정권 때 만들어졌습니다. 대외적으로 개방을 하면서 농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경쟁력 신화’였지요. 만약 일관되게 경쟁력 강화 노선을 걸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철학과 비전도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농정이 지금의 결과를 만든 것이지요. 이명박 정권의 농업정책을 따로 평가하자면 역대 어느 정권보다 불통이 심하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한= 지난달 열린 대안농정대토론회에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내셨는데 골간은 협동조합과 소농, 농산물 가격지지 정책 등이었습니다. 특히 지속가능한 농업에 방점을 두신 것으로 보이는데.

황= 한국농업의 문제는 대외적인 것과 대내적인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현재 WTO체제 규율을 대안적인 국제협력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원천적으로 소농의 목을 죄고 있는 것이 바로 WTO체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바꾸는 것은 단일 국가 차원에서 하기 어렵고 긴 호흡을 두고 접근해야 합니다. 대내적으로는 현재 주어진 조건인 WTO체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성장패러다임을 기각하고 지속가능성을 강조한 패러다임으로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지속가능성을 위해 분배와 환경을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하려면 모든 사람들의 인식과 가치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정부만 해선 안 되고 학계, 생산자, 소비자를 비롯해 모든 이해관계자가 각성해야 합니다. 특히 생산자의 인식 변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각성한 생산자와 각성한 소비자가 만나지 않으면 지금의 시스템을 못 바꿉니다. 그것을 모두 아우르는 차원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신자유주의 틀 안에 갇혀 소비자는 싼 값과 편의만을 찾고 농민들은 경쟁력신화를 신주처럼 믿어 자신의 농산물만 고품질로 좋은 값에 파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이런 전략을 취해서 성공한 케이스는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고, 전체 농업을 이끌어가는 방법도 아닙니다. 이와 같은 구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각성된 농민과 소비자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 같은데 구체적인 정책은 어떤 것이 있나요?

황= 농업이 바뀌어 가는 것은 매우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농업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그 긴 시간을 정책 당국이 못 기다리고 그르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유럽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계획적인 접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은 1992년 맥셔리개혁을 할 때 수매제를 통한 가격지지 방식을 버리고 가격을 시장에 맡기면서 농산물 가격차를 보상하는 직불제로 바꿨습니다. 이것이 자리 잡으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직불제를 운영할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고, 둘째는 농업과 농촌을 보호하는 것이 나에게도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죠. 농민들에게 지원되고 있는 전기 요금 등 간접 지원을 모두 없애고 직불제로 일원화해야 합니다. 효과를 따져서 그 간접지원만큼 현금으로 주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농민들이 스스로 고투입 농법에서 저투입 농법으로 전환할 것이고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에 대처 가능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농민들의 사회적 책임도 분명히 해야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 황수철 소장은 “각성한 생산자와 각성한 소비자와의 만남”을 강조했다. 현재 한국농업의 성장패러다임을 지속가능성을 강조한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부 뿐만아니라 학계, 생산자, 소비자를 비롯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승호 기자>

한= 농민들과 정부는 신자유주의 틀 속에서 사고했습니다. 이런 틀 속에서 안철수 캠프는 성장의 동력이라며 한미FTA는 유지하고 한중 FTA도 찬성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또한 신자유주의 틀 안에 있다는 생각인데…

황= 내부에서도 치열한 논쟁거리였습니다. 기본적으로 FTA는 한다는 입장이고 다만 한미FTA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민감 품목을 제외하면 좋겠지만 농업 부문을 제외하면 아예 협상 테이블이 성립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캠프 측의 판단은 처음 민감 품목을 모두 제외하고 시작하면서 최대한 유예와 사후조치를 취해가며 한중FTA를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즉 투트랙으로 가자는 것이죠.

한= 안철수 후보의 성장과정과 이후 사회 엘리트로서 활동해온 것을 보고 판단할 때, 이 사람은 철저한 경제 원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농업 구조 자체가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적은 효과를 내는 특성이 있습니다. 대차대조표에는 항상 적자여도 농업이 주는 국민 건강, 정신 건강, 문화보존 등을 생각하면 경제 원리로 농업을 판단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안철수란 인물이 그런 이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황= 경제는 민간 주도의 시장경제, 국가 주도의 공공경제, 사회적 목적을 갖고 시장과 국가 사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적 경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세 영역이 균형 있게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지금은 국가가 왜곡해서 시장경제만 강조하고 사회적 경제를 압살했기 때문에 문제가 큰 것입니다. 무엇보다 안철수 캠프의 기본적인 생각은 농업을 산업으로만 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안철수 캠프에 참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재 농산물은 세계식량체계로 편재되어 있습니다. 흔히 생산, 유통, 가공, 소매시장으로 농산물 영역을 나누는데 소위 빅3 대자본이 이 영역을 꽉 잡고 있습니다. 이를 해소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고 WTO체제에 속해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가격보조 방식이 아닌 직불제 방식으로 공공경제의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으론 세계식량체계에서 어떻게 로컬푸드 운동으로 나아갈 것인가 정책적 고민을 해야 합니다. 로컬 영역으로 가는 방법은 급격히는 안 되고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58년째 지속되고 있는 충남 홍성 홍동면이 왜 지금까지 전국으로 확대되지 않았는지 반성해봐야 합니다. 여태 각성된 소비자 그룹을 만들지 못했고 네트워크도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한= 지금 세 사람의 대선후보가 공히 식량주권을 언급하고 있는데 안철수 캠프는 식량주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황= 식량주권은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고 다만 중요한 수단이라고 봅니다. 안전한 먹거리가 곧 안전한 공급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식량 자급률의 급격한 저하를 공공의 안정성, 국민건강을 염두에 두고 식생활 안전까지 아우르는 국가식품전략으로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서 먹거리 문제와 농업문제를 포괄해야 한다고 봅니다.

협동조합 사회라고 하는 덴마크와 뉴질랜드 등도 협동조합에서 생산·소비 되는 농축산물이 40%가 안 됩니다. 이는 그만큼 현대 식생활이 복잡하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세계식량체계를 총괄적으로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황 소장이 제안하신 대안들은 말씀하신대로 긴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권은 5년으로 유한한데 어떻게 끝까지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황= 5년 단위이든, 7년 단위이든 지속적으로 정책의 기조가 유지되고 계획체제가 명확하게끔 기본법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법률체계에서 제대로 지켜나가야 합니다.

기본계획을 세우고 기본법을 세워서 투명한 방식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투명성을 위해 지금과 같이 중앙정부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가 농정을 펼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최소한의 기조와 방향성을 농식품부가 설정하면 지자체가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한= 말씀하신 대안들이 실제로 잘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농민들이 관행과 기득권을 포기해야하는데 그것들을 위한 정책이 어떻게 펼쳐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황= 농민 스스로 각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도 농업계에 30년간 있으면서 농민이 바뀌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단계적 목표를 세우고 어느 정도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농민이 따라주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가장 먼저 농민의 정의, 농업활동의 정의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처럼 어려운 것은 소통이 잘 안 되기 때문입니다. 농식품부와의 소통은 가짜 소통입니다.

이제 민관 협치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누구 하나 장관 자리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 행태를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의 농협과 일부 농업관련 단체의 요구사항을 보고 안철수 캠프의 핵심 브레인 장하성 교수가 ‘농협이 협동조합입니까?’, ‘축산인을 CEO로 봐야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묻습니다. 우리 스스로 이런 현실을 반성해야 합니다.

한= 제안하신 정책들이 잘 받아들여져서 걸림돌 없이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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