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이 이야기

  • 입력 2012.10.29 09:04
  • 기자명 최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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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학능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큰 딸이 수험생이다. 나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이나 공부에 대해 짐짓 모른 체하지만, 아이들이 겪는 비참한 학창시절을 모르지 않는다. 세상과 삶에 대한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눈뜰 시기에 오직 교과서와 문제집, 학원 따위에 매어진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고 3이 제일 상전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날마다 겪은 한 해였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아이는 별 것 아닌 일에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렸다. 어느 대학을 가라거나 공부를 하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건만 아이는 스스로에게 지운 짐에 비틀거리곤 했다. 그럴 때는 공부하지 말고 쉬라는 말도 하지 못한다. 모든 말이 비위를 거스르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가 나고 짜증을 낼 때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담이가 아이에게 달려가도록 하는 것이다. 담이는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다. 강아지가 달려가 매달리면 아이는 어느새 미소를 짓고 안아든다. 그러면 나는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내 평생 집안에서 강아지를 키우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남들이 애완견이라는 이름으로 개를 키우는 것도 항상 못 마땅해 하는 편이었다. 우선 정서적으로 개는 집 밖에서 키우는 가축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기 어려웠다. 귀농 초기에 몇 년간 개를 키웠다. 남은 음식을 처리하고 낯선 사람이 오면 짖어주기도 하였지만 개가 일으키는 문제 또한 만만하지 않았다. 혈통이 있는 영리한 개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툭하면 목에 맨 줄을 끊고 키우던 닭을 물어 죽이는가 하면, 어린 딸아이에게 대들어 혼비백산하게 만들기도 했다. 개에 놀란 아이가 며칠씩 밤에 경기를 일으키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놈을 마을회관에 기증(?)해 버렸다. 그날로 회관에서는 장작불 피우는 연기가 솟아올랐다.

거의 송아지만한 서양의 잡종 개는 덩치에 비해 순하고 말도 잘 들어 꽤 마음에 들었는데 어느 날 이유 없이 밥을 안 먹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 큰 놈을 동물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어서 대충 증세를 설명하고 약만 사다 먹였다. 그래도 영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개를 오래 키웠다는 누군가가 소주를 먹이면 나을 거라는 훈수를 두었다. 앞뒤 생각 없이 소주를 사다가 병째 콸콸 목에 부어주었다. 술기운을 빌어서라도 벌떡 일어나기를 바랐는데, 일어나기는커녕 그대로 쓰러져 숨을 몰아쉬다가 두 시간도 안 되어 삼도내를 건너고 말았다. 소주 처방을 내린 자는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기왕 죽은 개를 어찌할 거냐고 물어왔다. 그제야 나는 그 괴이한 처방이 새로 이사 온 사람에 대한 일종의 텃세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다. 그는 죽은 개에게 욕심이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개를 산에 묻어주었다.

삼년 전에 둘째 아이가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랐을 때 절대 불가하다는 나와 거의 몇 달 동안 실랑이가 이어졌다. 친구가 키우는 강아지에 폭 빠져 날마다 그 집에 가는가하면, 강아지만 사주면 가장 완벽한 딸이 될듯한 다짐을 두기도 했다. 반대로 강아지가 아니면 가장 불량한 딸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완강하게 버텼다.

결국 내가 굴복하게 된 것은 의사의 권유 때문이었다. 딸아이는 어떤 스트레스성 질환이 있었는데, 그 치료에 애완동물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거였다. 생후 이 개월짜리 강아지가 처음 온 날, 사달라던 둘째보다 더 환호성을 지른 것은 큰애와 막내였다. 보자마자 강아지에 빠진 아이들은 지금까지 담이에게 지극한 사랑을 쏟는다. 생각지 못한 수확이라면 아이들이 강아지를 키우면서 자기들끼리의 다툼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동시에 애정을 쏟는 대상이 생김으로서 서로에 대한 우애가 돈독해진 것 같다. 고3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역할까지 대신해주니, 이제 나도 한 식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가끔 ‘에고, 내가 담이를 두고 어떻게 멀리까지 대학을 가나.’ 하고 진지하게 혼잣말을 하는 딸이 어이없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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