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

  • 입력 2012.11.26 10:48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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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 상림원에 가면 사랑나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나무가 한 나무처럼 서로 붙어 버린 것을 연리지(連理枝)또는 연리목(連理木)이라한다. 요즘은 아마 사랑나무라고 하는 것 같다. 이런 형태의 나무는 전국 각지에 많이 있다. 예로부터 상서로운 징조로 여겨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왔다. 연리지의 고사는 후한말 대학자 채옹(蔡邕)에서 유래했다.

워낙 효심이 극진해 어머니가 죽고 뜰에 나무가 자랐는데 연리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연리지는 효심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당나라 때 백거이가 쓴 시 장한가에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연리지로 표현 하면서 연리지는 부부간의 사랑, 연인을 상징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두 나무가 결합하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효심일지 사랑일지 가늠하기에 쉽지 않다.

물론 효심도 상처를 핥는 것이며 사랑도 서로의 상처를 감싸주면서 무르익어가는 것이라 하면 이해가 갈만하다. 하지만 두 나무의 가지가 자라는 과정에서 서로의 몸에 가까워지면 바람에 의해 서로의 몸을 문지르며 상처를 내게 된다. 아물만하면 다시 찢어지고 또 아무는 부단한 싸움을 통해 상처는 서로의 부름켜와 맞닿게 되고 그로부터 물관과 체관이 연결되어 물과 양분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같은 속간이나 같은 종간에서만 가능하다. 가끔 느티나무와 개서나무의 연리목을 보는데 이는 각각 자작나무속과 느티나무 속으로 생장점이 다르기 때문에 연리가 되어도 물관이나 체관을 공유하지는 못한다. 결국 생장이 좋은 나무가 생장이 더딘 나무를 감싸거나 양분공급을 방해해 한 나무는 고사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문, 안 두 대선후보가 단일화를 한다며 TV토론을 했다. 현재의 판세로는 부동의 45%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단일화외엔 없어 보인다. 그동안 단일화를 하느니 마느니 국민들을 헷갈리게도 했다. 단일화하기로 합의한 후에도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단일화 논의가 중단되고 여론에 떠밀려 단일화협상이 재개되는 모습이다.

국민들은 못마땅하다. 결국 새로운 정치개혁을 말하고 있지만 권력이 한발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누구도 욕심을 버리긴 어렵다. 특히 서로의 정책 차이를 강조하는 모습은 못마땅함을 넘어 불안하기까지 하다. 결국은 두 후보의 정책차이가 해소되고 민주주의 틀을 확고히 하는 접점이 필요한 것 같다. 종속이 다른 상태의 연리지가 똑같이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단일화가 문제가 아니라 단일화 이후가 더 문제란 말이다. 가능하면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상향식의 정책공약을 공유한다면 온전한 연리지를 만들어낼 것이다.

하긴 뭐 지금 시간이 없질 않는가. 어쨌든 현재 두 후보간의 연리지는 종속간이 다른 나무들의 연리지로 만들어 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연리지 이후에 어딘가 한쪽 세력이 급격히 하락 하는 모습에서 정권교체라는 국민적 열망을 놓치고 말 것이라는 조금은 생뚱맞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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