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의 날 유감

  • 입력 2012.11.12 10:13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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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1일 농업인의 날이다. 한문을 세로로 쓰면 11이라는 숫자가 흙토(土)자와 닮았기에 그리 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농업인의 날은 엄청난 작위로 지내기 일 수다. 아니 모르고 넘어가는 농민들이 절대다수라 봐도 틀리지 않는다.

농민들이 잘 모르고 별 의미도 두지 않는 농업인의 날은 양념 없이 먹는 도토리묵 맛이다. 이유는 이렇다. 몇몇 농민이 상을 받고 동원된 사람들은 성의 없는 박수를 치고 누구의 치사를 듣고 그리고 끝이다. 부대행사가 있으나 즐겨야 할 농민들은 거의 없고 물건을 팔아보려는 측과 싸게 사보려는 일부 소비자가 있을 뿐이다.

일 년 농사를 마치면 상달(음력10월)에 떡을 치고 돼지를 잡아 하늘에 고사를 지냈다. 천신, 지신과 성주신, 조왕신은 물론 오만 잡귀들에게도 술과 고기와 떡을 나누고 일 년 농사를 기꺼워했다. 풍흉이 감사의 기쁨을 재단하지 않는다. 경배이며 알림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땅에 그리고 그 모든 순리를 만들어 가는 귀신들에게 경배하고 알리는 것이다. 기쁨이 넘치니 사람들이 술과 고기와 떡으로 회를 치고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상달이면 모든 영농 행위가 끝나고 내년 해토를 기다린다.

이런 날들은 한반도 농업사회에선 각 절기마다 들어 있었다. 정월보름날은 머슴날이라고 했다. 머슴들이 오곡밥과 아홉가지 나물을 먹고 아홉짐의 나무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밤엔 쥐불놀이를 했다. 병충들을 잡는 것이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보름날 땅에 삽을 꽂아본다. 웬만한 곳은 다 녹았다. 땅을 갈아야 할 시기인 것이다. 유월 유두는 호미를 씻는 날이다. 두벌매기가 끝나고 이제 더 이상 논을 훔치지 않아도 되는 시기다. 칠월 칠석은 소출을 결정하는 날이다. 그 날 들에 나가면 신으로부터 노여움을 산다고 한다. 그리고 시월상달로 이어지는 풍속이 있었단 말이다. 그 모든 시기에 자연의 섭리를 주관하는 모든 신께 고사를 올리고 음식을 나누어 공동체의 결속과 문화를 다져 온 것이다.

요즘 농사와 관련한 기념일 들이 많이 있다. 농민의 날을 비롯 한우데이가 있고 오이데이, 오리데이, 구구데이, 삼겹살데이에 딸기데이도 있다. 각 농산물의 홍보를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홍보효과나 올리는지 알 길이 없다. 괜한 시간 내서 얼마만큼의 농산물을 거둬 소비자들에게 무료시식과 싼값에 판매하면 한 시간이 되지 않아 동나고 파장이다. 스펙이 요란한 농산물들이 소비자의 눈을 파고들 것이란 생각이나 소비자는 넘쳐나는 정보를 수집할 의욕도 흥미도 이미 없다. 감동있는 내용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그저 그런 농산물을 공짜로나 주면 덥석 받아갈 뿐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들이 무엇으로 국민을 감동시켜야 할지 고민인 모양이다. 농민들도 그 무슨무슨 날들에 감동이 있기를 바란다. 무덤덤하게 서서 애국가나 부르고 손뼉치고 끝인 농업인의 날이나 또 다른 기념일들이 비릿한 자본의 냄새, 시장의 냄새가 나서야 어디 농민이 우선이 되겠는가. 하늘과 땅 그리고 섭리를 아우르는 귀신을 섬기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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