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듯 멈춘 듯 서서히 흘러가는 농촌의 삶

  • 입력 2012.10.22 13:15
  • 기자명 박신희 경북 상주시 신봉동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원래 도시여자였다. 외모만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나고 자란 24년 동안 흔한 친척 한 분 시골에 살지 않아 농활 때 외에는 촌에 가본 적도 없는. 그런 내가 해남 6년, 화순 6개월을 거쳐 경북 상주에서 9년째 농촌에서 살고 있다. 물론 해의 움직임에 따라 하루를 열고 닫고 직접 손에 흙 묻혀가며 일하는 순도 100% 농사꾼은 아니지만 편리한 생활문명과 다양한 문화생활을 누리고 사는 도시인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것은 대학 4년 동안 150도쯤 변해버린 내 가치관에 따라 생계유지에도 충실한 직장이면서 모두가 더불어 인간답게 사는 사회에 일조하는 지향을 가진 농민약국에서 활동하게 되어서이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다. 하지만 시골어르신들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약국의 대표지역사업인 농촌보건활동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수십 년 동안 계속해온 농사일에 골병이 나신 6, 70대들이시다. 바쁜 농번기에는 시간이 없어서 혹은 거동이 불편한데 데려다줄 사람이 없어서 치료를 미루시다가 직접 찾아가는 우리들을 반겨주신다. 대단한 도움도 드리지 못하지만 반기고 고마워하시는 순수한 모습에 나도 그 분들에게서 에너지를 수혈 받는다. 약국경력이 쌓일수록 사투리도 늘어 해남에선 해남 사투리, 상주에선 상주 사투리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현지인에겐 전라도말도 경상도말도 아니지만 내겐 그것으로 충분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상주에서 책임약사를 맡게 되면서는 농민회원들과 건강사업단을 꾸리게 되었다. 매월 한 번씩 만나 상주 맛집 순회도 하고 건강사업 활성화에 대한 토론도 한다. 사람이 여럿이라 뜻대로 되지 않는 고비도 만나고 불편한 감정이 들 때도 있게 마련이다. 당장 그 순간에는 골머리를 앓지만 지나고 보면 이 과정 또한 내 삶의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첫 마음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에서 만나는 다양한 갈등과 고민들에 꺾여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더러 들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면 어느새 끈끈하게 내 인생에 엮인 사람들과 느린 듯 멈춘 듯 서서히 흘러가는 농촌 삶의 방식 덕이 아닐까 한다.

가끔은 콘서트랑 뮤지컬도 보고 싶고 대형쇼핑몰이랑 패밀리레스토랑도 가고 싶지만 아등바등 남들 따라가느라 버거워하지 않고 넉넉하진 않지만 주위사람들과 나누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내게도 전이되어 여유를 갖게 하는 것 같다. 가끔은 예전엔 약국에 자주 들르시던 어르신들이 요새 보이지 않아 걱정이 들 때가 있다. 처음 농활 다닐 때만 해도 700만 농민이라 했는데 이젠 300만이라니 그 사이 반토막난 인구통계로 보자면 유명을 달리 하신 사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전체 인구에 비하자면 6%에 불과하지만 농촌과 농업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잘 아는 위정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빡빡한 도시인들에게 삶의 위안과 넉넉한 시골인심을 누릴 수 있게 해주고 식량위기로부터 보호해주는 특화된 역할을 가진 시골이 언제까지라도 도시와 공존할 수 있다면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겠다. 그건 내가 있는 이 자리를 지키는 일부터. 박신희 경북 상주시 신봉동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