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름내기

  • 입력 2012.11.19 10:18
  • 기자명 최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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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거름을 냈다. 올해는 포대에 담긴 거름 칠백 포를 샀다. 전에는 주로 축사에서 나온 짐승 똥을 받았다가 발효시켜 썼는데,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봄에 받아놓은 거름에 발효제를 섞어가며 두어 번은 뒤집어주어야 하는데, 몇 해 전부터 힘에 겨워 포기하였다. 포대에 담긴 거름이 조금 더 비싸긴 하지만, 정부 보조금이 절반쯤 되어 큰 부담이 아니게 된 연유도 있다.

운반차에 서른 포대씩 싣고 과수원에 부리고 펴는 작업도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겨우 이십 킬로밖에 안 되는데도 얼마 안 가 팔이 아파왔다. 왼쪽 어깨에 오십견이 와서 시원찮은 탓도 있지만 전보다 힘이 많이 떨어진 게 확실했다. 요즘은 많이 기계로 하지만 여전히 사람 힘이 필요한 게 농사다. 그러고 보니 나뿐 아니라 예전보다 힘을 잘 쓰지 못하는 것 같다. 옛 농군들은 팔십 킬로 짜리 쌀가마니를 거뜬하게 들었는데 요즘은 사십 킬로도 벅찬 무게다.

지금은 운반차로 나르지만 귀농하고 칠팔 년 간은 바퀴가 하나 달린 손수레로 그 많은 거름을 다 내었다. 삽으로 퍼서 담고 비탈진 과수원을 오르는 일은 참으로 고역이었다. 아버지는 거름을 내다가 무릎 관절이 잘못되어 결국 인공 관절을 이식하는 수술을 하기도 했다. 이제는 나도 힘이 달려 다시 하라면 못할 것만 같다.

포대에 든 거름은 아무래도 좀 날림으로 만든 것 같았다. 가축분과 당겨, 톱밥 따위를 섞어 만들었다는데, 톱밥이 아닌 수입목을 분쇄해서 넣은 게 분명했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리처럼 반짝이는 무언가도 섞여 있었다. 발효가 충분히 되지 않아 냄새도 고약했다. 원래 제대로 된 거름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난다.

어렸을 적에 마당에는 두엄자리와 오줌장군이 늘 있었다. 아이들하고 놀다가도 오줌이 마려우면 집으로 와서 오줌장군에 누곤 했다. 아무데서나 오줌을 누면 왠지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았다. 산이나 들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이면 날마다 베어와 두엄자리에 쌓았다. 우리 고향에선 그것을 ‘깔을 한다’고 했다. 아마 꼴에서 변형된 말 같은데 산더미처럼 쌓였던 깔이 하루만 지나면 푹 꺼지곤 했다. 베어온 깔과 사람의 똥오줌이 섞여 발효되면 뜨거운 김이 나며 구수한 냄새가 퍼졌다. 아버지는 전설 같은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할아버지가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똥을 누게 되었는데, 그 놈을 가랑잎으로 싸 와서 두엄더미에 던졌다는 얘기였다. 밥 한 사발은 주어도 거름 한 사발은 못 준다는 속담도 있다. 그만큼 거름을 중하게 여겼다.

가을배추를 심을 무렵이면 아버지는 변소의 인분을 퍼서 밭에 뿌렸다. 변소 옆에 늘 세워져있던 똥지게는 만지기조차 싫은 물건이었다. 아버지는 그 지게를 지고 족히 수백 미터는 떨어진 밭으로 향했는데 인분이 출렁이며 옷이며 얼굴에까지 튀기가 일쑤였다. 그 모습을 보며 커서 농사는 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와 아버지는 나르고 아내와 어머니는 포대를 뜯어 밭에 폈다. 나도 힘든데 여자 힘으로는 더욱 벅찬 일이었다. 사람을 사서 하려해도 거름 내는 일은 선뜻 하려하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은 인삼밭을 만드는 곳이 많아 일을 할만한 사람들은 모두 그곳으로 간다.

점심참까지 사백 포대를 냈더니 팔이 잘 들리지도 않았다. 자주 비가 오는 요즘이라 어떡하든 끝을 내리라는 생각으로 점심을 먹자마자 바로 일에 매달렸다. 백여 포 남짓 남았을 때는 정말 포대를 들 힘이 없었다. 일을 할 때는 술을 마시지 않는데, 군고구마를 새참 겸 안주로 해서 아버지와 소주 한 병을 나누어 한 컵씩 들이켰다. 술기운을 빌어 간신히 일을 끝낸 시간이 다섯 시 반, 어둑어둑해지는 무렵이었다. 몸에서는 소, 돼지와 닭똥이 섞인 냄새가 진동하고 허리며 팔이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얼굴에까지 거름을 묻힌 아내의 표정도 심상치 않았다. 이틀에 나누어 하자는 아내의 말에 얼른 끝내야한다고 몰아친 내게 심사가 뒤틀어진 게 분명했다. 고달프고 힘겨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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