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농업 패러다임 변화의 시작은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 입력 2012.11.26 11:05
  • 기자명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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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농정신문은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맞아 대선후보로 나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 측 농정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학자들을 만나 향후 한국농업에 대한 비전을 들어 보고 있다. 이번에는 이정희 후보 측에 농업정책 자문을 하고 있는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을 만났다. <대담= 한도숙 사장, 정리= 전빛이라 기자>

한도숙= 해방 이후 농업정책은 구조조정이라는 틀로 일관되게 흘러왔다. 시장론자들이 득세하면서 시장개방이 이루어지고, 많은 농민들이 피를 흘렸다. 그간의 농업정책에 대한 평가, 특히 이명박 정부를 중심에 두고 평가를 한다면 점수가 많이 박할 것 같은데.

장경호= 90년대 이후로 정치하는 사람들 모두 농산물 시장개방은 어쩔 수 없고, 농업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이야기 해 왔다. 즉,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지난 20년 동안 대외적 개방과 대내적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계속 돼 왔다. 다만 이들 간의 차이가 있다면 보완책의 차이라 할 수 있다. 현 정권 전까지는 농민들이 한꺼번에 몰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직간접 대책들이 꾸준히 만들어졌었다. 직불제와 추곡수매 농어촌 특례 등이 직간접적 대책에 속한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는 이 부분이 강화되면서 몰락 속도가 둔화됐는데, 이명박 정부는 이 부분마저 약화시켰다. 어떤 것은 동결되고 축소되거나 폐지됐다. 기본적으로 정책이 농업해체 방향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으로, 요 근래 빠르게 늘어난 농촌의 빈곤인구 수를 들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빈곤인구 수가 5%가량 늘었는데, 이 정부 들어서 5년 동안 10%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4배나 빨라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지 않나 싶다.

한= 농민들은 지금까지 농업을 보조하는 정책수단만을 농업정책으로 바라봤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도 많은 농민들이 그러한 정책을 내놓기를 바라고 있다. 때문에 대선 후보자들에게 요구하는 농민들의 목소리는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하고는 많은 차이를 두고 있다고 본다. 앞으로 우리 농업에서 장 부소장이 생각하는 기초농산물수매제의 의미는 무엇인가.

장= 이번 대선을 보면서 느낀 긍정적인 부분은 야권 후보들이 식량주권과 먹거리기본권을 공약의 첫 머리에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보다는 한 걸음 더 진전된 변화라고 생각한다. 기초농산물수매제는 농정의 패러다임, 방향의 물꼬 자체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긍정적 변화이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가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민들이 실질적으로 농사를 지어서 제대로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가격정책과 소득정책을 써야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정희 후보를 제외하고는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 외의 후보들은 직접지불제 100만원 등 부분적 측면에서만 받아들이고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과 변화, 전반적 개편까지는 생각이 안나오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한계가 아닐까 한다. 우리 농업이 뛰어넘어야 할 벽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 지금까지 농촌에 들어간 예산의 규모를 보면 천문학적인 규모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에 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정도 규모라면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인거 같은데, 이것은 예산의 문제인가 정부의 의지 문제인가.

장=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반대 논리의 핵심이 WTO 감축대상보조금 총액 때문에 돈을 쓸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해결 방법을 충분히 제시했다. 그런데 WTO문제나 재원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논의가 아니라 그야말로 반대를 위한 반대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안 된다고 하는 전제를 깔고 안 되는 이유들을 찾아내서 이야기 하다 보니 실질적 논의, 생산적 논의가 안 되고 겉돌고 있다. 특히, 농민들에게도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소득·가격 정책이다. 이 안전망이 있으면 이를 바탕으로 혁신이 이뤄진다고 본다. 실패하더라도 나락으로 떨어져서 낙오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재도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정부가 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농업정책에서의 문제는, 민간에서 해야 하는 혁신과 성장을 정부가 하려고 하니 두 가지 다 놓치게 되는 것 같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경쟁력에서도 실패하고 농업을 유지하거나 보호하는 것도 실패했다.

한= 근본적 농업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가격문제다. 생산비만 보장되면 누구든 망할 수는 없다. 이의 기본이 되는 것이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라 생각한다. 연구자로서 특별히 국가수매제에서 내세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장= 우선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수레바퀴는 이미 굴러가고 있다. 먼저 이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방식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전세계적으로 식량위기를 말 하고 있고 우리나라처럼 자급률이 22.2%밖에 안 되는 경우에는 무척 절실한 부분이다. 수입에 의존한다는 논리는 현실에서, 경험에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에 최대한 국내에서 많이 자급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남북간의 협력, 동북아 식량안보 협력을 통해 안정적 공급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수출로 먹고사는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표상으로도 세계경제가 위기이고 한국의 무역상대국인 미국, 중국, 유럽 등이 위기상황이면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수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제 내수밖에 없다. 노동소득이 높아져야 하고 일자리가 많아져서 우리 내부에서 순환되는 관계, 즉 내적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농업은 수출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국내에서 소비된다. 농자재 유통, 가공산업, 외식업까지 전체적으로 먹거리와 관련된 순환효과가 굉장히 큰 것이 농업이기 때문에 농업은 경제 순환을 통한 내수, 한국경제에 꼭 필요한 것이 됐다.

▲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주는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실현을 주장했다. 또한 전문가 그룹과 공무원들이 엘리트 의식을 버리고 진정한 협치를 통해 농업 패러다임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한승호 기자>

한=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를 시행하려면 국민적 합의 이전에 농민적 합의를 얻어내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장= 우리가 지금까지 성과 있는 싸움을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이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들은 많이 한다. 당위성과 필요성은 대체로 공감한다. 그러나 실현가능성이 있어야 적극적으로 참여도 하고 활동을 할 텐데 이런 부분이 떨어지니까 추진력이 약해지는 측면이 있다. 일단 정치권이나 정부를 포함해서 내용 자체가 워낙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혁신적인 안이다 보니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누적돼 온 체념의식과 무기력함이 지금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한= 농업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들은 많이 확산 돼 있다. 그러나 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버리지 않는 상황들이 혼재돼 있어서 시기적으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연 진실한 정책이 어떤 것인가 차츰 밝혀 질 것이다.

장= 이번 대선후보들이 협치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협치의 의미가 왜곡된 것 같다. 원래 협치의 의미는 이해 당사자가 모이는 것이다. 정부와 시민, 농민, 농업 분야 협치 테이블이 있다고 할 때, 첫 번째는 큰 목표와 원칙과 방향이 협치 테이블에서 결정이 되고, 공무원과 연구자들, 전문가 그룹은 큰 틀에서 세부적 부분들을 전문적 식견과 행정적 테크닉을 이용해 채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큰 틀과 방향을 정부가 정하고 세부적인 것만 당근 몇 개 더 주느냐 마느냐를 하면서 협치를 이야기했다. 테이블만 열었다고 해서 협치가 아니다. 협치를 위해서는 반드시 협약이 전제가 돼야 한다. 우리나라 공무원과 전문가들은 너무 엘리트의식이 강해서 이해 당사자들은 이익집단으로만 보고 있다. 협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식량주권이든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든 우리 사회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이 과정은 올바른 협치의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 전문가 그룹과 공무원들의 엘리트 의식이다.

한= 농민들이 패배주의에 많이 젖어들었고 너무 연로해버린 것이 문제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의 경우 우리 농업이 얼마나 생명산업인가를 인지하면 쉽게 이루어지는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정부와 일부 농민, 학자들의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짧은 식견들이 발목을 잡는 모습이 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학계는 학계대로 불식시켜야 하고 농민은 농민대로 외연을 확대해 나가도록 했으면 좋겠다. 장 부소장의 생각이 2013년 체제를 만드는 패러다임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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