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5일 환경부 국정감사가 진행되던 정부세종청사 정문 앞은 그냥 보기에도 어수선할 만큼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지난해 8월 8일 폭우와 댐 대량 방류로 살 곳을 잃은 구례군 주민들도 그곳에 있었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도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구례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고 그날 이후 1년 2개월 넘도록 하나도 바뀌지 않은 실정을 호소하며 조속한 배상을 촉구했다. 아무 잘못 없이 하루아침에 평생 살아온 삶터를 잃은 허무함도 견디기 어려울 진데, 관련 기관 모두 서로 네 탓 내 탓 따지는 형국을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 정부는 종종 해리포터마냥 ‘마법의 주문’을 써왔다. ‘반공방첩’, ‘수출 100만불’, ‘선진조국 건설’ 등등….그중에서도 떠오르는 몇 가지 구호가 있으니, 첫 번째가 ‘86·88’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극을 벌이고 집권한 전두환은, 자신의 부족한 정통성을 메꾸려는 의도로 1986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 유치에 나섰다. 둘 다 유치에 성공했다. 정권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의 성공개최를 위해 온 나라가 합심하자고 했다. ‘86·88’은 전두환정권에 불만을 가
농협을 처음 취재하기 시작하고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농협 특유의 폐쇄성이었다. 어떤 사안을 취재하는 데 있어 필연적으로 소통해야 할 담당 사업부서들은 언론 접촉을 극도로 꺼리고, 홍보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답변은 매우 제한적·형식적이다. 관료사회의 경직성과 대기업의 폐쇄성을 동시에 두르고 있는 게 농협 조직이며 이는 중앙회와 회원농협을 가리지 않는다.폐쇄성은 당연히 농협 스스로 ‘잘못하고 있는’ 사안에서 극대화된다. 기자로서 정상적인 취재활동이 불가능할 지경이며 결과물(기사)에 대한 반응과 압박도 여느 기관·단체에 비할 바가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이발기에 백발의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잘려 나갔다.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 머리카락이 서로 엉킨 채 나뒹굴었다. 삭발하는 내내 어떤 이는 눈을 질끈 감았고 어떤 이는 서러운 듯 눈물을 흘렸다. 삭발이 끝나고 어색해진 짧은 머리에 ‘단결 투쟁’이 적힌 붉은띠를 둘러맸다.8월의 마지막 주, 충남 예산과 전남 화순에서 차례로 농민들과 농촌 주민들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주장하는 내용엔 차이가 있었지만 그 기저에 깔린 배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농지 짓밟는 산업단지 확대에 반대한다!’ 예산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소년농부 한태웅 군의 소식을 접했다. 농사짓던 농지의 주인이 바뀌면서 올해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태웅 군은 “밭에 왔는데 모르는 분이 계셨다. 실례지만 누구시냐고 물으니 새로 땅 사신 분이라고 했다. 올해까지만 짓고 깨끗하게 밭을 정리해달라 하셨다”라며 “속상하나마나 어쩔 수 없다. 주인이 바뀌고 직접 농사짓겠다 그러면 그냥 그 해로 끝인 거다. 옛날 말로 이런 걸 땅 없는 설움이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구수한 입담과 나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지난 8일 끝난 도쿄올림픽을 빛낸 수많은 선수들 중에서도, 아마 적지 않은 독자들은 여자배구팀의 맹활약을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선수들의 활약 하나하나가, 심지어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식빵’을 굽는 김연경 선수의 모습마저 멋졌다.올림픽 여자배구 준결승전. 우리 선수들은 세계 최강 브라질 팀을 맞아 비록 패했지만 잘 싸웠다. 브라질 선수들은 원망스러울 정도로 강했다. 우리 선수들의 공격이 들어오는 족족 블로킹(우리 편 선수가 스파이크, 즉 공을 손으로 내리쳐 공격할 때 상대편 선수들이 네트 바로 앞에서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최근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평가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자신의 농정 공약을 뒷받침할 생각들을 드러냈다. 언론에선 법조인 출신으로서 헌법에 쓰인 경자유전의 원칙을 부정했다는 사실에 가장 주목하고 있다.이 또한 단언컨대 ‘망언’이라 비판받기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개인적으로는 그보다도 현대의 국가라면 안보를 위해 으레 갖춰야 할 핵심 기능으로 언급되는 농산물 비축의 필요성을 함께 평가절하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그는 다름 아닌 국가 안보를 중요시한다고 자부하는 보수 진영의 대권 주자이기 때문이다.
유통 파트를 맡아 가락시장을 출입하기 시작한 게 6년여 전이다. ‘표준하역비’는 당시에도 오래 묵은 논란거리였다.법 조문에 ‘도매법인이 내야 한다’고 명기된 표준하역비가 버젓이 출하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보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심정으로 기사를 써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어떤 역사나 이유를 갖다붙이더라도 위법 정황은 명확하며 그 역사나 이유라는 것도 기자를 전혀 이해시킬 수 없는 것들이었다.논란이 미봉 상태로나마 매듭지어진 건 다시 6년여가 흐른 뒤다. 가락시장 개설자인 서울시는 차마 표준하역비의 몸통은 건드리지 못한 채 앞으로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장면 하나. 지난 12일 전남 완도 약산면사무소 앞. ‘농어촌파괴 풍력태양광 반대한다’, ‘행정감사 실시하라’는 내용이 적힌, 약산태양광 반대 청년투쟁위원회 명의로 제작된 손팻말을 들고 수십 명의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염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날 시작된 전라남도 내 풍력·태양광 분쟁지역 현장점검을 앞두고 태양광 사업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만사 제쳐놓고 나온 주민들이었다.그러나 현장점검은 예정된 시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채 완도군청의 일방적 취소 결정으로 무산됐다. 당연지사 주민들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2일 댐 하류 수해원인 조사협의회는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녹차연구소에서 정기회의를 가졌다. 용역사로부터 섬진강댐 하류 수해원인 조사 중간결과를 전달받고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회의장이 마련된 연구소 입구는 경찰관들과 색색의 현수막, 주민들로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대부분 섬진강 하류인 하동군에서 재첩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민들이었다. 머리띠를 둘러맨 피해 어민과 주민 일부는 회의장에 들어섰다. 두 명 남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사협의회 관계자는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 자리에서 물러나
[한국농정신문 박정연 기자]급한 불만 대충 끄고 보자는건가. 지난 17일 국방부는 가중되는 조리병들의 업무부담 경감을 위해 주말과 휴일에는 간편식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는 애써 간편식은 장병들이 선호하는 완제품 형태라고 덧붙였다. 그저 조리병 일손 줄이기에만 급급한 처사였다. 그런데 국방부의 이 대책, 어딘지 낯설지 않다.지난 5월 서울시교육청이 원격수업 대상 학생들의 결식 우려를 해소하겠다며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희망급식 바우처를 지급한 것과 닮았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편의점이 학생들의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작년 언젠가, 현장취재의 수준을 넘어 직접 경험을 토대로 한 기사들을 더 자주 써보겠다고 결심했고 이곳에도 기록을 남겼던 것 같다. 간헐적으로라도 몸소 부딪혀볼 수 있는 농촌의 어려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적합하고도 또 중요한 것은 역시나 농업노동의 가치보전일 것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깊은 내용을 담지는 못했지만 한때 우리 신문의 ‘기자농활’ 코너가 존재했던 이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각자 전문 분야 탐색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동료들을 대신해 다시금 홀로라도 시도해보자는 생각에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제목만 보고 학생들의 ‘학교 탈출’을 조장하는 글이라 오해하지 마시라. 지금 교육체계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당장 학생들에게 진짜로 학교 담장을 넘어 탈출하라는 뜻은 아니니 걱정마시라. 당장 학교 담장을 넘어야 할 것은, 바로 ‘공공급식 강화에 대한 논의 내용’이다.왜 이 생각이 들었냐고? 최근 페이스북에서 군대 내 코로나19 관련 격리자 급식 꼴을 보고 나서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말라 비틀어진 생선 네 토막을 3명의 병사들이 알아서 먹으라고 갖다주고, 다섯 칸 중 두 칸은 텅 비운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문재인정부는 1:1 FTA를 넘어 다자간 FTA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논의에 농축산업계의 우려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지난달엔 산업통산자원부가 농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RCEP과 관련한 간담회를 가졌다. 지난 FTA 체결 및 비준 과정에서 봤듯 각 분야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 분야별 간담회를 마치면 여론수렴을 했다면서 국회에 비준을 요구할 걸로 보인다.RCEP과 CPTPP 가입국을 보면 축
돈이 모이는 곳일수록 추악해질 수밖에 없음은 이 시대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바다. 농산물 가격 급등락, 경매 공정성 논란, 출하자 선택권 상실, 유통 비효율, 도매시장 경쟁력 쇠퇴…. 도매시장을 개혁해야 하는 데는 너무나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뚜렷하게 눈에 보이는 것이 도매법인의 수익 문제다.굳이 자금이나 공력을 들일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적자 리스크가 전혀 없다. 기본적인 시스템만 갖춰 놓으면 매년 수십억원의 수익이 저절로 들어와 쌓인다. 자유경제 시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 같지만 가락시장 도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답이 안 나와요. 답이….” 부처님 오신 날이었던 지난 19일 충북 음성의 한 고구마밭에선 한 달 전에 심은 고구마순을 비닐 위로 끄집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비탈진 사면을 따라 펼쳐진 약 2,000여 평에 달하는 밭에선 고작(?) 8명의 인원만이 각 고랑을 오가며 주어진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40대부터 8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했지만 이 자리에 외국인노동자는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작업에 나선 농민은 “일은 차고도 넘치는데 사람을 구할 수 없어 큰일”이라고 혀를 내둘렀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 나섰다. 취임 후 지난 4년의 성과와 실책을 정리하고 앞으로 남은 임기 1년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자리였다.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후보 시절 농어업을 직접 챙겨 살기 좋은 농산어촌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취임 이후 ‘농업’과 ‘농촌’, ‘농민’은 대통령의 입에 그닥 많이 오르내리지 못했다. 물론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전 세계적인 ‘역병’과 보이지도 않는 천장을 이미 뚫은 듯한 수도권의
통계청의 양파 재배면적 조사결과가 양파산업 전반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재배면적 증가로 가격이 급락한 조생양파를 “24% 부족”이라 발표하는가 하면 조생보단 안정적이라는 중만생양파를 “30% 과잉”이라 발표했다. 현장 상황과 시장 가격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실측결과가 모두 일관되게 나타나는 가운데 통계청 조사결과만이 거꾸로 도출된 것이다.통계청과 농경연 양쪽의 의견을 들어보면 사실상 통계청의 실책이 명확해 보인다. 조생양파 출하가 한창 진행 중인 3월 말경 조사를 진행하면서, 아직 수확이 이뤄지지 않은 조생양파를 중만생양파로 산입한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뉴스 보니까 도시 애들 요즘 부업 찾느라 난리라던데 왜 농촌에는 안 내려와? 주말에만 내려와도 되는데, 돈 준다는 데가 이렇게 많은데.”농촌을 돌아다니며 인력에 대한 고충을 듣다 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얘기다. 맞다. 그 말대로 젊은 도시 직장인들 사이에선 최근 ‘N잡’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많은 급여는커녕 저녁 있는 삶조차, 혹은 다른 그 무엇도 보장 받지 못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N잡론은 일종의 성스러운 가르침이자 선구자들이 벌려 둔 탈출구로 여겨졌다. 더이상 직장에만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농지는 ‘농사짓는 곳’이다. 이건 만국 공통의 상식이다. 그러나 그 상식은 2021년 현재 대한민국에선 통용되지 않는다.2021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농지 이용 목적은 둘 중 하나다. ‘투기대상’이거나, ‘태양광 설치할 곳’이거나. 정작 농지의 주인이어야 할 농민들 대다수에겐 땅이 없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농지는 더 이상 ‘농사짓는 곳’이 아니라 투기대상이거나 태양광 부지이고, 농민에겐 땅이 없다? 그럼 농지에서 만들어져야 할 먹거리는 어디서 만들라고?정부에서, 정치권에서, 언론에서 해답으로 거론하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