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가 남을까

  • 입력 2021.08.29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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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소년농부 한태웅 군의 소식을 접했다. 농사짓던 농지의 주인이 바뀌면서 올해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태웅 군은 “밭에 왔는데 모르는 분이 계셨다. 실례지만 누구시냐고 물으니 새로 땅 사신 분이라고 했다. 올해까지만 짓고 깨끗하게 밭을 정리해달라 하셨다”라며 “속상하나마나 어쩔 수 없다. 주인이 바뀌고 직접 농사짓겠다 그러면 그냥 그 해로 끝인 거다. 옛날 말로 이런 걸 땅 없는 설움이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구수한 입담과 나이답지 않은 말투로 화제를 모았던 소년 농부의 입에서 나지막이 소작농의 현실이 터져 나왔다. 따뜻한 댓글이 줄을 이었다.

한태웅 군의 사연은 오늘날의 농촌에서 기실 흔한 일에 불과하다. 하루아침에 농사짓던 농지의 주인이 바뀌고 소작을 하던 농민이 일순간에 농지를 빼앗기는 일은 지난 십수년간 반복돼왔다. 제대로 된 임대차 계약을 작성하지 못해 직불금을 받지 못하는 농가 또한 수두룩하다.

올해 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소속 직원들의 투기 사실이 적발되며 농지 불법 취득 및 경자유전 등에 대한 인식 전환 또한 국민 정서 전반에 어느 정도 공감대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농지를 농사짓기 위한 땅으로 보지 않고 일반적인 토지와 같이 여기며 투자의 대상물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본지가 보도하는 농지법 관련 기사의 댓글만 봐도 그렇다.

‘농지는 농사를 짓는 사람만 소유할 수 있다’는 뜻의 경자유전 원칙은 헌법 제121조에 정확히 나와 있다. 헌법에 따르면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국가가 헌법을 통해서까지 경자유전의 원칙을 못 박은 이유는 농업과 먹거리 생산 그 자체가 갖고 있는 가치 때문이다. ‘식량안보’라는 표현 또한 같은 맥락이다.

LH 투기 사태로 농지법 개정을 위한 논의의 장이 열렸다지만, 결과는 여전히 미진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예외조항으로 농지 전용과 편법·불법 농지 취득 사례는 이미 상상을 초월할 수준에 달했지만 예산을 핑계 삼아 전수조사 실시는 이번 개정에서도 물 건너간 얘기가 돼 버렸다.

한태웅 군은 “먹고 살려면 결국 농사를 많이 지을 수밖에 없는데 판로도 문제고 농지를 얻는 것도 문제다”라며 “땅값은 자꾸 올라만 가고 기껏 몇백, 몇천 평의 농지를 사려 해도 수십억원은 든다. 그래서 걱정이다. 내 맘 같지가 않은 게 농사다”라고 한탄했다.

과열되는 농지 투기, 잊혀 가는 식량안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농지를 유지하고 가꾸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대로라면 농촌에 농사를 짓기 위해 누가 남을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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