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돼지만도 못한’

  • 입력 2021.07.18 18:53
  • 수정 2021.07.18 19:12
  • 기자명 한승호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장면 하나. 지난 12일 전남 완도 약산면사무소 앞. ‘농어촌파괴 풍력태양광 반대한다’, ‘행정감사 실시하라’는 내용이 적힌, 약산태양광 반대 청년투쟁위원회 명의로 제작된 손팻말을 들고 수십 명의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염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날 시작된 전라남도 내 풍력·태양광 분쟁지역 현장점검을 앞두고 태양광 사업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만사 제쳐놓고 나온 주민들이었다.

그러나 현장점검은 예정된 시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채 완도군청의 일방적 취소 결정으로 무산됐다. 당연지사 주민들은 완도군의 막무가내 처사라며 반발했다. 면사무소 입구에 내건 ‘모두가 잘사는 희망찬 미래 완도’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장면 둘. 같은 날 충남 당진 우강면 들녘. ‘대대손손 농민생존권 압살하는 송전철탑 결사반대’, 당진시 우강면 송전철탑반대 대책위원회가 내건 현수막 뒤로 한국전력 측이 동원한 굴착기가 한창 벼가 자라고 있는 논을 갈아엎고 있다. 당진과 아산을 잇는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서다.

농민들은 송전선로 지중화 등을 요구했지만 이는 소귀에 경 읽기였다. 벼를 짓이기며 물길을 내듯 논을 망가뜨리는 모습에 격분한 농민들이 굴착기 앞을 가로막고 항의하자 경찰은 농민들에게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연행했다. 한 여성농민은 경찰들에게 사지가 들린 채 논 밖으로 끌려 나오는 수모를 겪었다.

수십 년간 식량생산의 보고였던 농지 위에 태양광 사업을 허가해 주민들끼리 갈등을 겪게 하고 송전탑 청정지역이라 일컫는 들녘에 송전선로를 놓겠다며 거리낌 없이 논을 갈아엎는 행태가 2021년 7월 우리나라 농촌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태양광을 개발하겠다, 깃발 꽂은 곳마다, 송전선로가 지나는 예정지마다 갈등을 겪지 않는 곳이 없다. 정부 정책에 혜택을 보는 이는 따로 있는데 왜 피해는 오롯이 농촌만의 것인가. 왜 농민들만 죽어라 “결사반대”를 외치며 싸워야 하는가. 이 나라에서 정녕 농촌은, 농민은 영화 속 대사처럼 ‘개, 돼지만도 못한’ 존재인가.

키워드
#기자수첩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