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경에 이르도록

  • 입력 2021.06.20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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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작년 언젠가, 현장취재의 수준을 넘어 직접 경험을 토대로 한 기사들을 더 자주 써보겠다고 결심했고 이곳에도 기록을 남겼던 것 같다. 간헐적으로라도 몸소 부딪혀볼 수 있는 농촌의 어려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적합하고도 또 중요한 것은 역시나 농업노동의 가치보전일 것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깊은 내용을 담지는 못했지만 한때 우리 신문의 ‘기자농활’ 코너가 존재했던 이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각자 전문 분야 탐색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동료들을 대신해 다시금 홀로라도 시도해보자는 생각에, 이제 내 차의 조그만 트렁크에는 여차하면 즉시 그리고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있도록 모자와 여분의 옷가지, 수건, 세면도구 등이 들어차게 됐다.

사실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기도 부끄럽다. 그간 미련 남지 않을 만큼 관심을 갖지 못했다. 더 질 좋은 기사를 생산해야 한다는 의무감의 문제와도 별개로, 이제 그저 수첩과 카메라만 든 채 현장을 덜렁 다녀오기엔 가책을 받을 정도로 농촌의 인력난은 너무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 전엔 수확이 한창인 마늘밭에 갈 기회를 얻었는데, 일도 하겠다는 말에 반색을 했던 여성농민이 다시 실망하기까지는 단 5초도 걸리지 않았다. “혼자 내려오는 거라고?” 생각하기로는 그래도 그냥 신문도 아니고 농업전문지니까, 일할 생각이면 네다섯쯤은 내려오는 게 아닐까 잠깐 새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설령 내려 온다한들 초보적인 수준으로 일할 사람들을 못내 아쉬워할 정도로, 지금 농촌은 단 며칠을 일할 사람조차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인력이 너무 귀하다보니 농민들은 사람을 구해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 매년 역대 최고치를 갱신하는 임금을 내주고 겨우 얻은 인력들의 작업이 너무 느려도 면전에서는 크게 지적할 수 없다. 점심시간이 돼서야 집에 잠시 돌아와 속으로 끙끙대는 모습까지 보고 있노라면, 결국 우리의 기사들 또한 별 도움이 될 수 없었단 인식 탓인지는 몰라도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한 경제지 기자의 남다른 도전정신 덕에 요즘 많은 언론에서 뛰어들고 있는 소위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은 그 남의 일을 겪은 기자의 경험담을 높은 현장감과 함께 기록함으로써 대다수 대중과는 접점이 없는 소수의 고통을 조명하고, 제도 개선을 위한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도 매우 효과적이었단 평을 받는다. 한발 더 농촌과 가깝다 자부하는 우리가 이 문제를 위해 써야 할 최선의 방법이 무엇이었는지는 사실 이미 명확했고, 죄책감을 피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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