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초대받지 못한 손님

  • 입력 2021.07.11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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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2일 댐 하류 수해원인 조사협의회는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녹차연구소에서 정기회의를 가졌다. 용역사로부터 섬진강댐 하류 수해원인 조사 중간결과를 전달받고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회의장이 마련된 연구소 입구는 경찰관들과 색색의 현수막, 주민들로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대부분 섬진강 하류인 하동군에서 재첩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민들이었다. 머리띠를 둘러맨 피해 어민과 주민 일부는 회의장에 들어섰다. 두 명 남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사협의회 관계자는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 자리에서 물러나 달라며 이들을 막아섰다.

피해 어민은 “내가 피해 당사자다. 수해원인 조사 결과를 들어 마땅하다”라며 “피해가 늦게 확인돼 우리 재첩 어민들은 피해 대상에 포함돼 있지도 않다. 피해를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한 게 뭐가 잘못됐느냐”고 반발했다

잠시 고성의 실랑이가 이어졌지만 결국 주민들은 발길을 돌렸다. 회의가 시작됐고, 비어있는 지자체 담당자 자리에 자리를 잡고 회의를 참관했다. 회의장엔 정부 측을 대표한 환경부 국장이 배석했고, 행정안전부 사무관도 있었다. 심지어 주민이 쫓겨난 자리에는 이한구 한국수자원공사 부사장이 자리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로 보이는 서너 명가량도 함께였다.

수해원인 용역 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하는데 피해 주민들은 참석할 수 없고 환경부 관계자와 수자원공사 부사장은 괜찮다니, 말이 안 되는 상황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어진 발표에선 막대한 피해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만한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환경부와 수자원공사의 적절한 역할 수행에 문제가 없었는지 면밀히 따져본 결과를 기대했지만 용역사 측에선 마뜩잖은 답변만을 내놨다. 피해지역 추천 전문가와 피해 주민대표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여기에 배덕호 한국수자원학회장은 불난 집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정리 발언을 통해 “개인적으론 불합리한 부분이 없는지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수자원공사 입장도 들어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피해를 일으킨 지난해 홍수의 원인을 분석하고 환경부와 수자원공사 역할에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하는 용역기관의 장이, 그것도 용역 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할 소리는 결단코 아니었다. 격분한 주민대표들의 반박이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 결국 이날 회의는 3시간 가까이 진행되고 나서야 마무리됐다. 그동안 재첩 어민들과 주민들은 뙤약볕 아래 회의장 입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른거려 취재를 마치고 발길을 돌리는 와중에도 불편한 마음이 쉬이 사라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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