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블로킹’의 제왕

  • 입력 2021.08.15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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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8일 끝난 도쿄올림픽을 빛낸 수많은 선수들 중에서도, 아마 적지 않은 독자들은 여자배구팀의 맹활약을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선수들의 활약 하나하나가, 심지어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식빵’을 굽는 김연경 선수의 모습마저 멋졌다.

올림픽 여자배구 준결승전. 우리 선수들은 세계 최강 브라질 팀을 맞아 비록 패했지만 잘 싸웠다. 브라질 선수들은 원망스러울 정도로 강했다. 우리 선수들의 공격이 들어오는 족족 블로킹(우리 편 선수가 스파이크, 즉 공을 손으로 내리쳐 공격할 때 상대편 선수들이 네트 바로 앞에서 두 팔을 뻗어 공을 막아내는 기술)으로 막아내는 걸 보며 ‘아, 그동안 정말 잘해왔지만 저 선수들은 넘기 힘든 벽이구나’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속상한 현실이 떠올라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나라 농민들에게도 넘기 힘든 벽 같은, ‘블로킹의 제왕’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하여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다.

김 장관은 지난달 27일 농민단체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공익직불제 지급요건 개선 제안, 공익형 시장도매인제 도입 제안 등에 대해 사실상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다.

예전 농식품부 장관들은 “검토해보겠다”는 말이라도 했다. 공무원 및 정치인들이 말하는 ‘검토’가 ‘거절’과 같은 뜻인 거야 알지만, 최소한 전임자들은 고민하는 시늉은 했다. 그런데 김 장관은 고민도 안 한다.

김 장관이 얼마나 블로킹에 철저한지는 지난해 농식품부 국정감사 때 절실히 느꼈다. 당시 전라남도가 공영 시장도매인제 도입에 나서면서 ‘토스’를 올려준 분위기였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들 및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사장 등이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촉구하는 ‘스파이크’를 했으나, 김 장관은 “전남도와 서울시가 내세우는 공영 시장도매인제는 뚜렷한 그림이 없다”며 ‘블로킹’했다. 공익직불제 예산 확대에 대해서도, 농작물재해보험 보장성 강화에 대해서도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급급했다.

농식품부는 때론 농민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강스파이크를 날린다. 친환경농업계는 제5차 친환경농업 육성 5개년계획과 관련해 농식품부에 “친환경농업 집적지구 조성이 5개년계획의 핵심이 아니다”란 입장을 수차례 제시했건만, 이 주장은 결국 가로막혔다. 농식품부는 친환경농업계 입장과 동떨어진 5개년계획안을 내고자 했지만, 이번엔 농민들이 이것을 블로킹했다.

올림픽은 끝났다. 여자배구 선수들의 멋진 여정도 막을 내렸다. 다시 현실이다. 농민들은 지금 농정에 기대가 크지 않다. 농민들이 바라는 건 하나. 농식품부의 블로킹 때문에 ‘식빵’ 굽는 일이라도 줄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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