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 입력 2021.10.10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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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5일 환경부 국정감사가 진행되던 정부세종청사 정문 앞은 그냥 보기에도 어수선할 만큼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지난해 8월 8일 폭우와 댐 대량 방류로 살 곳을 잃은 구례군 주민들도 그곳에 있었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도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구례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고 그날 이후 1년 2개월 넘도록 하나도 바뀌지 않은 실정을 호소하며 조속한 배상을 촉구했다. 아무 잘못 없이 하루아침에 평생 살아온 삶터를 잃은 허무함도 견디기 어려울 진데, 관련 기관 모두 서로 네 탓 내 탓 따지는 형국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주민들은 청와대 앞에서, 국회 앞에서, 여야 당사 앞에서 수없이 외쳤던 구호를 다시금 외치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비통한 현실에 절망했고 결국 환경부 국정감사장에 직접 들어가 1년 넘게 배상 한 푼 받지 못한 채 빚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밝히자고 결의했다.

주민들 수보다도 더 많은 전투경찰 병력에 가로막혀 대다수 고령의 주민들은 차마 문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지만, 감정이 격해진 몇몇 주민과 병력 간 몸싸움이 벌어지며 현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그 과정에서 한 주민은 정신을 잃기까지 했다. 하지만 경찰은 실신해 쓰러진 주민의 손에 수갑을 채웠고 이를 지켜보던 70대의 여성농민은 주저앉아 쓰러진 주민의 머리를 안고 울며 당장 수갑을 풀라고 소리쳤다. 구급차가 오고 나서야 상황은 다소 진정됐다.

이후부터 주민들은 정문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쓰러진 주민이 되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 해당 주민이 정신을 되찾았단 소식과 함께 현행범으로 체포됐기 때문에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경찰 측 설명도 뒤따랐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던 그 와중에 점심시간을 앞두고 청사 주변 식당에선 도시락 배달을 시작한 모양새였다. 수 대의 배달 차량이 도로와 횡단보도를 가리지 않고 불법주정차를 일삼았고, 청사 직원들은 끌차에 도시락을 받아 들어갔다. 패용한 명찰을 보니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직원이 대다수였다. 도시락은 그냥 보기에도 값이 꽤 나가 보였다. 배달하는 식당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내용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만6,000원에서 2만원, 2만5,000원 상당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도시락 가격도 가격이지만 플라스틱과 비닐류 등 도시락을 포장한 적지 않은 양의 쓰레기는 탄소중립을 외치는 환경부의 부처 성격과도 너무 동떨어진 ‘현실’로 다가왔다.

주위에 있던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정부 잘못으로 집과 삶터를 다 잃은 주민들은 1년 2개월 넘도록 배상 한 푼 못 받아 그것 좀 해결해달라고 새벽부터 나와 길거리에 있는데, 국회의원과 환경부 직원들은 안에서 저런 도시락을 받아먹고 있는 거냐. 주민들은 정문 근처에 차도 못 대게 하더니, 비싼 도시락 싣고 직원들 밥 배달하러 온 식당 차량은 법이고 뭐고 없는 거냐”고 탄식했다.

이날 ‘대체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거냐’던 한 주민의 외침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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