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행정편의주의

  • 입력 2021.06.27 18:00
  • 기자명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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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정연 기자]

급한 불만 대충 끄고 보자는건가. 지난 17일 국방부는 가중되는 조리병들의 업무부담 경감을 위해 주말과 휴일에는 간편식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는 애써 간편식은 장병들이 선호하는 완제품 형태라고 덧붙였다. 그저 조리병 일손 줄이기에만 급급한 처사였다. 그런데 국방부의 이 대책, 어딘지 낯설지 않다.

지난 5월 서울시교육청이 원격수업 대상 학생들의 결식 우려를 해소하겠다며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희망급식 바우처를 지급한 것과 닮았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편의점이 학생들의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내세웠다. 그저 당장 학교 급식 공백을 메울 뿐이었다. 국방부와 서울시교육청의 발표는 모두 ‘편의’에 초점이 맞춰있다. 이들이 내놓은 방안은 모두 사업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도 없이 내놓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들의 방안엔 급식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없다. 국방부는 ‘급식도 전투력’이라면서 장병에게 제공하는 간편식 선정 기준도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도 다를 바 없다. 처음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을 시행할 때는 학생 건강을 고려해 삼각김밥은 구매 못한다 했지만 구매 가능 품목이 적다는 지적에 삼각김밥도 구매할 수 있는 모순적인 대안을 추가 발표하고 말았다.

이들의 방안엔 급식이 지닌 공공성은 망각됐다. 급식에는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함께한다. 그러나 최근 조달청이 발표한 군납 농산물 예시단가 산정과정에서 농산물의 생산자인 농민이 배제됐다. 비판이 거세자 조달청의 업무는 가격산정업무까지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뒤늦게 농가 의견을 수렴했다. 서울시교육청의 희망급식 바우처도 그간 유지해오던 친환경 무상급식을 통한 ‘친환경 농·수·축산물 또는 그 가공품 등의 소비를 촉진하고 수급체계 완성’ 목적에 위배됐다. 두 대책은 지속가능한 급식 농산물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관료들의 태도는 지극히 행정편의적이다. 국방부와 서울시교육청의 대책에서 문제 원인 해결을 위한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예시단가를 산정하기 전과 편의점과 협상하기 전, 계약농민과 대화도 없었다. 과하게 말하자면 급한 불만 대충 끄고 장병과 학생들이 좋아한다며 책임을 돌리는 격이다. 정책의 피해는 현장의 몫이다. 진지한 고민이 없으면 언제든 같은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 자명하다.

앞으로의 급식 대책에는 당국의 진지한 고민과 연구가 반영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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