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최용탁 소설가]우리의 오랜 역사를 한 마디로 줄이면 ‘쌀을 얻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쌀이 주요 식량으로 자리 잡으면서 수천 년 동안 논을 만들어 온 농민들의 노력은 실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손바닥만 한 삿갓 논에서 청산도의 구들장 논, 바다를 막아 광활한 논을 확보한 간척지까지 민중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논을 만들어 쌀을 생산하기 위한 간고한 역사였다. 결정적인 승리를 앞두고 회군했던 갑오농민전쟁의 전주화약도 모심기 철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고 겨울을 앞두고 일어난 2차 봉기 역시 추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중에도 마음 한 편은 논에 가 있던 농민군이었다. 그렇게 벼 농사는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절대적인 것이었다.쌀을 자급
[한국농정신문]2015년 11월 14일 서울 한복판에 10만 민중이 모였다. 쌀 개방 원년, 쌀값이 폭락했다. 매년 되풀이되는 농산물 가격폭락에 시름하는 농민들에게 쌀 개방 그리고 쌀값 폭락은 위기감을 최고조로 올려놨다.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결국 농민들을 서울로 불러 올렸다.더불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사회 전반의 피폐해진 현실은 더 이상 앉아 있을 수만은 없게 했다. 250명의 어린 학생을 포함해 304명이 진도 앞바다에서 죽어가는 것을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그 누구도 구조하지 못한 무능함에 진저리를 쳤지만 다음 해에 이어진 메르스 사태로 박근혜 정부의 무능 무책임은 국민을 더욱 절망하게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반성은커녕 탐욕만을 키워가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지난달 31일은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지 200일이 된 날이다. 한 농민이 국가폭력에 희생돼 생사의 갈림길에 선 200일 동안 박근혜정부는 철저히 백씨를 외면했다.국가폭력의 직접 가해자인 경찰은 백씨가 쓰러진 지난해 11월 14일의 기록에 단단히 자물쇠를 채우고 버티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변정필 국제 엠네스티 한국지부 전략캠페인팀장은 지난 3월 “국제 인권 기준에서 인권 침해가 발생하고 어떤 의혹이 있을 때, 그 의혹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 그 자체를 인권 침해라 규정한다”며 “경찰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즉각 평가하고 시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경찰청(청장 강신명)은 정보공개는커녕 백씨 가족들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고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평소 딸이 본 ‘아버지’ 백남기는 어땠을까. 지난달 21일 서울대병원 앞 농성장에서 만난 백민주화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 아버지께서 ‘바뀐 게 없이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얘기하시더라”고 떠올렸다. 백씨는 “아버지는 우릴 붙잡고선 농촌현실이 힘들다 얘기하신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자녀들이)걱정할까봐 그러시지 않았겠나’ 묻자 백씨는 “후배들하고는 얘기했겠다”하더니 끝내 눈물을 훔쳤다.“아버지와 함께 집회에 참석한 후배 한 분이 절 보고는 우시면서 아빠와 사고 직전 나눈 얘기를 전했다. 그 분이 ‘물대포를 맞으면 그 자리서 죽겠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그러게 큰일나겠다. 조심하자’고 말했다더라. 그렇게 대화하고 몇 분도 안 지나서 사고가 났다면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사진 박경철 기자]지극히 평범했던 한 노인의 이름이 온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지 200일, 그의 이름 앞뒤엔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농민’이다.백남기 농민 사건에서 대다수의 시민들이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경찰의 불법적 폭력진압이 농민을 쓰러뜨렸다는 ‘현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남 보성 들녘에서 농사짓던 그 농민이 종로거리 경찰의 살수차 앞에 설 수밖에 없었던 ‘배경’ 또한 백남기 농민 사건을 목도한 이들이 풀어내야 할 과제다.어디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농업·농촌의 현실 속에서, 그 과제를 짊어지길 자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지는 사건 이후 줄곧 백남기 농민의 곁을 지켜 오고 있는 ‘농민의 길’ 소속 4개 단체 정책기획 담당자들을 모아 백남기 농민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민주주의 기본은 ‘(누구나) 말할 수 있다’, ‘나 말해야 된다’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닌 거리에 나와서 쌀 수입개방반대에 대해서 얘기했던 것뿐인데, 그것 자체가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게 너무 참담하다.”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소재 인권운동사랑방 사무실에서 만난 최은아 활동가는 백남기 농민 사태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지난 해 12월 초 사태의 심각성에 놀란 인권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민중총궐기 국가폭력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조사활동을 펼쳤다. 지난 2월 조사활동을 마치고 지금은 보고서 작성도 마무리된 상태. 그리고 6개월이 지났다. “국가폭력은 ‘물포 발사’만이 아닌 지금도 진행중”그는 먼저 “국가폭력이라는 게 물대포 한 순간 쏜 걸로만 끝나는 게 아니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20대 국회 청문회 실시가 급선무라는 여론이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안팎에서 모아지고 있다.지난 19일 정의당이 “20대 국회가 열리는 대로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즉각 실시할 것을 3당에 공식적으로 요구한다”고 밝힌데 이어, 같은 날 국민의당도 “검찰이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 물대포사건에 대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며, “20대 국회에서 야당과 공조해 당론으로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6일 “20대 국회에서 ‘백남기 사건’에 대한 청문회를 실시해 진상규명의 노력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현재 백남기 농민은 대뇌의 절반 이상이 손상되고 뇌 뿌리가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서울 혜화역 서울대병원앞 농성장, 그동안 시민들의 연대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지만, 사회적인 의제에서 백남기 문제는 묻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5·18 이후 전환점을 맞게 되는 분위기다. 5·18행사 이후 정의당과 국민의당이 청문회 및 특검 실시를 당론으로 정하겠다고 각각 나선 것. 이에 대해 지난 21일 농성장에서 만난 손영준 카톨릭농민회 사무총장은 5·18전야제 행사의 첫 멘트가 기폭제가 됐다며 희망의 뜻을 내비쳤다.“2016년 5월 광주가 백남기다”올해로 36주년을 맞은 2016년 5·18민중항쟁 기념행사 전야제는 이 말과 함께 시작됐다. 지난 25일 이번 기념행사를 이끈 김영정 집행위원장을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위원장은
[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난해 11월 10만 민중의 함성이 서울 한복판을 점령했다.노동·농민·빈민·청년학생·시민사회로 구성된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지난해 11월 14일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서울 일대에서 10만여명이 참석한 민중총궐기 대회를 개최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2008년 촛불 이후 최대 규모다. 그 중심엔 농민이 있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가톨릭농민회,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로 구성된 농민의 길은 태평로에서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했다. 3만여명의 농민들은 쌀값과 농산물값 폭락에 항의하는 뜻으로 쌀가마니를 뒤덮어 쓴 채 단호한 의지를 내보였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에 맞선 노동자와 시민단체회원, 일반시민도 함께했다.
끝 모르고 떨어지는 쌀값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달 15일 기준 정곡 20kg 산지 가격은 3만5,989원이다. 끝이 안 보이는 하향곡선이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5월 안에 밥쌀 수입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바에 의하면, 2015년 논벼 생산비는 10a 당 69만1,869원으로 지난해보다 4.1% 하락하고 유례없는 대풍으로 생산량도 늘었다. 하지만 이런 조건 속에서도 농가 수입은 오히려 하락했다. 쌀값 폭락 때문이다. 통계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쌀 농가 소득은 쌀값 폭락으로 인해 1㏊ 당 560만9,660원으로 2014년 615만2,170원에 비해 8.8% 감소했다. 이는 최근 5년 동안 가장 낮은 수준이다. 보성 봄감자, 썩어 물량 없는데 가격
[한선범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왜 경찰당국은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살인진압을 가했을까?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인원이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매년 개최된 연말 민중대회의 참가자 수는 2만~5만명 수준이었는데, 총궐기에 참여한 인파는 무려 13만명에 달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파에 경찰 당국은 당황한 것이고, 경찰 본연의 임무를 넘어 과잉 진압을 자행한 것이다.그렇다면 왜 그렇게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인파가 그 자리에 모였을까? 박근혜 정권의 실정이 민중의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노동개악, 밥쌀 수입 강행과 묻지마 개방 지속, 의료 민영화와 공공부문 사유화, 친재벌 규제 완화, 대북 적대정책에 따른 전쟁위기,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친일독재 미화
정읍에서 농사짓던 젊은 농부 한명철씨는 지난 3월 보성으로 터전을 옮겼다. 지난 2월 11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과 민주주의 회복,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원하는 도보순례에 참여한 후 백남기씨의 뜻을 이어가야 겠다는 결심이 들어서다. 지난달 23일 한씨를 만나 구체적인 계기와 소감을 물었다. 어떻게 보성으로 올 결심을 하게 됐나 도보순례를 마치고 서울 농성장에서 오랜시간 같이 걸어온 사람들과 헤어졌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뒷풀이 자리에서 도보순례는 끝났는데 이후 뭘 해야 할지 답답하다는 얘기가 오갔다. 흔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는 얘기를 하지 않나. 난 농민이니까 보성서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주에 결정을 하고 마침 알고 지내던
지난해 11월 14일 농민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의식불명에 빠졌다. 그로부터 200일이 다가오는 지난달 23~24일, 전남 보성군을 찾아 부인 박경숙씨를 비롯한 농민운동을 함께해 온 동료, 후배, 마을 주민 등을 만나 ‘농민 백남기’의 삶을 되짚어봤다. 짧은 지면에 70년 동안의 삶을 담기란 불가능하지만 단편적인 일화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리고자 한다. 지난달 24일 전남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에 위치한 백남기씨의 한옥 자택을 방문했다. 9대째 이어져오고 있다는 백씨의 집에는 대문도 울타리도 없다. 주변엔 대나무가 무성해 고즈넉한 분위기가 흐른다. 마루에는 백씨가 치던 꽹과리가 아직 남아있다. “여기가 우리 응접실”이라며 백씨의 부인 박경숙(63)씨가
1989년 1월 26일, 대전에서 전국수세폐지대책위원회가 열렸다. 전 해에 연인원 3만 여 명에 이르는 농민 시위가 전남북을 중심으로 이어졌으나 농민들이 주장하는 ‘수세 폐지, 수리청 신설’에 대하여 수세를 단보 당 10kg으로 인하하겠다는 정치권의 약속이 있었을 뿐이었다. 대책위원회에서는 농민들의 기세를 모아 결정적인 투쟁을 전개한다는 데에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방안에 대해서는 동시다발적인 도 단위 투쟁 전술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단위 투쟁 전술의 두 가지 안이 제기되어 치열한 회의를 거쳤다. 그리고 결론은 여의도에서의 전국 집회였다. 한편 전남북이 중심이 된 수세 투쟁과 함께 경남북과 충북 지역 등에서는 고추 값 폭락에 따른 고추 생산비 보장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
[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WTO, FTA 등 개방농정으로 인해 암울한 먹구름이 드리워진 농업·농촌의 현실 속에서 대안 경제와 패러다임의 전환, 새로운 철학 등의 해법이 절실하다. ‘희망’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농민을 찾아 농업·농촌이 행복해지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려 한다. 매달 1회씩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벌은 물론이요 참새와 작은 새들이 수시로 날아들고, 개구리에 뱀까지. 생태계의 보고가 된 논과 밭. 충남 논산 상월면에서 권태옥(52)씨가 친환경자연농법으로 일궈온 더불어농원의 모습이다.지난 17일 만난 권씨는 논과 밭을 돌며 쉴 새 없이 목소리를 높여 설명하면서도 연신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내가 농사짓는 걸 좋아해서 농사 얘기하면 목소리 톤도 올라가고 말도 빨라져요.
[한국농정신문 최용탁 소설가]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같은 기관이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물을 농민들에게 팔아먹는 농지개량조합, 조합원인 농민들에게 강제로 그들이 거두는 것은 수세였다. 수세란 쉽게 말하면 ‘물값’인데 댐과 저수지, 수로 등 수리시설 건설비와 관리유지비 그리고 조합 직원의 인건비까지 포함하는 세금이었다. 이것은 일제가 자국 내의 부족한 식량과 군량미를 보충하는 산미증식계획의 일환으로 1917년 조선수리조합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식민지 수탈 기구 중 하나였던 수리조합은 해방 이후에도 존속되다가 토지개량조합을 거쳐 1971년 농지개량조합으로 개칭되었다. 수리시설은 철도, 항만, 도로와 같은 사회간접자본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투자되어야 함에도 농민들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기고 있었다
[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축산업 하면 떠올릴 수 있는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1990년대만 해도 농촌 어르신이 소규모축사에 소와 돼지를 몇 마리씩 키우던 풍경을 볼 수 있었지만, 현재는 공장화된 축산농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는 축산업의 급속한 규모화로 변한 축산농가의 현실을 보여준다.2016년 1분기 한·육우 사육농가는 9만2,597호로 전년대비 9%가 줄었다. 축산물 시장이 개방된 1995년 53만2,226호에서 20년 만에 5분의1 수준으로 줄었다. 축산업 규모화는 1990년대 축산물 시장 개방과 맞물려 있다. 정부에선 농업선진국에 맞선 경쟁력 확보라는 명복으로 규모화·전업화 정책을 폈다. 국내 축산업의 체질을 변화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지만 농촌형 ‘구조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시설현대
[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육계 95%·양돈 25% 계열화 … 대기업 사육부분 독·과점화 양상 나타나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계란 산지가격은 하락세인데 소비자가격은 큰 변화가 없는 현상이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다. 계란도매업(식용란수집판매업)에 진입한 대기업들의 과한 유통마진이 원인이지만 이를 제지할 수 있는 뚜렷한 방안은 없는 상태다. 결국 산란계도 육계처럼 대기업 수직계열화를 피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동반성장위원회는 계란도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그 결과, CJ제일제당, 풀무원, 오뚜기 3개사는 올해부터 2018년까지 비등급란 취급을 중지(동물복지계란 제외)하고 등급란만 취급하는 사업축소 및 진입자제 권고 대상이 됐다. 하림, 삼립식품, 대상FNF 등 3사는 권고대상에서 제외돼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한 한국계란유통협회와 추가협의를 해야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육계농가들이 계열화업체들에게 당하는 ‘갑질’은 농업계 전체에 그 악명이 자자하다. 불공정계약과 생산비를 감안하지 않는 사육비 책정이 만연하지만 계열화업체가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며 독과점한 시장에서 농가가 제목소리를 내기 힘든 게 현실이다.전남 영광군 육계농민인 A씨는 하림과 15년 넘게 계약을 맺어왔지만 재계약을 맺지 못하고 4년 전 체리부로와 계약을 맺었다. A씨는 “정부가 표준계약서를 만들었지만 사용하는 업체가 없다”라며 “회사는 갑, 우리는 을이다”라고 탄식했다.그는 “소비자는 닭 1마리를 2만원에 사는데 농가가 받는 사육비는 ㎏당 1,200~1,300원 수준이다”라며 “20년 전과 비교하면 사육비는 더 줄어든 셈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중재